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없는 문
정호승
문 없는 문을 연다
이제 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문 안에 있을 때는 늘 열려 있던 문이
문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쾅 닫히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문 없는 문의 문고리를 당긴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돋음발로 겨우 문밖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잠깐 새소리가 들릴 뿐 아무런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에 내 손을 잡고 문 안으로 들어온 사람과
그 사람이 가슴에 가득 안고 들어온 산과 바다가 있는 풍경도
어느새 나를 버리고 문밖으로 나가 보이지 않는다
눈물은 나지 않는다
이제 굳이 문 안으로 걸어들어오던 때를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문 안에서 늘 문이 닫힐까봐 두려워하던
문 안에서 늘 문밖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를
이제 와서 탓하지는 말아야 한다
문 없는 문의 손잡이를 다시 잡는다
문은 없어도문은 열린다
-정호승 시인, < 포옹>, 창비, 7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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