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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문학 / 설봉문인협회 2026년 3월 7일 좋은시 선정 / 겨우살이 / 권영하

작성자사랑|작성시간26.03.07|조회수71 목록 댓글 0

  겨우살이 / 권영하

  아버지 등골에 뿌리를 박았다
  분가했다가, 다시 아버지 집에 슬그머니 뿌리를 내렸다
  뜨거운 자양분은 혈액처럼 내 몸속으로 흘러들었고
  겨울은 따뜻해졌다

  달콤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먹고 파랗게 자랐다
  아버지 숨소리는 나무껍질처럼 늙어갔지만
  내 삶은 조금씩 통통해졌다
  사계절 내내 푸르렀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새 땅에서 뿌리내리고 꽃피고 열매 맺기를 바랐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거름도 없는 땅에 뿌리내리기가, 왜바람이 마구 부는데 지지대도 없이 자라기가

  조촐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었다
  줄기와 잎에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가을에 큰 콩알만 한 열매를 맺었다
  맑은 햇살이 비칠 때 노오란 열매는 영롱한 수정처럼 빛이 났다
  나무 위에 작은 나무이지만
  나는 버섯이 아니었다

  눈치가 좀 보여서지, 아버지는 달콤했다
  아버지가 싱싱할수록 뜨거운 자양분은 넉넉히 흘러들어왔다
  가는 햇빛만 겨우 들어오는 숲속 바닥보다는
  가지 위가 따뜻했다

  내 몸속에 또 다른 나를 키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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