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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시낭송예술인협회 대한민국명시 시낭송100편 선정 한명화 낭송 인문학교실 / 11.십만 년의 사랑 / 정윤천

작성자rthkjc|작성시간23.10.13|조회수349 목록 댓글 0



십만 년의 사랑

정윤천


너에게로 닿기까지 십만 년이 걸렸다
십만 년의 해가 오르고
십만 년의 달이 이울고
십만 년의 강물이 흘러갔다

사람의 손과 머리를 빌려서는
아무래도 잘 헤아려지지 않을 지독한
고독의 시간
십만 년의 노을이 스러져야 했다


어쩌면, 십만 년 전에 함께 출발했을지 모를
산정의 별빛 아래
너와 나는 이제야 도착하여 숨을 고른다

지상의 사람들이
하나 둘 어두움 속으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하였다

하필이면 우리는 이런 비탈진 저녁 산기슭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는가
여기까지 오는 데 십만 년이 걸렸다

잠들어가는 지상의 일처럼 우리는 그만 잠기어도 된다
더 이상의 불빛을 따라나서야 할 모든 까닭이 사라졌다


천 번쯤 나는 매미로 울다 왔고
천 번쯤 나는 뱀으로 허물을 벗고
천 번쯤 개의 발바닥으로 거리를 쏘다니기도 했으리라

한번은 소나기로 태어났다가
한번은 무지개로 저물기도 하였으리라


물방울들이 모여 물결을 이루는
멀고도 반짝이는 여정을 우리는 왔다

태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난다는 의미의
이름으로 불려지던 나비처럼
날고 또 날아올라서 여기까지 왔다

바다인들 거슬러오르려는 거꾸로 붙은 비늘처럼
금빛의 역린 같이
너에게로 닿기까지 십만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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