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진리로부터 자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작성자블리스-|작성시간16.03.13|조회수127 목록 댓글 0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4:35-40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주무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우리가 예수님께 들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책망이 있다면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일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왜 돈이 없느냐, 세력이 없느냐, 인기가 없느냐 하는 책망을 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도, 천국의 약속을 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오늘 본문에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대체 제자들은 얼마나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준엄한 책망을 들어야 했을까?

 

먼저 그날 밤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다. 35-36절에 보면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순종하기 어려운 것은 무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자는 말씀이었다. 무리와 함께 있어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고, 무리와 함께 있어야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리를 떠나라는 말씀은 절대로 순종하고 싶지 않은 명령이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곳을 떠났다.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주무시게 되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제자들을 보면서 책망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두 번째로 제자들은 그날 밤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36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모시고 가매.”

 

그 날 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유람선이나 화물선이 아니라 고기 잡는 작은 배였다. 따라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지척에 있었다. 밤새도록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렇게 한 배를 타고 그 날 밤을 보냈는데 새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세 번째로 제자들은 밤새도록 애쓰고 수고했다. 37절을 보십시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제자들은 거센 풍랑으로부터 배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한 숨도 눈을 붙일 수 없었고, 잠시도 두 팔을 쉴 수 없었다. 노를 젓고, 물을 퍼내고, 배의 균형을 잡으며 그 엄청난 풍랑과 사투를 벌였다. 정말 칭찬 받아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큰 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마지막으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능력과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증명되는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책망을 들어야 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대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면,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도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애쓰고 희생하는 것도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하는 것도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면, 대체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왜 예수께서는 우리가 보기에는 훌륭하기 그지없는, 칭찬 받아 마땅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는 준엄한 책망을 하셨을까요?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데 열중한 그들은 예수께서 선상에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예수를 잊고 있었다."

 

그날 밤 제자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의 문제다.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어디론가 가고 있으면서, 혹은 어떤 일을 열심히 하면서, 정작 그 일을 하게 하신 예수님은 잊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예수님이 뒷전에 계시게 할 수 있다. 밤낮으로 교회일 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면서 정작 예수님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의만을 높이는 시험에 빠질 수 있다.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면서, 그것에 압도되고 충격에 빠지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은 놓쳐버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다.

 

우리가 보기에 그날 밤의 제자들은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순종했고, 예수님과 가까이에 있었으며 밤새도록 수고했고, 기적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빠져버린 함정이다.

 

제자들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세상의 물결, 사람들의 생각은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이 사탄이 활동하는 유일한 목적이다. 특별히 사단은 우리가 예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일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첫째, 복음 안에 산다고 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이.

 

우리가 복음의 울타리,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은혜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다. 그러나 복음의 울타리 안에도 여전히 사단의 함정은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이다. 울타리를 너무 믿고 신뢰하다보니 정작 그 울타리를 세우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다. 예수님과 개인적인 깊은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사라졌다. 결국 복음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만 예수님과의 교제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간교한 사단의 술책이다.

 

복음의 울타리 안에 거함을, 진리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감을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울타리는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 진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17:3)이지 울타리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심령에, 진리이신 예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없다면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며 책망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단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일을 명하신 예수님이지 일 자체가 아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믿음 없는 일이며 결국 주님으로부터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는 책망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바쁘게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며, 그분을 내 마음 중심에 모시는 일이다.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하는 모든 일은 아무리 그럴듯하고 성공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헛된 일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는 책망으로 끝나는 일이다.

 

자신의 열세 살 된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일 년 동안 시신을 집안에 두어 백골이 된 상태로 발견된 끔찍한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목사다. 독일 유학을 다녀와 한 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참으로 놀랍고 두려운 것은 그런 끔찍한 일을 하고도 강단에서 하나님 사랑을 설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두렵습니까?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예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설교하고 가르치는 신실한 목사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믿음은 커녕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도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함정이다이것을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일로 여기면 안 된다.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저도 이렇게 될 수 있고, 여러분도 이렇게 될 수 있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이런 시험에 빠질 수 있다.

 

고후 13: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잘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험에 합격하였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며 여러분 속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더욱더 실감하고 있습니까? 그와 반대로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된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며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실감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스도인 흉내만 내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만다예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따라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봐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