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호모 데우스의 길

오쇼, 물질과 영혼의 완벽한 랑데부, 완전한 신인(神人)시대가 여는 사람천국

작성자유명재|작성시간26.06.17|조회수13 목록 댓글 0

물질과 영혼의 완벽한 랑데부 :

완전한 신인(神人)시대가 여는 사람천국

[상세 핵심 요약]

반쪽짜리 진리(정신분열증)의 시대를 끝내다:

과거의 철학과 종교는 육체를 세속적이라 비난하고 영혼만을 숭배하거나, 반대로 물질만 좇고 영혼을 부정했습니다. 그 결과 동양은 영혼은 맑으나 육체가 굶주려 개처럼 죽어갔고, 서양은 물질은 풍요로우나 영혼이 텅 비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비극(분열)을 겪었습니다.

과학과 종교, 빵과 명상은 새의 두 날개입니다:

예수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빵이 '없이도' 살 수는 없습니다. 외부를 탐구하는 과학(서양의 지성)과 내면을 탐구하는 종교(동양의 직관)는 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두 날개입니다. 이 두 세계를 모두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천부적 권리입니다.

심각함을 벗어던진 유쾌한 반역자, 호모데우스:

낡은 인류는 늘 심각하고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긍정하고 대지를 사랑하는 새로운 인류는 죽음 앞에서도 쾌활하게 웃을 수 있는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녔습니다. 이들이 온 세상을 웃음과 기쁨으로 채워갈 때, 이 아름다운 지구는 비로소 '사람천국'으로 완성됩니다.

 

https://dlink.podbbang.com/63653235

 

 

[프롤로그] 집을 잃은 주인, 주인을 잃은 집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길고 어두운 '정신분열증'을 앓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철학자와 신비가들은 인간을 두 조각으로 찢어놓았습니다. 육체는 더럽고 영혼은 거룩하다며 한쪽을 실재(Reality)라 부르고 다른 한쪽을 환상(Maya)이라 부르며 배척했습니다.

그 끔찍한 분열의 결과가 바로 오늘날 동양과 서양의 뼈아픈 현실입니다. 서양은 물질과 육체(과학)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눈부신 과학기술과 거대한 부를 쌓아 올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화려한 집 안에 살아야 할 '주인(영혼)'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무의미함과 권태 속에서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왜 존재하는지조차 모른 채 길을 잃었습니다.

반대로 동양은 영혼과 의식(종교)을 선택하고 물질을 환상이라며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깊은 내면의 고요함을 지닌 위대한 '주인(붓다)'들을 배출했지만, 그 주인이 머물러야 할 '집(물질)'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배고픈 위장과 병든 육체, 가난 속에서 굶어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기쁘게 명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이 지독한 반쪽짜리 실험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다가오는 '신인(神人)시대', 우리가 창조할 궁극의 진화인 '사람특이점(Human Singularity)'은 이 찢어진 두 세계가 마침내 하나로 뜨겁게 끌어안는 위대한 랑데부의 순간입니다.

[본문]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온전한 우주

1. 과학과 종교, 적이 아니라 완벽한 동반자

"과학은 객관적 세계에서의 진리 탐구이고 종교는 주관적 세계에서의 진리 탐구이다. 과학과 종교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두 날개와 같다."

새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시 물질문명이나 영성, 단 하나만으로는 결코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연구실의 현미경과 사원의 명상 방은 서로 싸워야 할 적이 아닙니다.

서양을 대표하는 남성적인 공격적 지성(과학)은 자연의 비밀을 풀고 인간의 육체를 질병과 굶주림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반면 동양을 대표하는 여성적인 수용적 직관(명상)은 인간 내면의 심연을 밝히고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키플링은 "동양과 서양은 결코 만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새로운 인류는 자신의 좌뇌와 우뇌를 통합하듯 이 두 세계를 자기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해 냅니다. 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다루면서도 영혼의 깊은 침묵을 유지하는 사람, 우리는 물질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영성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2. 대지를 사랑하라, 육신이 곧 거룩한 사원이다

"이 대지는 사랑받아야 한다. 이 육신은 그 안에 많은 신비를 가지고 있어서 붓다조차도 이 육신 때문에만 가능하다. 이 육신은 가장 위대한 가능성의 사원이 된다."

과거의 낡은 종교들은 이 지구를 '잠시 머물다 가는 고통의 바다'로 가르쳤습니다. 육체를 욕망의 덩어리로 비하하고 세상을 증오하도록 세뇌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를 무참히 파괴하고 착취해 왔습니다.

하지만 깨어난 호모데우스(Homo Deus)들은 지극히 세상적(earthy)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주의란 돈의 노예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푸른 행성이 우주에서 가장 경이롭고 생명력 넘치는 선물임을 온몸으로 자각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죄악의 껍데기가 아니라, 우주의 신비를 담고 있는 가장 완벽하고 거룩한 사원입니다. 붓다의 깨달음도, 예수의 사랑도 결국 이 '살아 숨 쉬는 육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육체의 건강한 생명력 없이 의식만 비대해지는 것은 불균형입니다. 건강한 빵(물질)을 먹고 춤추는 육신 위에, 깊고 투명한 의식이 내려앉을 때 인간은 마침내 완벽한 전체성(Totality)을 회복합니다.

3. 유머와 웃음, 반역자의 가장 위대한 무기

"새로운 인간, 반역가는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죽음의 얼굴 앞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는 결코 심각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키득거린다."

과거의 성인들이나 구도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늘 심각하고, 근엄하며,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종교는 인간의 웃음을 빼앗고 경건함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활력을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낡은 관습과 '주의(-isms)'를 깨부수고 나온 새로운 인류는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닌 '유쾌한 반역자'들입니다. 그들은 싸우는 동안에도, 심지어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심각해지지 않고 쾌활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삶이 한바탕 신나는 놀이이자 축제임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근엄함은 에고(Ego)의 포장이지만, 해맑은 웃음은 영혼의 순수함입니다. 만약 전 세계가 비난하고 억압한다 해도 그들은 춤추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 반대가 오히려 그들이 걷는 낡은 틀에 대한 반역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호모데우스들은 눈물과 고통을 찬양하던 종교를 끝내고, '웃음과 기쁨'을 가장 근본적인 가치로 삼는 벅찬 세상을 창조할 것입니다.

4. 진정한 부(富)는 소유를 초월할 때 드러난다

"서양에는 물질적 풍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뼛속까지 물질주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질적 부 안에 진정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때는 오직 그대가 그것을 다 가졌을 때뿐이다."

가난을 미화하는 것은 노예의 도덕입니다. 새로운 인류는 부와 풍요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첨단 기술과 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풍요로운 세상을 누립니다.

다만 그들은 돈과 물질에 '잡혀먹히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의 풍요를 다 누려본 자만이 "아, 이것이 내 영혼을 궁극적으로 채워주지는 못하는구나"라는 위대한 허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핍에서 오는 강요된 금욕이 아니라, 완벽한 풍요 속에서 자발적으로 피어나는 영적 자유. 모든 것을 가졌기에 역설적으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존재. 이들이 바로 물질과 영혼을 완벽하게 통합한 새로운 시대의 마스터들입니다.

[에필로그] 온전한 당신이 창조하는 '사람천국'

우리는 더 이상 어느 한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구실의 치열한 이성과 숲속의 고요한 명상을 동시에 사랑하십시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기되, 언제든 그 모든 것을 맨몸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영혼의 바람을 품으십시오.

물질은 의식의 외면이고, 의식은 물질의 내면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기적입니다. 우리 안에서 쪼개져 있던 이 두 세계가 눈물을 흘리며 뜨겁게 화해하고 포옹할 때,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길고 긴 인류의 밤은 끝이 납니다.

가장 풍요로운 빵을 나누며, 가장 깊은 사랑을 노래하고, 죽음 앞에서도 유쾌하게 춤추며 웃는 사람들. 육체라는 아름다운 사원 안에서 신의 황홀경을 맛보는 존재들.

당신이 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시대를 뛰어넘은 위대한 '호모데우스'입니다. 그리고 물질의 풍요와 영혼의 평화가 완벽하게 입맞춤하는 바로 이 대지 위가, 우리가 영원히 춤추며 살아갈 눈부신 '사람천국'입니다.

https://youtu.be/wQFAcxOtrv8

 

https://dlink.podbbang.com/b0933e2f

오쇼, 물질과 영혼의 완벽한 랑데부, 완전한 신인(神人)시대가 여는 사람천국

https://cafe.naver.com/homodeus/801 물질과 영혼의 완벽한 랑데부 : 완전한 신인(神人)시대가 여는 사람천국 [상세 핵심 요약] 반쪽짜리 진리(정신분열증)의 시대를 끝내다: 과거의 철학과 종교는 육체를 세속적이라 비난하고 영혼만을 숭배하거나, 반대로 물질만 좇고 영혼을 부정했습니다. 그 결과 동양은 영혼은 맑으나 육체가 굶주려 개처럼 죽어갔고, 서양은 물질은 풍요로우나 영혼이 텅 비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비극(분열)을 겪었습니다. 과학과 종교, 빵과 명상은 새의 두 날개입니다: 예수는 "빵만으로는 살 수 ...

dlink.podbbang.com

#################

성공할수록 공허한 당신에게: '반쪽짜리 인생'을 끝내는 4가지 파격적 통찰

도입부: 화려한 집(물질)에 살고 있지만 정작 주인(영혼)은 부재 중인 우리에게

현대인들이 누리는 전례 없는 풍요 뒤에는 깊고 어두운 심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수천 년간 인류가 집단적으로 앓아온 '정신분열증적' 분열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인간을 두 조각으로 찢어놓았습니다. 육체는 더럽고 영혼은 거룩하다는 이 치명적인 이분법은 오늘날 우리를 거대한 비극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결과, 영혼과 의식만을 선택했던 과거의 동양은 주인이 머물러야 할 '집(물질적 토대)'을 잃어버린 채 배고픔과 질병 속에서 '개처럼 죽어가는' 처참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물질과 과학을 선택한 서양은 눈부시게 화려한 '집'을 지었으나, 그 안에 살아야 할 **'주인(영혼)'**을 실종시켰습니다. 주인 없는 화려한 저택에서 서양인들은 무의미함과 권태에 질식하여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지독한 반쪽짜리 실험을 끝내야 합니다. 물질이라는 외면과 영혼이라는 내면이 하나로 뜨겁게 포옹하는 '사람특이점(Human Singularity)'의 시대를 선언합니다. 물질과 의식이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온전한 '신인(神人)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4가지 파격적인 통찰을 제안합니다.

통찰 1: 과학과 종교, 싸우지 말고 '두 날개'로 날아올라라

과거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은 "동양과 서양은 결코 만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의 인류사에서는 진실이었을지 모릅니다. 서양은 밖으로 향하는 '남성적인 공격적 지성(과학)'을 통해 자연을 정복했고, 동양은 안으로 향하는 '여성적인 수용적 직관(명상)'을 통해 내면의 심연을 탐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인류는 자신의 좌뇌(서양의 지성)와 우뇌(동양의 직관)를 통합하듯, 이 두 세계를 자기 안에서 완벽하게 융합해 냅니다. 연구실의 현미경과 사원의 명상 방은 적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동반자입니다. 첨단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영혼의 깊은 침묵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천부적 권리입니다.

"과학은 객관적 세계에서의 진리 탐구이고 종교는 주관적 세계에서의 진리 탐구이다... 과학과 종교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두 날개와 같다."

통찰 2: 대지를 사랑하라, 당신의 육신이 곧 '거룩한 사원'이다

과거의 낡은 종교들은 이 지구를 '잠시 머물다 가는 고해(苦海)'라 가르치며 육체를 죄악시하도록 세뇌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부정하는 것은 존재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붓다의 깨달음도, 예수의 사랑도 결국 살아 숨 쉬는 '육신'이라는 사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인류인 '호모데우스(Homo Deus)'는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입니다. 여기서의 현실주의란 단순히 돈의 노예가 되는 비천함이 아닙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푸른 행성이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선물임을 자각하고, 육신을 우주의 신비를 담은 가장 거룩한 사원으로 대우하는 성스러움입니다. 건강한 빵(물질)을 먹고 춤추는 육신 위에 깊은 의식이 내려앉을 때, 비로소 인간은 전체성을 회복합니다.

"이 육신은 가장 위대한 가능성의 사원이 된다... 이 육신은 사랑받아야 한다. 이 대지는 사랑받아야 한다."

통찰 3: 심각함을 버려라, '유머와 웃음'은 가장 강력한 반역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성자들은 대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채 심각하고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엄함은 에고(Ego)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가짜 껍데기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깨어난 자는 삶이 한바탕 신나는 놀이이자 축제임을 꿰뚫어 봅니다.

새로운 인류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쾌활하게 웃을 수 있는 유머 감각을 지닌 '유쾌한 반역자'들입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키득거리며 세상의 모든 낡은 관습과 억압을 타파합니다. 웃음이야말로 영혼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며, 모든 '주의(-isms)'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반역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종교는 고통을 찬양하는 대신 웃음을 근본 교리로 삼아야 합니다.

"새로운 인간, 반역가는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죽음의 얼굴 앞에서도 웃을 수 있다."

통찰 4: 진정한 부(富)는 '모든 것을 가져본 자'만이 초월할 수 있다

가난을 미화하는 것은 비겁한 '노예의 도덕'에 불과합니다. 가난은 영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물질적 결핍 상태에서 강요된 금욕은 진정한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진정한 초월은 오직 풍요를 통과해본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승리입니다.

물질적 부를 다 가져본 자만이 역설적으로 "물질만으로는 내 영혼을 궁극적으로 채울 수 없다"는 위대한 허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핍 때문이 아니라 풍요 속에서 자발적으로 피어나는 영적 자유, 모든 것을 소유하되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스터의 태도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전략입니다.

"물질적 부 안에 진정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때는 오직 그대가 그것을 다 가졌을 때뿐이다.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다."

결론: 물질과 의식이 입맞춤하는 '사람천국'을 향하여

물질은 의식의 외면이고, 의식은 물질의 내면입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기적입니다. 우리 안에서 쪼개져 있던 이 두 세계가 눈물을 흘리며 뜨겁게 화해할 때, 인류의 길고 어두운 정신분열증은 마침내 종식됩니다.

우리는 이제 가장 풍요로운 빵을 나누면서도 죽음 앞에서도 유쾌하게 춤추는 사람들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치열한 연구실의 이성과 숲속의 고요한 명상을 동시에 사랑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축제를 즐기면서도, 언제든 맨몸으로 훌훌 떠날 준비가 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시대를 뛰어넘은 '호모데우스'입니다. 그리고 물질과 영혼이 완벽하게 입맞춤하는 바로 이 대지 위가, 우리가 영원히 춤추며 살아갈 눈부신 '사람천국'이 될 것입니다.

인류가 수천 년간 지속해 온 정신과 물질의 분열을 끝내고, 두 세계를 완벽하게 통합한 새로운 인류인 **'호모데우스'**의 탄생을 선언합니다. 과거의 서양은 객관적 과학에 치중해 영혼을 잃었고, 동양은 주관적 명상에 몰입해 현실의 결핍을 초래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를 새의 두 날개에 비유하며, 육신을 거룩한 사원으로 예찬하고 대지를 사랑하는 현실주의적 영성을 가질 것을 권유합니다.

특히 새로운 인간은 근엄함 대신 유머와 웃음을 지녔으며, 풍요를 누리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전체성을 회복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지성과 직관이 하나로 어우러진 눈부신 사람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물질과 영혼의 균형을 이룬 새로운 인간상, 호모데우스는 누구인가요?

호모데우스(Homo Deus)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물질과 영혼의 '정신분열증'적 대립을 끝내고, 이 두 세계를 완벽하게 하나로 통합해 낸 궁극의 진화이자 새로운 인류를 의미합니다,. 과거 인류가 서양의 물질주의(과학)와 동양의 영성주의(종교)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불균형의 비극을 겪었던 것과 달리, 이들은 분열을 극복하고 완벽한 전체성을 회복한 존재입니다,.

자료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상, 호모데우스의 핵심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지와 육신을 사랑하는 현실주의자:

과거의 종교가 육체를 욕망의 덩어리로 비하하고 지구를 고통의 바다로 여겼던 것과 달리, 호모데우스는 이 지구를 우주에서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선물로 자각하며 사랑합니다,. 이들에게 육신은 죄악의 껍데기가 아니라 우주의 신비를 담고 있는 거룩한 사원이며, 깨달음조차 육신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과학(이성)과 명상(직관)의 완벽한 융합:

이들은 연구실의 치열한 이성과 사원의 고요한 명상을 적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두 날개로 받아들입니다,. 첨단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을 다루는 서양의 '공격적 지성'을 갖추면서도, 동양의 '수용적 직관'과 깊은 영혼의 침묵을 자기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로 통합해 냅니다,.

심각함을 벗어던진 유쾌한 반역자:

과거의 성인들이 무거운 십자가를 진 비참하고 근엄한 얼굴을 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인류는 삶이 한바탕 신나는 놀이임을 꿰뚫어 본 자들입니다. 이들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쾌활하게 웃을 수 있는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녔으며, 웃음과 기쁨을 근본적인 가치로 삼습니다,.

풍요 속에서 피어나는 영적 자유:

호모데우스는 가난을 미화하지 않고 물질과 풍요를 적극적으로 누립니다. 하지만 물질에 얽매이거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풍요를 누려보았기에 역설적으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소유를 초월하는 진정한 마스터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모든 이념과 '주의(-isms)'의 초월: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공산주의 등 기존의 어떠한 관념이나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현실을 스크린 삼아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지 않고, 열린 눈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결론적으로 호모데우스는 가장 풍요로운 물질(빵)을 나누며 가장 깊은 사랑(명상)을 노래하는, **좌뇌와 우뇌가 완벽히 화해한 '신인(神人)'**입니다,. 이들이 두 날개를 펴고 물질과 영혼의 입맞춤을 이루어낼 때, 비로소 이 아름다운 지구는 인간이 영원히 춤추며 살아갈 눈부신 **'사람천국'**으로 완성됩니다,.

삶을 축제로 만드는 새로운 인류의 '유머'와 '반역'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새로운 인류(호모데우스)가 보여주는 '유머'와 '반역'은 과거의 종교와 관습이 강요했던 억압과 비참함에 대한 유쾌한 저항이자,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본 영혼의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이전 대화에서 살펴본 호모데우스의 특성과 연결되는 이 두 가지 개념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비참함과 억압에 대한 반역: 과거의 낡은 종교와 전통은 경건함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웃음을 빼앗고 삶의 활력을 억압해 왔으며, 구도자들은 늘 심각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진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인류의 '반역'은 이러한 눈물과 고통을 찬양하던 낡은 틀과 비참함 그 자체를 향한 것입니다. 세상이 이들의 유쾌함을 비난하고 맞선다 해도 이들은 동요하지 않으며, 세상의 반대는 오히려 이들의 반역적 행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이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가장 위대한 무기이자 교리인 유머: 이들에게 근엄함은 에고(Ego)의 포장일 뿐이며, 해맑은 웃음이야말로 영혼의 순수함을 나타내는 증표입니다. 이들은 삶이 한바탕 신나는 놀이이자 축제라는 것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았기에,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파괴할 때는 물론 심지어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결코 심각해지지 않고 쾌활하게 웃을 수 있는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유쾌한 반역자들은 비참함을 강요하는 낡은 관습을 부수고, '웃음과 기쁨'을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자 교리로 삼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자 합니다. 이 엄청난 유머 감각으로 죽음 앞에서도 유쾌하게 춤추며 온 세상을 웃음으로 채워갈 때, 비로소 물질과 영혼이 화해한 이 아름다운 지구는 진정한 **'사람천국'**으로 완성됩니다

######################

새로운 인간에 대하여 - 오쇼

새로운 인간은 세상적(earthy)일 것이며, '세상적'이라 함은 물질주의적이란 뜻이 아니다. 새로운 인간은 현실주의자가 될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우리의 소위 종교들이 우리에게 이 세상을 증오하도록 가르쳤기에, 우리는 그것을 파괴했다. 이것은 아름다운 행성이며, 가장 아름다운 행성들 중 하나이다. 가장 생명력 있는 행성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행성은 사랑받아야 하며, 이 행성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이것은 선물이다. 이 육신은 그 안에 많은 신비를 가지고 있어서 붓다조차도 이 육신 때문에만 가능하다. 이 육신은 가장 위대한 가능성의 사원이 된다: 붓다의 경지, 열반(nirvana). 이 육신은 사랑받아야 한다. 이 대지는 사랑받아야 한다."

 

"새로운 인간, 반역가는 엄청난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죽음의 얼굴 앞에서도 웃을 수 있다. 살아있는 동안, 싸우는 동안,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동안, 그는 결코 심각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키득거린다. 그는 비참한 사람이 아니다 - 그것이 바로 그가 반역하는 대상이다. 그는 전 세계가 웃음으로 가득 차기를 원하며, 웃음을 가장 근본적인 교리로 삼는 종교들을 만들기를 원한다. 그리고 설령 전 세계가 그대에 맞선다 해도 동요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은 실제로 그대를 더 강하게 만들고, 더 많은 영양분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하고 있는 것이 반역적 행위라는 그대의 결론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 세계가 그대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서양에는 물질적 풍요가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 더 좋은 집, 더 큰 자동차, 더 많은 은행 잔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사람들이 물질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적 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그들이 물질주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양에서는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영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난은 영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 사실, 물질적 부(material wealth) 안에는 진정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그대가 깨달을 수 있는 때는 오직 그대가 그것을 가졌을 때뿐이다. 그 이전에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인간은 힌두교도도, 이슬람교도도, 기독교도도, 공산주의자도 아닐 것이다. 새로운 인간은 이러한 모든 '주의(isms)'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인간은 단순히 현실로 향하는 열림이 될 것이며, 현실을 향한 창이 될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허용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현실에 투사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을 스크린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은 열려있을 것이며, 관념들로 가득 차있지 않을 것이다."

 

서양은 남성적 마음, 공격적 지성을 대표한다. 동양은 여성적 마음, 수용적 직관을 대표한다. 동양과 서양은 단순히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 그 분리는 매우 매우 의미심장하고 심오하다.

 

그리고 그대는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가 말한 것은 의미가 있다, 뜻이 있다. 그는 동양과 서양은 결코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진실의 단편이 있다. 왜냐하면 만남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동 방식이 너무나 정반대이다.

 

서양은 공격적이고, 과학적이며, 자연을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동양은 비공격적이고, 수용적이며 - 자연에 의해 정복될 준비가 되어 있다. 서양은 알고 싶어 열망한다. 동양은 인내심이 있다. 서양은 삶과 존재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주도권을 잡는다. 그것은 문들을 열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동양은 단순히 깊은 신뢰 속에서 기다린다: "내가 가치 있을 때마다, 진리는 나에게 드러날 것이다."

 

서양은 마음의 집중이다: 동양은 마음의 명상이다. 서양은 생각이다: 동양은 생각없음이다. 서양은 마음이다: 동양은 무심이다. 그리고 키플링은 논리적으로 옳아 보인다. 동양과 서양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은 단지 지구가 두 반구로 나뉘어 있다는 것만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대의 마음도, 그대의 뇌도 대표한다. 그대의 뇌도 지구처럼 두 반구로 나뉘어 있다. 그대의 뇌는 그 안에 동양을 가지고 있고 서양을 가지고 있다. 그대 뇌의 왼쪽 반구는 서양이다. 그것은 오른손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대 뇌의 오른쪽 반구는 동양이다. 그것은 왼손과 연결되어 있다. 서양은 우파다. 동양은 좌파다. 그리고 둘의 과정은 너무나 다르다.... [....]

 

나는 피타고라스와 매우 깊은 영적 친밀감을 느낀다. 나도 그대에게 동양과 서양의 통합을,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지성과 직관의 통합을, 남성적 마음과 여성적 마음의 통합을, 머리와 가슴의 통합을, 오른쪽과 왼쪽의 통합을 가져오고 있다. 나도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위대한 조화를 창조하려 노력하고 있다. 오직 그 조화만이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 조화만이 그대에게 새로운 탄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객관적 세계에서의 진리 탐구이고 종교는 주관적 세계에서의 진리 탐구이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두 손이나 두 날개와 같다. 그것들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다시 상기한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교회, 사원, 실험실은 적이 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일종의 우정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은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금 그가 과학을 선택하면 외적으로는 부유해지지만 내적으로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그가 종교를 선택하면, 내적으로는 부유해지지만, 외적으로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서양은 과학을 선택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완전히 길을 잃었고, 무의미함을 느끼며, 자살적이다. 인간이 내면을 들여다볼 때, 공허함과 텅 빔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서양에서는 내적 세계가 매우 가난해졌다.

 

동양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과학에 맞서 종교를 선택했다. 그들의 내적 세계는 더 고요하고, 더 조용하며, 더 풍요롭다. 하지만 외적으로는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다 - 음식도 없고, 약도 없고,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설도 없어서, 거의 동물처럼 또는 그보다 더 나쁜 상태로 살고 있다.

 

동양이 동양이 되고 서양이 서양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단지 물질주의자이거나 단지 영성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면 - 그것들은 그대 안에서, 모든 이 안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 - 그렇다면 왜 물질주의와 영성주의가 함께 존재할 수 없겠는가? 그것들은 그래야만 한다!

 

인간은 물질주의자이면서 영성주의자여야 한다. 선택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선택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두 세계를 모두 가질 수 있다 - 그대는 두 세계를 모두 가져야 한다. 그것은 그대의 타고난 권리이다."

 

우리는 둘 다 함께이다. 우리는 단지 영성만이 아니며 - 단지 의식만이 아니며 - 단지 물질만도 아니다. 우리는 물질과 의식 사이의 엄청난 조화이다. 또는 아마도 물질과 의식은 하나의 현실의 두 가지 양상일 뿐이다: 물질은 의식의 외면이고, 의식은 물질의 내면성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통일성을 선언한 철학자, 현자, 또는 종교적 신비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인간 존재를 분리하는 것을 지지했고, 한 쪽을 실재라 부르고 다른 쪽을 비실재라고 불렀다. 이것이 전 지구에 정신분열증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대는 단지 육체로서만 살 수 없다. 그것이 예수가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고 말한 의미이다 - 하지만 이것은 진실의 절반일 뿐이다. 그대는 의식이 필요하고,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사실이다 - 하지만 그대는 빵 없이도 살 수 없다. 그대는 그대 존재에 두 가지 차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두 차원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성장을 위한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는 하나를 지지하고 다른 하나를 반대하거나, 다른 하나를 지지하고 첫 번째 것을 반대해왔다.

 

인간은 전체성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것이 비참함, 고뇌, 그리고 엄청난 어둠을 만들어냈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밤이며, 끝이 없어 보인다. 만약 그대가 육체에 귀를 기울이면, 그대는 자신을 비난한다. 만약 그대가 육체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대는 고통받는다 - 그대는 배고프고, 가난하고, 목마르다. 만약 그대가 의식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그대의 성장은 한쪽으로 치우칠 것이다: 그대의 의식은 성장하지만 그대의 육체는 쇠퇴할 것이며, 균형은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균형 속에 그대의 건강이 있고, 균형 속에 그대의 전체성이 있으며, 균형 속에 그대의 기쁨, 그대의 노래, 그대의 춤이 있다.

 

서양은 육체에 귀를 기울이기로 선택했고 의식의 현실에 관해서는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었다. 궁극적 결과는 위대한 과학, 위대한 기술 - 풍요로운 사회,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것들의 부이다. 그리고 이 모든 풍요 속에서 영혼 없는 가난한 인간이 있으며, 완전히 길을 잃었다 -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왜 존재하는지 모르며, 마치 우연이나 자연의 기형처럼 느낀다.

 

의식이 물질 세계의 풍요와 함께 성장하지 않는 한, 육체는 너무 무거워지고 영혼은 너무 약해진다. 그대는 자신의 발명품들, 자신의 발견들에 의해 짐을 지게 된다. 그대를 위해 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대신, 그것들은 지적인 사람들이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삶을 만든다.

 

동양은 의식을 선택했고 물질과 모든 물질적인 것, 육체를 포함하여 마야(maya, 환상)로서 비난했다. 그들은 그것을 환영(illusion)이라 불렀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로는 실재성이 없는 것이라고. 동양은 고타마 붓다, 마하비라(Mahavira), 파탄잘리(Patanjali), 카비르(Kabir), 파리드(Farid), 라이다스(Raidas)를 만들어냈다 - 위대한 의식, 위대한 깨어있음을 가진 사람들의 긴 계보를. 하지만 그것은 또한 수백만의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배고프고, 굶주리고, 개처럼 죽어가는 - 충분한 음식도 없고, 마실 깨끗한 물도 없고, 충분한 옷도 없고, 충분한 거처도 없는.

 

서양은 그것의 영혼, 그것의 내면성을 잃어버렸다. 무의미함, 권태, 고뇌에 둘러싸여,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학의 모든 성공은 쓸모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왜냐하면 집은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지만, 집의 주인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여기 동양에서는 주인은 살아있지만 집이 비어있다. 배고픈 위와 함께, 병든 육체와 함께, 그대를 둘러싼 죽음과 함께 기뻐하기는 어렵다. 명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불필요하게도, 우리는 패배자가 되어왔다.

 

우리의 모든 성인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철학자들, 영성주의자들과 물질주의자들 모두가 인간에 대한 이 엄청난 범죄에 책임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