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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

작성자mirine|작성시간07.07.27|조회수452 목록 댓글 0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 논문)



교역자의 영성이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

실천신학 전공 김 성 식 1990 년


목 차


I. 서 론 ................................................... 1
A. 연구의 동기와 목적 ...................................... 1
B. 연구의 범위와 방법 ...................................... 3

II. 영성에 대한 고찰 ......................................... 5
A. 영성의 정의 ............................................. 5
B. 영성의 성서적 이해 ...................................... 8
1. 구약의 영성 ........................................... 8
2. 신약의 영성 ........................................... 11
C. 영성의 역사적 이해 ...................................... 13
1. 초대교회의 영성 ....................................... 14
2. 중세교회의 영성 ....................................... 16
3. 종교개혁새대의 영성 ................................... 19
4. 현대교회의 영성 ....................................... 23

III. 목회현장에 있어서 교역자의 영성 ......................... 26
A. 교역자와 영성 ........................................... 26
1. 교역자의 자격 ......................................... 26
2. 교역과 영성과의 관계 .................................. 31
3. 교역자의 영성훈련 ..................................... 35
B. 목회현장과 영성 ......................................... 38
1. 영성과 기독교교육 ..................................... 38
2. 영성과 목회상담 ....................................... 40
3. 영성과 치유목회 ....................................... 43
4. 영성과 예전적 적용 .................................... 45

IV. 교회성장을 위한 교역자의 영성 ............................ 48
A. 바람직한 교역자의 영성 .................................. 48
B. 교역자의 영성과 교회성장 ................................. 49
C. 교회성장을 위한 교역자의 영성 개발 ...................... 52
1. 영성개발의 필요성 ..................................... 52
2. 영성개발의 목표 ....................................... 54
3. 영성개발의 방법 ....................................... 55

V. 결 론 ................................................... 67

* 참 고 도 서 ................................................ 70


. 서 론


A. 연구의 동기와 목적


한국의 개신교회는 선교 100주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가장 성공적인 선교역사를 만들어 아시아는 물론 세계 교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회가 급성장을 하게된 그 요인은 두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종교성이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선교 초기부터 국내와 정세가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순교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교회를 성장시키겠다는 성장의욕 역시 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양적으로 경이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오순절 이전에 기독교는 아직도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 못했었다. 구약의 족장들과 광야의 이스라엘, 사사와 열왕의 지도를 받은 이스라엘의 종교는 아직도 오순절의 기독교와 같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다. 물론 포로 이후에 유대 회당 중심의 종교도 또 말기 유대교의 종교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상태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였다. 육신으로 계시던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은 오실 메시야를 모시는 놀라운 소망으로 살았으나 아직도 부활하신 주님을 성령안에서 모시는 오순절 교회의 완성된 상태에는 미칠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고 말씀하셨다. 이와같은 분부를 받은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쓸때에 (행 1:14) 오순절날이 되었고 요엘서에 예언하던대로 그 모임 위에 하나님의 강한 영의 역사가 일어났고, 성령은 강림하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머물게 되었고, 모였던 모든 사람이 성령충만함을 얻게 되었다. 여기서 기독교의 참모습은 비로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산역사를 떠난 기독교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로서 역사하시는 영적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선교 제 2세기를 맞이하여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점검하고 양적 팽창주의로 인한 물량주의, 기복신앙, 샤마니즘, 세속주의, 기업화 등등의 요소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새교회상 정립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한국교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영성훈련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첫번째 본 연구는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두번째는 신앙의 이질화 내지 저질화를 막기 위해서이다. 신앙의 이질화 내지 저질화를 막기 위해서는 말씀 중심적인 신앙이 필요하고 말씀 중심적인 신앙을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성훈련이 요구되고 있다.
세번째 본 연구의 목적으로는 참신한 교회성장을 위해서이다.
오늘날 교회성장을 위해서 각 교회가 온갖 방법과 다각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현대사회에서 교회답지 못하다고 오해받기 쉬운 교회는 교회다운 참신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와 신자들이 말씀안에 거해야 한다. 말씀안에 거하는 삶 이것 역시 영성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다.
네번째 목적은 교회갱신을 통한 교회성장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영적 삶을 충만케하는 영성훈련을 통해서 교회 갱신이 시도되어야 한다. 영성의 생활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참된 삶을 영위하게 되며 교회는 더욱 교회답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성생활은 곧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이요, 성령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성령충만한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있어 체험이 중요하기도 하나 모든 체험이 곧 성령의 역사는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영성신학과 영성생활은 사변적이며 실천적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기독교적 생활을 다루기 때문에 매우 실천적인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성에 관한 연구의 목적이 학문적인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을 육성하는데 있기때문에 오히려 체계적으로 연구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고자 한다.
제 II 장에서는 일반적인 영성에 대한 고찰로써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영성의 정의를 살피고 아울러 영성의 역사적 흐름을 살피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목회현장에 있어서 교역자의 영성으로서 목회와 영성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목회현장 속에서 영성이 어떻게 적용되는 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제 IV 장에서는 교회성장을 위한 교역자의 영성과 영성개발을 피력하고,마지막으로 제 V 장에서는 전체적인 논술을 요약하고 결론을 맺고자 한다.

I. 영성에 대한 고찰


A. 영성의 정의

'영성 (spirituality)'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종교적인 가치에 붙잡혀서 사는 영적인 삶의 상태"를 리킨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이 용어와 혼동하는 다른 한 표현인 '경건 (piety)'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의무에 충실함'을 뜻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순수한 의미의 '영성'과 '경건'은 같은 종교생활의 내용을 표시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영성이란 무엇일까 ? 기독교 영성에 관한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의견을 달리한다.
1) 샤르댕 (Teil hard de chardin) - "영성은 우주생명 그 자체의 최고의 꽃핌이요, 최종 승화된 모습이며, 우주생명의 본질적인 마지막 종착역"이라 정의하면서 하나의 전체적 영적 현상으로 정신권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존재계의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2) 홈즈 (Urban T. Holmes) - "기독교 영성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요, 그 관계는 감각세계를 초월하며 주체의 노력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확장되고 고양된 의식으로서 주체를 인식하며 그 본질은 역사적 배경속에서 주어진 것이며 그 모습은 이 세상 속에서 창조적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3) 칼 라너 (Karl Rahner) - "인간의 영성은 인간이 창조때 부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초자연적 생명이며, 세례로 말미암아 죽었던 속사람의 생명이 다시 소생하여 살아난 은총의 생명으로 성체성사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 성숙하는 실제적인 초자연적 불멸적 생명이다."
4) 췌이퍼 (L. S. Chafer) - "참된 영성이란 성령충만한 자 안에서 또한 그를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발현이다"라고 하므로 인간의 영적 존재의 가치를 성령과의 관계에서 강조한다.
최근에 영성에 관계된 논문과 저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되고 있고 여러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일관성 있는 신학적 정립은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김경재 교수는 "영성은 지(知), 정(情), 의(義)를 통합 총괄하는 인간 존재의 본바탕이며 인간성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며, 마음이 자신의 존재의 근거인 하나님과의 교류, 합일, 동역을 체험하는 영혼의 핵이요, 영성훈련은 본질적으로 성화의 과정이며, 영성은 인간 영혼이 독거하는 독백이 아니라 삶의 현실과 역사현실을 포괄하여야 하며 영성의 사회적 차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다.
오성춘 교수는 "영성은 우리 속에 이루어지는 어떤 성품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과정이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고쳐 나가는 과정이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형제, 자매들 속에 나아가 그들의 삶에 참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천병욱 교수는 영성은 성육신에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현상으로, 교회안에서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으로, 세상 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응답으로서, 교회의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다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황화자 교수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사랑 (요3:16)인 고로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힌 바 되어 그 넓고 깊고 높은 그리고 긴 그의 사랑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 구체화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길 (행 9:12)을 부단히 추구하여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는 삶의 과정이다. 이러한 삶의 과정은 그리스도와 함께 (With Christ), 그리스도 안에 (In Christ),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For Christ) 사는 삶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상의 학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기독교 영성의 특성을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기독교 영성은 인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성품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과정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을 닮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B. 영성의 성서적 이해

1. 구약의 영성

성경에서 영성 (spirituality)이라는 용어는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 (spirit)이라는 용어는 성구 색인사전을 보면 비교적 자세히 나타나 있다.
성서에 언급된 영이란 Spirit (히브리어 : , 헬라어 : )로 그 의미는 바람, 생명, 정신, 성령, 입김, 호흡 (숨), 공기의 움직임을 말한다. 그리고 더 넓게는 생명의 본질이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그 본래의 개념은 창세기 1:2에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 성령의 활동에 의하여 혼돈은 극복되고 세상은 창조되었다. 성령안에서 사는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모든 인간을 위한 강한 도입문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영적인 이해는 창세기 1:26-28과 2:7에 나오는 인간 창조 기사를 고찰하는데서 부터 시작될 수 있다.
구약학자 볼프 (Hans W. Wolff)는 창세기 1:26-28에 나타나는 하나님의형상에서 세 가지 영성적 차원을 지적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와 비슷하게 사람을 만들자.

여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근성을 말한다. "우리가 아담을 만들어 그들이 다스리게 하자"라는 창세기 1:26b의 계속된 내용에서는 인류 공동체를 뜻하는 '아담'이란 단어에서 인류의 공동체성을 찾아야 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 가운데서는 피조물에 대한 주권과 문화와 역사에 대한 위탁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즉 인간은 하나님과 이웃과 피조세계와의 관계속에 놓여진 영적인 존재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여기에서 하나님은 생명의 수여자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오웬 (Owen)은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생기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약에서의 영은 루아흐( , ruach)로서 바람, 숨, 생명력을 지시하는데, 정서와 의지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명사인 ruah는 마소라 본문 (MT) 전체에서 378회 나타난다. 그 중에서 주로 사람이 들이내쉬는 '숨'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33회, '바람'을 이야기한 경우가 117회, '정신'이 76회, 육체속에 내재한 '생명력'이 25회, '정서', '기분', '감정' 이러한 것들의 기본이 되는 자리로서가 3회, 정신적인 활동의 자리 혹은 기관으로서 9회, 인간의지로서 3회, 도덕적 성품으로서 18회,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과 관련하여서는 94회이다. 이처럼 많이 언급되어진 것을 다시 크게 나누어 보면 세가지로 나누어졌다. 포괄적으로 자연계에서 움직이는 기상학적 현상인 바람 즉, 기상학적 현상으로서의 ruah, 그리고 사람속에서 작용하는 각종 능력, 기분, 정서 등과 관련된 ruah, 그리고 하나님과 ruah이다.
하나님의 영이 창조의 시초에 활동하셨듯이 후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근처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고자 하였을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 그 일을 행할 인물들을 지시해 주셨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예언하게 되기를 바라던 모세의 희망은 여러 세기 후 여호와의 날에 대한 요엘의 환상 가운데 반영된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29)

구약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개인들에게 지혜와 창조력을 주셨고,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의 통치권을 수여하셨고, 선택된 백성에게는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해 주셨다.

2. 신약의 영성

신약의 영성에 있어서 그 구심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영성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체험 그리고 제자들의 부활체험과 초대교회의 성령강림 사건에 있다. 케이는 [예수]란 책에서 "예수의 교훈의 핵심은 예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체험" 이라고 했다. 이와같은 신앙체험이란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대화,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체험이 신약의 영성에 기조를 이루고 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세례받으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예수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마가는 "예수 속으로 (into him)" 들어왔다고 표현한다. 마가의 기사는 성령이 예수 속으로 들어가서 머물러 있음을 암시해 주는데 이는 세례받던 그날 예수에게 성령이 강림하였고 그 성령은 예수안에서 계속적으로 있게 된것을 말한다. 복음서들은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 저항할 수도, 하나님을 갈망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예수의 교훈, 선교, 사상 그리고 행동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 즉 신앙체험의 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체험이었다. 예수의 기도생활은 바로 하나님과의 영적교제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의 내면생활은 바로 기도생활이었다.
예수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은 바로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과의 영적교제에서 비롯된 역동적 활동이었고, 계속해서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과 초대교회에 이러한 영적힘이 계승되었다. 사도들의 설교들이 모두 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설교라는 결론을 다드(C.H. Dadd)는 사도교회의 설교에 관한 연구에서 내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령의 강림으로 확증되었다.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서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강력히 증거되었다. 사실상 초대교회는 구약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구약에서의 영체험은 초기 기독교에서 계속되었다. 구약의 영체험은 신적인 영감, 신적인 힘으로 갑자기 인간에게 다가와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발휘하다가는 갑자기 떠나버리는 것인데, 이러한 영에 대한 이해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있었다.
영적인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장 많은 교훈을 준 사람은 사도바울이다.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불러 전도자로 삼았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가 되어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증거하였다. 이때 그는 온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성령께서 지시하시면 그는 행선지를 바꾸기도 했다 (행 16:6). 바울에게서 볼 수 있는 신비주의적인 영성은 '교제의 신비(Communio Mystica)'라는 말로 표현된다. 바울의 교제의 신비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안에' 있는 형태로서 어디까지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에 대한 복종 및 그와의 교제의 관계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런면에서 바울의 영성은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능동적이며 윤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신약의 영성은 영성이 단지 내적인 느낌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들이 되도록 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C. 영성의 역사적 이해

영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영적 생활을 두 형태로 구분한다. 이 두가지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들은 희랍어에서 유래되었다. 부정적 (apophatic) 방법은 자기를 완전히 비워 하나님의 충만함이 자기에게 흘러들어 오게 하는 방법이다. 긍정적 (kataphatic) 방법은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기 위하여 정신적 영상들과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상의 방법이다. 이에 덧붙여 어떤 방법들은 정신의 조명 (사변적) 을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방법들은 마음의 온화함 (정서적) 을 강조한다. 각 방법들은 독특한 문화나 또는 그 문화 안에서 개발한 영적 그룹의 관습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 영성이 성서시대 이후로 추적될 때 명백해 진다. 일반적으로 영성이란 인간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거나, 최고의 실재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어떤 자세나 믿음, 행위등을 의미할 수 있다.
본장에서는 영성이해의 발전과정을 초대교회, 중세교회 그리고 현대교회를 중심으로 전개해 보려고 한다.

1. 초대교회의 영성

고대 기독교시대는 30년경부터 콘스탄틴 대제 (306-337)하에서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받을 때까지로 이시기에 예루살렘에는 원시적 공동체인 최초의 구체적인 교회가 나타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기다렸으며, 날마다 모여 영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모여서 말씀을 연구하고 전혀 기도에 힘쓰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구제에 힘썼으며 서로 애찬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초대교회는 영성의 훈련과 생활이 조화되었다. 기도와 성서연구 그리고 사랑의 모임이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말씀공부 (행 2:42, 3:12, 고전 11:23, 고전 15:11)
2) 합심기도 (행 1:14, 2:4, 3:1-4)
3) 교 제 (행 2:42, 46, 3:11, 4:32)
4) 청빈, 구제, 봉사 (행 2;44-45, 4:32-37, 6:1-6)
5) 금 식 (행 13:2-3, 14:23)
6) 복음전도 (행 1:8, 2:4, 3:11, 4:31)
7) 섬 김 (고후 4:5)
8) 병자들을 위한 봉사 (행 3:1-9, 5:12-16, 19:11-12)
이어서 사도들은 이러한 영성생활을 잘 계승하였고 신학적으로 정립하였다. 초대교회는 그 배경이 희랍사람들로 희랍사람들이 가진 토착화라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영성은 플라톤주의적 영향과 영지주의와의 투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주의의 흐름은 영혼이 영원한 세계로부터 내려와서 일시적으로, 임시적으로 우리의 육체와 관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몸이 죽으면 영혼은 영원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간이 지상생활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우선 인간이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즉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생활로부터 거리를 두고 정신적으로 떨어져 살면 우리가 영원의 세계와 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이전부터 있었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비기독교적 입장이었다. 즉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와같은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기가 매우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문제에 지혜롭게 주의하면서 기독교의 영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2. 중세교회의 영성

초대교회의 수도원 운동은 기독교가 세속적, 이교적 사고방식에 적응하려는 것 때문에 일어난 저항운동이며, 주후 312년 이후 즉, 기독교가 공인받고 박해없는 시대가 시작되면서 순교정신이 사라진데 대한 제 2의 피흘리지 않는 하얀 순교정신의 발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소수 특정인의 올바른 생활은 전 기독교인에게 구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원인들로 인하여 수도원주의가 생겨나게 되었다.
중세의 수도원 운동을 도피적인 은둔적 정신운동이며, 개인주의 운동일 뿐 아니라 성서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금욕주의적인 고행주의를 중심으로 한 비복음적 운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수도원 운동을 통한 영성훈련은 형식적 형태만 남은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은 활력소가 되었다.
수도원 운동을 크게 4단계로 나누어 보면, 제 1단계는 동방 수도원의 정착기로 3-4세기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엔 로마제국의 말기적 현상과 종교의 세력다툼 그리고 교리논쟁 및 분쟁싸움으로 자연히 은둔적인 수도회가 발전되었다. 이집트는 이러한 수도생활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고 수도사들은 육체적 고행과 노동을 통해 영성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은둔 독거를 하던 성 안토니오 (St. Antonil)와는 달리 바질 (Basil)은 공동체 수도생활을 시도하였다.
수도사들이 발전시킨 영성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명상 (Contemplatio)이다. 이것은 명상의 자세와 방법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을 보는 그 상태까지를 말한다. 명상 (Contemplatio)은 복합적인 것으로 세 단계가 있다. 첫단계는 정화로 청결과 청결한 생활양식이다. 두번째 단계는 계몽, 조명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세째 단계는 중세 신비주의의 요소로서 결합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인격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수도사들은 이러한 형태의 영성생활을 가르치면서 지도했다.
제 2단계는 6-11세기의 서방 수도원 확립기로 성베네딕트 (Benedict)가 몬터카시노 (Montecasion)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원 회칙의 대헌장인 베네딕트 계율을 세웠다. 실제 8-11세기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성기라 할만큼 베네딕트 수도원제도의 영향은 컸다.
베네딕트를 중심으로한 수도원은 개인 중심적 금욕주의와 고행주의를 보다 높은 영성신학으로서 진리의 빛을 찾는 '하나님을 찾는 학교'로 수도원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공동생활을 통한 공동체의 몸의 신학과 경건훈련을 확립하였다. 이 베네딕트 수도원은 엄격한 금욕적 절제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청빈, 순결, 겸손, 봉사, 고행을 통해 영성을 쌓았다.
제 3단계는 12세기의 제도적 부흥기로서 이 수도원의 부흥운동은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이 개혁운동은 프랑스의 클루니 수도원과 클레르보 수도원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는데 세속적 권력개입을 벗어나 독립성을 유지하고 영성훈련이 잘된 인물을 교회 감독으로 세우며 성직자 독신주의를 권장하였다.
12세기의 이러한 운동들은 13세기에 이르러서는 4단계인 걸식 수도회를 창립하게끔 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수도회로는 프란시스코회 (Fransisco), 도미니코회 (Dominice), 깔멜수도회 (Calmel)를 들 수 있는데 이 수도회들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이때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과거 수도사들과는 전혀 무관한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였다. 프란치스꼬의 성인의 운동은 평신도 운동이란 점이 특징이다. 성 프란치스꼬를 중심으로 한 이 수도회원들은 수도원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일했기 때문데 탁발수사라고 불렀다.
수도원 운동은 은둔, 독거, 묵상, 노동, 검소, 청빈, 극빈, 성경연구, 기도, 명상, 침묵, 예배등을 통해 영성훈련을 쌓아 인간 영혼의 신적 상태로의 상승을 목표로 일어나 운동으로 비록 문제점도 많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당시 교회의 이단들을 회개시켰으며, 성직자들을 각성시켰으며, 선교에 열심을 가져왔고, 교육과 성서번역 사업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는 영성생활의 승리였다.

3. 종교개혁의 영성

종교개혁 당시는 마틴 루터가 수도원을 탈퇴하므로 영성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운동은 중세 교회의 칙령과 교회의 회칙, 그리고 수도원의 규칙에 매인 심령을 풀어주고 성경말씀으로 돌아가 순수한 기독교를 재발견하려는 이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의 영성의 중심은 성서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영은 말씀을 통하여, 말씀안에서 역사한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있는 구원과 계시의 '실재'를 지금 여기 신앙자의 것이 되도록 현재화시키는 '보증자'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이 칼빈이 주장하는 내적증거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을 피조물과 죄인으로 그리고 Imago Dei 로서 이해하였다. 이들은 또한 인간은 오직 은총에 의해서만 의롭다는 칭함을 받는다고 믿으며, 이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a.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중세기의 기독교 신학의 특징은 스콜라주의적 합리주의 신비주의적 황홀경험과 일반적인 도덕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근거로 하여 신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말해서 종교개혁이나 교회사의 전환점은 어거스틴과의 한 수도사인 마틴 루터가 수도원의 어떤 방에서 체험했던 경험에서 이루어졌다. 즉, 루터는 로마교 체제를 뚫고 나가는데 성공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돌파를 강행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마틴 루터였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 (Justification by faith)는 그의 체험적 확신에서였다.
루터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삶의 긍정적인 목표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도덕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신비주의의 세가지 사닥다리를 다 올라가 보았으나 모두 한계에 이르러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 (1225-1274)의 합리주의는 옥캄 (1300-1350)의 유명론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었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k, 1250-1327)의 신비주의는 개인을 서로 떼어 놓은 유명론적인 고립화에 대해서 균형을 잡아주는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성서에 근거한 직관적인 계시성을 빠뜨렸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 Tillich는 "유명론과 신비주의는 둘다 어느 정도까지는 종교개혁을 위한 준비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전자에게 있어서 신앙은 성서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에게는 신앙이란 신과의 일치의 경험을 의미한다. 전자가 신앙의 객관적인 측면이라면 후자는 신앙의 주관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가지 관계가 루터에게 있어서는 조화되어 있음을 Paul Althaus는 두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성령은 말씀 없이는 말하지 않는다. 말씀이 먼저 나타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은 성령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이라고 하는 수단을 통하여 성령을 주시는데 이점이 성령주의자들과 열광주의자들에 대하여 루터가 역설해던 점이다.
둘째,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말씀안에서 말하신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성서는 단지 문자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이와같이 루터의 신학은 성서와 성령, 신앙의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이 역동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하면 루터는 또 한편으로 도덕주의의 한계도 느꼈던 것이다. 루터는 수도사로 카톨릭 교회에 있어서 수도원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경험하였다. 인간은 올바른 일을 행할 은총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수도사의 특별한 노력도 그것을 위해서는 충분치 못했다. 그리하여 루터는 마침내 종교와 윤리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우리는 신과 결합되지 않고는 신의 의지를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루터에게 있어서는 도덕은 신앙의 결과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즉 루터의 궁극적 목표인 의롭다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 믿음은 성서의 메시지의 전적 수용이고,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루터의 신관계는 객관적 관계가 아니고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매개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나 - 너 (I - You)의 인격적 신뢰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가르침이 변론적 인격적이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설명함에는 신비적으로 표현했으므로 신비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b. 칼빈 ( John Calvin, 1509-1564)
칼빈의 책 기독교 강요의 [성령론] 안에서 신생 (Regeneration)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다루고 있음을 볼 때, 그는 루터의 이신득의에서 멈추지 앟고 성화에로 지향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생은 양면성을 동시에 다 가지게 되는데 한면은 회개로 인한 옛사람의 수정이고 또 한면은 새로운 삶으로의 참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생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이다. 그런데 이 회복은 단시일내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짐이 아니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적인 뉘우침과 참된 경건의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향한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면적인 경건과 외형적인 경건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자의 제 1의 기본적 실천은 바로 기도" 라고 강조하고 기도의 삶을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해서 명상하라고 권유하였다.
칼빈은 신생에 있어 의인과 함께 곧이어 성화에로의 경건의 재갈을 물린다고 할 것이다. 그점은 성령 안에서의 자기부정의 경건이요 그 자기 부정은 신비주의자들의 자기 탈피와는 다른 것으로서 선과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정화된 자기 부정인 것이다.
이처럼 칼빈의 영성의 목표는 신령한 지식을 얻고 신생과 성화를 통한 구원이다. 결론적으로 개혁자들의 영성은 성령운동과 성서주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4. 현대교회의 영성

영성에 대한 깊은 관심은 현대교회 특히 개신교에 있어서 최근의 동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12세기를 전후해서 꽃을 피운 신비주의 신학을 계속 개혁하고 수정, 보완하여 오늘날의 영성신학 (Spiritual Thelolgy)으로 발전되었고, 새로운 분야로 정립이 되었고, 현재에도 많은 수도자들과 신도들도 영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적인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영성적인 면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였다. 이같은 영성에 관한 신학적 이해의 결핍으로 인하여, 오히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두가지의 양상을 보이면서 나타게 되었다. 첫째 양상으로는 내향적 운동 (inward movement)으로서 경건주의 (pietism), 정적주의 (quietism), 성령운동 (Charismatic movement)등이 있고, 두번째 양상으론는 외향적 운동 (outward movement)이 있는데 사회참여 운동, 인권운동 등을 들수 있다.
내향적 운동의 특징은 개인의 성결과 개인 영혼 구원에 중점을 두었고, 외향적 운동의 특징은 사회의 성결과 구조악을 개선하는 면에 강조점을 두었다.
종교개혁 이후 나타난 개신교 영성신학의 특징은 말씀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개신교 영성운동에는 성서연구와 말씀묵상이 강조되었다. 즉, 개신교의 영성운동은 말씀과 성령충만의 운동이요, 말씀과 성령의지의 삶이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중생케 하며, 성화케 한다. 성령은 또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의로 살도록 역사한다. 그리고 이 성령은 우리를 복음에 합당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살도록 이끄시며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이러한 개신교의 영성을 역사의 흐름속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세의 영성과 구별되는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재 발견한 복음은 성경과 믿음이 강조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강조되었다. 그후 30년 전쟁 (1618-1648) 때에는 교파주의와 교리주의가 지배적 이었는데 30년 전쟁 후, 성경의 문자적 영감이 지나치게 경직화 되었으며, 신학이론이 정립되고 칼빈의 5대 교리(1618)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이 작성 되었다(1646). 그러나 17세기 정통주의 시대에는 교파주의 교리에 빠져 성령의 역사에 관한 인식이 저하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계몽시대에는 이성을 중시하여 모든 것을 이성으로 판단하려 했다. 그러므로 복음과 성령, 신학과 교리, 선교를 상실한 시기었다. 그러나 영국의 웨슬레의 대각성 운동으로 경건주의는 성령의 내재와 선교와 부흥운동에 힘썼다. 자유주의 시대인 19세기에는 성서의 권위에서 해방된 사람 중심의 신학으로 기독교의 초월적 교리를 무시하고 도덕적 갱신을 강조하였다. 그후 20세기에 와서는 개신교의 영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개신교의 영성은 성경중심, 복음중심의 영성이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하는 삶의 원천이며, 성령이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도록하는 영성생활이 추구되었다.

II. 목회현장에 있어서
교역자의 영성


지난 1세기 동안의 한국교회의 목회적 특징은 선교중심과 권위주의적인 부성적 목회자형의 목회였다. 이것의 결과로 한국교회는 양적으로 성장을 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질적인 성숙을 하지 못하였고 또 한국교회는 교회의 직무인 친교 (Koinonia), 교육 (Education), 봉사 (Service)등 다양한 가능성들을 소홀하게 되었고, 교회의 물량화, 대형화 경향이 교회성장론과 함께 증가되면서 교회내에서의 인간관계의 단절과 개인의 개성과 참여가 불가능한 집단주의의 위험을 안게 되었다.
이러한 당면과제를 타개하고, 한국교회 2세기를 위한 새로운 목회를 위해서는 개인의 내적인 자아를 성숙시키고 영혼을 돌아보는 영성차원의 교역형태의 개발이 시급하다.

A. 교역자와 영성.

1. 교역자의 자격

교역자는 단순한 직업적인 직업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전능자의 사신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자이며, 진리의 해석자로서 고귀하고 거룩한 직분의 소유자 이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역자를 교역자되게 한다.

a) 교역자의 정의
에드워드 투루나이젠 (Eduard Thurneysen)은 교역을 정의할 때 그것은 "영혼을 돌보는 일" 라고 정의한다. 인간영혼을 보살핌이 바로 교역이고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곧 교역자이다.
우리는 목사를 호칭할 때 목사 (pastor)와 교역자 (minister)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원은 서로 다르며, 사용하는 곳도 서로 다르다. 차이점으로는 목사는 교회의 직원으로 분명히 성경에 언급된 직분이나 (엡 4:11), 교역자는 직원으로 언급된 직분이 아니라, 교회의 직원이나 직분자는 누구나 교역자여야 한다는 의미로서 직능이나 기능으로 언급하고 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교역자를 살펴보면 3가지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① 디아스코노스 ( s)인데 이 단어는 집사, 종, 봉사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복음서에는 종으로, 바울 서신에는 섬기는 자로 언급되어 있다 (눅 10:4, 딤후 4:11, 엡 4:12, 고후 3:17-19). 이 단어가 목사의 어원이 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왕의 종이라는 의미에서다.
② 레이투루고스 ( s)인데 이 단어는 대중의 종 또는 제단에서 수종드는 성직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지닌자 (롬 13:6, 13:4)로 또는 제사장 직분 (히 18:2)을 의미하며, 이 단어는 공중예배나 복음의 공적인 선포를 집행하는 이중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
③ 휘페레테스 ( s)인데 이 단어는 노를 젓는 사람, 또는 보조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분이 낮은 관리들이나 남의 밑에서 섬기는 종들을 일컫는 데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마 5:25, 26:28).
이러한 용어들은 각각 교역자나 목회자로서의 직능과 그 기능의 본질적인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교역이란 목사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일이고 교역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의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행 20:24). 교역자는 하나님과 교회에 의하여 부름을 받고 안수를 받아 교회를 대표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례하며 하나님의 계시에 완전한 응답을 하도록 기독교 공동체를 인도하고 양육하기 위하여 구별된 자이다.

b) 교역자의 소명의식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 2000년전 자원하심으로 십자가 위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이다. 주님께서 아직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을 부르셨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4)
요한복음에 나오는 기도에서 40번 이상이나 열두 제자에 대하여 언급하시며 기도하신 것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는 짧은 기간동안 사역하시면서 세상 구원을 그의 마음에 두셨으며 제자들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셨다. 승천하시기전 주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상의 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28:19에 있는 말씀이며 이 명령이 곧 제자를 삼아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하시고저 하는 주님의 구원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매 페이지마다 고동치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그것은 바울이 디모데후서 2:2에서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필생의 사명"을 제시할 때 마음에 가졌던 꿈이었는데 "또한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주께로 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선택된 자신과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11) "우리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딤전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딛 1:1)
이상의 증거된 바울의 신앙적 소명의식은 오늘날과 같이 혼미해져만 가는 목회자들의 소명의식에 대하여 사명감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 드리고 그의 양인 성도들과 그의 몸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그 분이 남기고 가신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워 죽기까지 복종하겠다는 확고 부동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한다.

c) 교역자의 영적체험
교회란 무엇인가 ? 에베소서 1:20 이하와 골로새서 1:15 이하를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조직과 기구는 지체가 연결된 몸이기 때문에 유기체이다. 이런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을 다스리고 영적 양식을 먹이는 목회자의 영적 체험은 바로 그 교회를 생명력 있는 교회로 만드느냐 무력한 교회로 만드느냐 하는 이정표와 같다고 하겠다.
영적체험 또는 영적은사 (spiritual gift)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령의 선물이다. 교역자가 영적체험이나 은사를 알게될 때 주의 사역자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풍성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영적체험을 위해 훈련을 하여야 한다. 만일 교역자가 영적체험을 소홀히 할 때에는 교역자의 직무를 망각해 버리게 된다.
교역자가 영적체험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교회는 모든 신자가 영적 사명을 자각하게 되며 자기 자신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고,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기자신의 영적체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여기서 바울은 적어도 자기는 과거에 육신에 거하여 살면서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힘써 살아왔다고 하며,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였다(갈 2:16).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은 "그러므로 내가 한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1-24) 여기서 결국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5) 고 믿고 그는 그후 끊임없는 영성훈련에 전념하였다. 우리는 바울의 영성훈련에서 교역자의 영성훈련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육신의 모든 욕망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둘째 자기를 위하여 살던 삶이 그리스도를 위하며 살며, 세째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기심을 위하여 담대히 죽을 수 있으며, 네째 예수를 아는 지식을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버리며, 다섯째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여섯째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닌 믿음으로 얻어짐이 온전한 의임을 고백하며, 일곱째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고로 영성훈런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데로 내자신을 맡기는 생활을 의미하며 바울은 교역자에게 어떻게 영적생활을 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2. 교역과 영성의 관계

a) 교역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속역사가 선포되고 땅 끝까지 그것이 전파되어 그 열매가 인간에게 전달되어지도록 사도들을 선택하셔서 화해의 말씀을 위탁하셨다. 사도들이 화해의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며 그 교회를 사도적인 신앙 안에서 육성시키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 사도의 교역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교역에 대해 에드워드 투르나이젠은 "교역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개인에게 전달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고 하였다.
교역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며, 그 말씀이 선포되기 까지의 모든 대화 형태로 이루어진다. 투루나이젠은 이런 대화의 형태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며 바로 교역의 본질이라고 하면서 영혼의 유동성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정신생활로 바꾸어 주는 것은 오직 대화 뿐이라고 하였다. 교역의 활동은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답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대화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대화의 상대자 쌍방은 서로 서로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목회 대화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인간의 말을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하시며 대화의 쌍방이 자기들 나름에만 집착치 않고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면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답변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역의 대화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적 영적 현실 속에 뚫고 들어와 완성해주고 결단을 내려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교회적인 대화라 할 수 있다.
투루나이젠은 "교역대화는 본질적으로 말씀과 성례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삼는다" 다시말해서 교역대화도 역시 죄의 용서를 중심해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대화는 설교와 세례와 성만찬에 관한 유일한 주권적인 내용 즉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삶 전체 속에 내려 주시고 이를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선포하게 하신 은혜로운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목회대화의 내용은 바로 죄의 용서인 것이다.
교역에서 이 과제는 교역자의 지적인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교역자의 훌륭한 지적의 능력이 쓸모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역이 이일을 감당하는 데는 바로 교역자의 좋은 인격과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바로 교역자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역을 바로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교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즉 현대인의 삶을 복음 앞에 개방시키고 그것을 그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영성의 회복이 필요하고 이것이 목회의 중심적 과제이다.

b) 교역과 영성의 관계
넬슬 떼이어는 교역의 중요한 역활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시대 속에서 성서 속에서 계시되고 교회의 은총과 삶을 통해 표현된 거룩한 하나님의 차원을 향해 개방적으로 그를 체험하고 질서를 세우도록 도우는 것이다.넓은 의미에서 이것이 기독교의 영성 형성이고 목회의 과제이다."라고정의했다.
교역과 영성은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교역은 인간이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모세나 다윗, 베드로, 바울이 저자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성령을 통한 말씀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영성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교역자가 영성이 죽어있다면 이는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이니 교역이 불가능하게 된다. 교역이나 영성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비례되기도 한다.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영성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교역은 영성과 불가분의 관계로 밀착된다고 본다.
끝으로 교역자는 영적 공동체를 위한 인도자다. 이 인도자가 하나님의 목회를 성취시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주의력과 헌신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기쁨과 황홀함, 성취감 그리고 새로 거듭남을 언제나 체험해 가야한다. 반드시 회중을 인도하는 교역자의 삶은 "영적이어야"한다. 교역자는 개인에게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갈망에 대해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열망에 응답할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성훈련이 잘되어 있는 교역자는 강력한 복음주의적 중요성을 포함하고 있다.

3. 교역자의 영성훈련

영성이란 크게 두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 또 하나는 더 특별히 성령과 관계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교역자나 또는 평신도든지 자기와 올바른 영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또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내 마음과 뜻을 다해 내몸을 다바쳐 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를 포함한다. 이웃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온 결과이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웃을 참으로 사랑할 수 없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영성을 가질 수 없다 (요 3:5).
내적인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거듭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계속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능성이 있다. 영성훈련은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훈련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된 하나님의 현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나가는 삶의 과정이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모든 영성훈련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오게 하도록 하나님과 인간 및 피조물과의 깊은 친교와 연대성을 성취하도록 돕는 전인적인 훈련이다. 영성훈련을 통해 교역자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게 되며 성령의 지도를 받게되며 목회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며 목회를 승리로 수행해 나갈 것이다.
교역자의 영성훈련의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본 절에서는 교역자에게 필요한 말씀묵상 훈련, 기도훈련, 하나님 경외생활을 살펴보기로 한다.
① 말씀 묵상훈련 - 토마스 머튼은 "진정한 말씀묵상은 심리학적 기술이 아니라 신학적 은혜이다" 라고 했다.
교역은 다른 직(職)과 달라서 일정한 근무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성도를 돌보는데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성도 개개인의 신앙생활은 물론, 교역자의 가정 생활에서부터 사회생활과 사소한 개인문제에 이르기까지 교역자에게는 이 모두가 관심의 대상이요 범위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성도들의 영적인 생활은 교역자의 가장 큰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교역자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역자의 입장에서 건전하고 깊은 영적인 생활의 유지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야로 묵상 (시1편)할 때 가능함으로 깊은 말씀의 묵상은 교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이다.
② 교역자의 기도훈련 - 명상이 인간의 생각과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을 향해 열기 위한 방법이라면, 기도는 인간의 생각과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도는 바로 "믿음의 영혼"이기에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진실한 종교의 붕괴를 의미한다.기도는 선물인 동시에 명령이다. 즉 그것은 신적인 은총이 부어짐으로 가능하다.
영적인 생활의 기본은 기도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실 것을 요청하고(눅 11:1), 그 요청에 예수가 기꺼이 응하였음과 같이 우리도 기도훈련을 해야한다. 참된 기도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의 생활이다. 기도의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영적 공동체의 지도자인 교역자는 기도를 통해서 집중능력, 개방성, 하나님을 향한 수용성을 배워야 한다. "싫든 좋든 매일 읽고 기도하라. 그것은 너의 삶과 사명을 위해서다. 그 외는 길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을 낭비할 뿐이다. 네 자신의 영혼을 소홀히 하지 말라. 네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을 제공해 주라. 더 이상 네 자신을 쇠락하게 만들지 말라." 기도는 언어보다 더 큰 능력의 통로이다.
③ 교역자의 하나님 경외생활 - 언제 어디서나 경우에 합당한 하나님의 꿀같은 말씀이 교역자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와야 한다. 책망할 자에게는 책망의 말씀이, 위로 받을 자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용기가 필요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이 교역자에게서 나와야 한다.
교역자의 입에서는 세상적인 것, 부정적인 말, 절망의 말이 아니라, 긍적적이고, 소망적이고 일으켜 세우는 격려와 사랑과 축복의 말씀이 흘러나와야 한다. 세상의 화제로 충만한 교역자는 영을 죽이는 것이다. "저가 저주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아니 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시 109:17) 라는 말이 응할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에 충만하면 영혼을 깨우고 살리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교역자의 입에서 넘치기 위해서는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적으로 복음을 위한 순례자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B. 목회현장과 영성

1. 영성과 기독교 교육

a) 기독교교육이란 무엇인가 ?
G.M.Schreyer은 "기독교 교육의 최고 임무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원활히 하도록 교도하는데 있다" 고말하며 화란의 개혁주의 교육학자 Jan Waterink는 기독교 교육의 목적을 "하나님께서 정치(定置)시켜주신 모든 생활영역에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인류의 복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제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자발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며, 말씀에 입각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독립된 인격으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다."고 했다.
기독교 교육은 그리스도인을 형성하는 기능이다. 즉 복음에 의한 그리스도인을 형성하는 기능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성서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의 형상 (갈 4:19)을 가진자라고 말할 수 있으며 기독교교육이란 이런 의미에서 인간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고찰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그리스도적 인간을 향한, 성령께 의지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정의해 본다.

b) 기독교적 영성교육의 세영역
영성교육이나 기독교 교육이란 제 각기 신학적 입장에서 정의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대한 공유점은 '그리스도와 같은' (Christlike) 삶을 지향할려는 인간의 노력이라는 점이며, 또 한가지는 이러한 인간의 노력조차도 철저한 '성령의 인도하심' 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성령님에 의지하여, 이러한 공유점이 지향하는 기독교적 영성교육을 세 영역으로 나누어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영역은 개인적인 기도와 명상생활을 위한 교육이다. 기도하는 생활, 이것은 기독교 영성생활의 기초이자 완성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는 부단한 훈련이 요청된다. 기도는 영적투쟁인 것이다. 기도하는 것과 더불어 요청되는 것은 명상이다. 이 기도와 명상을 스스로 터득해서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 이것이 기독교적 영성훈련의 첫번째 영역이다.
두번째 영성훈련의 영역은 교회생활과 봉사하는 생활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교회와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자체가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은 교회 중심의 생활이요, 예배중심의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공동체 생활에 깊이 참여함으로써 그스도인의 영성은 성숙하는 것이다.
영성생활의 세번째 교육영역은 사회생활과 증언이다. 흔히들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이라고 할때 위의 두 영역 - 곧 개인적이고 교회적인 - 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의 전통을 고찰해 보면 언제나 엄숙한 신앙생활은 사회생활과 그 사회의 증언까지도 신앙생활의 범주로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영성은 바로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통전적 영성이며 예수는 이러한 통전적 영성을 소유한 교육 주체자이셨다.
요약하면, 기독교적 영성이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 붙잡혀 있는 상태를 말하며 이 영성형성은 우리의 삶의 과정 속에서 개인적인 성장 (Intra - personal level)과 상호관계적 인간관계 속에서 (Inter - personal level)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삶의 표현 (Supra - personal level) 속에서 부단한 개인 훈련과 상호 협동 훈련을 통하여 형성되며, 말씀이 나의 삶속에 그리고 이 사회속에 나를 통하여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길 (A way of Christian) 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독교적 영성교육은 기독교적 삶이 형성되고,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성령님에게 의지해서 노력하는 행위인 것이다.

2. 영성과 목회상담

a) 목회상담의 정의
케롤에이와즈는 상담목회의 정의를 구태여 내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상담방법에 더 관심을 가지라고 권했으며 또 라이스씨는 상담의 정의보다 상담 요령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목회상담은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과정으로서 종래의 충고 형식이라든지 권면 혹은 명령을 함으로서 내담자 자신이 능동적으로 자기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처리하는 책임감과 정서적 이해의 방법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요구에서 생기는 반응적인 상호관계라 하였다.
목회상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영혼의 구원이다. 성서가 말하는 구원이란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 구원은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목회상담의 본질은 인간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요 개개인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은 인간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에 있어서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목회상담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앞에 놓여진 가능성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선택하도록 돕고 아울러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목회상담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육체적 정신적인 요구에 대한 돌봄 (Care)이 또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병든자를 치료하셨고 근심과 슬픔에 잠겨있는 자들에게 평화와 안정과 소망을 주셨다. 이것은 육체적인 정신적 인간의 요구에 대한 돌봄이 목회상담의 기본 임무가 되는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목회상담은 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고 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숨은 가능성을 개발시켜주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즉, 상담이란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운 태도를 갖게 하는데까지 이끌어주는 과정으로서 이 새로운 태도는 내담자로 하여금 차차로 자기의 문제를 정확하게 통찰하도록 하고 인격의 통합을 달성케 하는 것이며 또 앞으로 닥쳐오는 생활면의 여러가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하는 것이다.

b) 심방, 상담과 영성의 연계성
목회가 여러가지 문제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를 만나서 그들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요 사귐을 해 나가는 동안에 그들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해 나가는 모든 관계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목회상담도 이러한 맥락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문제를 당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이며, 나아가서 그들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로 인도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목회의 콘텍스트에서만 목회상담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위와같이 목회와 목회상담을 고려한다면 심방은 목회의 한 형태이며, 목회상담과 심방은 목회현장에서 볼때에 동일시 할 수는 없으나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목회상담이 심방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상담속에 상담시간을 정하여 상담하는 것은 아직도 한국교회의 실정에서는 요원하며, 찾아가서 만나는 형태의 목회상담이라야 한국교회의 목회의 한 기능으로서 목회상담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심방도 고난 당하는 자를 찾아가서 그들과 만나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로 인도해 나가는 목회상담의 방법을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에서 목회의 한 형태로서 그 구실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이해한다면 기독교 영성은 ①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위한 훈련과, ② 그분께서 나의 삶을 현장속에서 나를 새롭게 한다는 은혜의 경건함과, ③ 역사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간에 기독교 영성을 명상훈련, 말씀묵상이나 Q.T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영성의 한 국면만을 이야기 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일 영성을 이런 방식으로만 이해 한다면 영성과 심방과 목회 상담은 별로 관계가 없을 것이다. 목회현장은 심방과 상담과 영성이 만나는 장소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장이요, 교역자가 겸손하게 기도하며 동참해야 될 현장이다.

3. 영성과 치유목회

a) 전인성과 영성
기독교가 말하는 치유란 인간의 본래적 상태론의 원형적 회복이다. 원형적 회복이란 원초적 상태로의 구조적 회복이 아니라 더욱 발전된 상태로의 성장적 회복이다. 그러므로 치유란 단순하게 어떤 높은 단계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상승한다는 것은 치유를 단순하게 신체적 영역에다가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치유는 전인적 영역에 속한 것으로서 신체와 정신과 영혼이 새로운 균형을 이루면서 재통합되는 과정이다.
기독교의 영성적 표현인 기도, 예배, 세례, 성만찬, 금식 등 어느 하나도 인간의 특정한 측면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신체와 정신, 가치와 의미 발견, 초월을 향한 지향성 등 전인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치유에 대한 오해는 신체적 질병에다 국한 시키기 때문에 생기고 영성에 대한 오해는 경험에다 국한시키기 때문에 생긴다. 이 둘이 모두 인간의 전인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다면 치유와 영성의 의미는 모두 포괄적으로 이해 될 것이다.

b) 치유와 영성의 함수관계
예수의 치유 사역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이해를 달리해 왔다. 이와같은 이해의 변화는 치유 기술의 발달이나 문화적 기풍 등 시대 정신의 변천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영성도 시대적 정신이나 문화적 기풍을 나타내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영성은 기본적으로 성서적 영성에 기초하고 있으나 이것이 문화적 풍토와 합류해서 하나의 시대적 정신으로 나타날 때는 의미의 초점을 달리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치유 개념에 대한 해석의 변화와 시대적 정신으로서의 영성적 표현은 불가불 함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 관계는 시대에 따라 나타난 영성의 초점과 치유의 의미를 연결시켜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기본적으로 성서적 영성이지만 이것 자체도 페르시아나 희랍의 영성 등과 접촉된 것이다. 이와같은 시대적 정신의 표현으로서의 영성은 한 시대의 문화적 내지는 철학적 기풍에 따랄 초점을 달리하게 되었고, 따라서 치유 개념에 연동된 해석은 차이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제기한 대로 기독교의 치유를 신체적 회복에 다만 국한시킬 때는 불가사의한 기적에 국한되지만 의미, 가치, 실존적 자각까지를 포함한 전인적 원형 회복으로 이해한다면 치유와 영성의 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다.

4. 영성과 예전적 적용

a) 예전과 영성생활
예전이란 말은 원래 공적 의무 혹은 공적인 일을 의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이다. 교회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직무를 수행할 때 예전을 통해서 한다. 즉 성만찬 예전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 생애의 핵심인 고난과 부활이 기념되고 성례전을 통해 인간이 초자연적 생명에 참여하게 되고 매일 행하는 성무일도 예전을 통해 기도와 찬미를 바친다.
예전학자 세퍼드는 "예전이야말로 인간의 영성을 교육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예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전달되기때문이다. 즉 예전을 통해 하나님은 중개자 없이 당신 스스로 신앙인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신다. 참된 영성생활의 삶은 믿음의 내용이나 예수를 모방하는 윤리적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관계에서 예수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예전적 예배생활을 통해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함을 경험함으로써 확실해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전은 영성생활에 있어 신앙인을 하나님 안에 뿌리박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로써 개인 중심의 주관적 신앙을 초월하여 일치를 이루어 새로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일이다.

b) 성례전 중심의 영성확립
앞에서 예전과 영성생활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성을 간단히 고찰했고, 여기서는 이 글의 가장 초점이 되는 한국 교회 영성 정립의 과제로서 성례전 중심의 영성 확립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만찬 예식서에서 전통적으로 신학적 논란이 되어 온 기념, 임재, 희생에 대한 개념 해석 및 표현의 중요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만찬과 설교와의 관계로서 이 두가지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② 성만찬과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교회 밖에도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③ 성만찬과 성령과의 관계이다. 성령 임재가 많이 강조되어 있다.
④ 성만찬을 선교와의 관련에서 강조하면서 성만찬은 신(神)과 나를 세계사의 중심적 사건과 연관시켜 주고 있다.
⑤ 성만찬과 일치와의 관계성이다.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빵과 공동의 잔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모든 사람들이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⑥ 성만찬 집행은 가능하면 매주일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하고 있다.

이상으로 리마 성찬 예식서의 특징을 개관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두가지를 다시 강조한다면 성만찬을 통해 수직적으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수평적으로 내 이웃인 그리스도의 지체된 형제 자매들과 일치하는 것이며 이것이 근간이 되어 새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성되는 새 공동체는 개인을 초월하고 사회성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방향으로 한국의 개신교가 영성 정립을 수행해 나갈 때 가장 취약점이 되어 온 개인 중심 신앙과 끊임없이 교파 분열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에서 세계교회 협의회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의 활동과 방향에 발맞추어 리마 예식문에 대한 연구협의회를 계속갖고 함께 연구하며 함께 수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함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V. 교회성장을 위한
교역자의 영성


A. 바람직한 교역자의 영성

넬슨 떼이어는 "목회의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시대 속에서 교회의 전통과 삶을 통해 계시되고 성서속에서 계시된 거룩한 초월자의 차원을 향해 개방적으로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질서를 세우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넓은 의미에서 이것이 기독교적 영성 형성이고 목회의 중심과제이다.
목회에서 영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목회적 활동 가운데서 인간의 의식과 응답에 관한 이 차원의 육성에 강조점을 두자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의 육성을 목회의 중심으로 본다는 것은 목회에 있어서 위기 관리의 보편성이나 그 밖의 활동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다. 목사의 관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그들의 삶이 능력과 의미의 실현에 따라 경험되고 정리되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이 경우에 목사의 대처능력은 교회에 의해 전달 가능한 '가르침'과 지탱능력을 이끌어 내는 확대된 능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현대의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경험과 우주의 지탱시켜 주는 능력과 의미 사이의 연속성에 관한 체험이라는 의미에서의 영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경험과 이 경험의 적용을 가능케 하는 상징화가 없으면 종교는 단지 우연스럽게 종교를 승인한 사람들의 편애를 반영시키는 행위를 위한 옛 이야기의 수집이거나 아니면 처방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목회는 심층심리학과 자아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되 반드시 '영'을 중심문제로 삼는 적절한 철학적 인간학과 신학의 전망 안에서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목사는 공동체를 위한 인도자이다. 이 인도자의 이미지는 엄격한 주의력과 헌신을 요구할 뿐 아니라 기쁨과 황홀함, 성취감과 깊은 동반자 의식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적 경험에 민감한 목회의 접근방식은 강력한 복음 주의적 중요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목사들은 영성에 있어 오늘과 같은 비기독교적이고 심지어 '무종교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기독교인에게 친밀하고 기독교적 상징 속에 표현되고 있는 경험의 윤곽과 비유들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란 이러한 모든 인간적 체험들을 성령에 대한 응답으로 인식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이 모든 체험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충만케 하는 본질적 요소들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B. 교역자의 영성과 교회성장

복음전파의 어장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사회와 정신문화는 크게 병들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산업사회의 모순은 물질만능 풍조가 팽배하고 인간의 심정은 병들고, 지치고,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교회는 그들을 치료하여야 한다.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면 현대 산업사회는 심리적으로 좌절하고, 정신적인 문제로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산업의 급증한 발전으로 인하여 인간의 정신문화는 피폐해졌고, 급기야는 인간 소외현상으로 비인간화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교회는 영성운동을 통하여 산업사회에서 빚은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특별히, 현대 산업사회의 혜택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질병증세가 심하며, 그 대표적인 병폐가 권태요, 허무의식이다. 틀에 박힌 생활속에서 생의 의미를 못느끼며 살아가는 자에게 교회의 지도자는 정신문화에 큰 기여를 할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냉철한 전문 목회자의 시선으로 볼 때, 이것은 모두 산업사회의 풍요가 불행을 안겨주는 예들이며, 이같은 정신문화 질환은 육체도 함께 병들게 하여 간질환,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은 치료 (healing)를 원하고 있다. 이같은 문화병 환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충격요법이다. 영적인 충격을 주는 복음으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충만한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영적인 충격을 줄 때, 정신질환이 사라지고 육체적인 병도 고쳐진다. 이는 흔히 듣는 안수기도만이 아닌 복음을 통한 영적인 충격을 통해 기도를 받을 때, 육체적인 질병이 고쳐질 수 있다. 이것을 영적인 치료법 (spiritual healing)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충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교회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상한 영혼, 상한 마음, 상한 육체를 통하여 치유할 수 있는 교회라야 봐 바람직한 전인치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면에 치중하는 효과적인 교회성장을 가져와야 한다고 본다.
영성 목회를 통한 교회성장은 신자들의 인격성장을 통하여 이루게 된다. 인격성장이라 함은 영혼 (spirit), 마음 (mind), 육체 (body)의 건강과 균형있는 발전을 뜻하는 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성장이 앞서야만 다른 부분도 따라 온다고 생각된다. 영적인 충격과 성장없이,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소외감은 극복하기 힘들다. 이같은 충격적인 감동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한 뒤, 인간을 사랑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인격성장 (personal growth)이라 한다면, 인격성장을 통한 교회성장의 가장 호소력 있는 방법은 영성 목회에 있다고 하겠다. 현대 사회적 병리는 '인간사랑 (love person) 물질사용 (use thing)'의 가치관이 '물질사랑 (love thing) 인간사용 (use person)'으로 뒤바뀐 데서 유발되고 있으므로, 이같은 올바른 가치관을 회복시켜 주는 영성 목회가 오늘날 산업사회의 원동력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대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하여야 바람직한 교회성장을 할 수 있을까 ? 그러나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성장시킬까 하는 생각 이전에 도대체 교회가 무엇이냐라는 생각부터 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되기만 하면 우리가 믿는 대로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고, 교회 자체가 성장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성장하게 되기 때문이라 하겠다.
교회성장학이란 사회학적 연구로서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되고 있는 교회로 가서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여 성장되었나 하는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교회를 성장시키는 문제는 좀 더 창조적이고 좀 더 창의적인 모습을 띄어야 할 것이다.
교회를 성장시키려면 교회 중심적인 신학을 수립하여야만 한다. 교회 중심적 신학, 교회적 구원, 교회적 성령, 교회적 기독론이 성립되는 교회 중심적 신학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외에 다양한 교회성장이론이 대두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상처받은 영혼에게 말씀을 통하여 치료해 줄 때, 교회성장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C. 교회성장을 위한 교역자의 영성개발

1. 영성개발의 필요성

컬리 (Iris V. Cully)는 [영적성장을 위한 교육]에서 현대인의 방황을 심각하게 묘사하면서, 영성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들은 불안한 마음 가운데서 평화를 얻고자 하여 무수한 기술들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영성훈련에 관한 안내서가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현대인은 어느시대 보다 불안으로 부터 도피하고, 적개심으로 부터 도피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들을 불안 또는 적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힘을 추구함으로 더욱 불안상태에 빠진다. 마음에 불안을 가져오는 또 다른 이유는 안정을 위한 추구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세계가 불안정한 것처럼 보일수록 안정을 위한 갈구는 더욱 강렬해 진다.
그러므로 성숙한 영성은 불안한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관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관계는 합일의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은 자연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들이 양육을 통하여 성숙하듯이 우리가 영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만 점진적으로 발전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영성은 개발되는 것이다. 이제 현대 교회에서 영성개발의 영역이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되었다. 영성이 고갈된 현실속에서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영성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존재의 근원과 성장의 원천도 영성에 있으며 그리스도인답게 살게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성개발이란 새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훈련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들 속에서 새창조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훈련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데서만 참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적으로 성령께 의지하지 않으면 육적욕망이 지배한다. 그러므로 꾸준한 영성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2. 영성개발의 목표

영성생활이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다. 영성신학은 그리스도교적 완성과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을 다루며 따라서 매우 사변적이면서도 실천적인 학문인 만큼 탐구해야 할 첫번째 문제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목표나 목적과 관련이 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은 인간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고자 함이었다 (요 10:10). 사실상 만물의 궁극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에서 태어난 만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께로 나아가 성삼위의 풍요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성생활은 세가지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궁국 목표와 두개의 상대적 혹은 근목표 (proximate goal)가 있다. 영성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이며 근목표는 인간의 성화와 구원이다.
창조된 전 우주는 하나님의 선성(善性), 진리 및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존재하고 이는 바로 창조자의 외적영광이다. 그러나 피조물 편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이란 더욱 더 큰 완덕을 향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노력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동일한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란 개념보다는 이차적 목표 (구원과 성화)가 영성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원이란 용어는 '인간의 궁극적 행복', '영생' 및 '영광속의 삶' 이란 표현과 동의어이다.
또다른 목표는 자신의 성화이다. 성화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영성생활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라" (막 5:48).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 하도록" (엡 4:13) 노력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이나 성화를 영성생활의 제 2차적 목표라고 말할 때, 주어진 어느 순간에 특수한 완성의 정도를 언급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도 친히 모든 그리스도인 앞에 제시한 이상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이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막 12:30).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주시는 초자연적인 생명의 완성이 영성생활의 목표이고 영성신학의 탐구영역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고찰한 영성생활의 목표를 종합해 보면 영성개발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 이라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3. 영성개발의 방법

영성은 개발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쳐서 복종시켜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영성개발의 방법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근대에 한국에도 영성개발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영성에 관한 팜프렛과 서적이 출판되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고, 나름대로 영성개발에 관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뚜렷한 교과서적인 방법들이 정립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근래에 소개된 영성개발에 관한 방법들을 종합하여 몇가지 개발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포스터 (Richard Foster)는 영성훈련을 크게 내적훈련, 외적훈련, 단체훈련으로 나누어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a. 내면적 훈련
(1) 묵상훈련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섭취하는 방법이다. 이를 묵상, 명상, 조용한 시간 (Q.T), 거룩한 여가 (Otium Sanctum) 라고 말하기도 한다. 묵상이란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받아 순종하며, 하나님께 응답하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묵상의 목적은 그 자체가 아니라 더욱 거룩하며, 결심을 굳게 하려는 것이며, 맹목적인 자기애와 세속의 타락이라는 것보다 높은 차원으로 정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묵상훈련은 마음의 고요와 평안은 물론 복잡한 사회속에서 인간이 자기의 주체성을 찾을 수가 있다.

(2) 기도훈련
기도는 영적생활의 미개척지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기도는 삶의 창조요, 변화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도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께 드리며, 끊임없이 내 자신을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독백이나 주술, 명상과는 전혀 다르다. 기도는 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요 ② 하나님의 뜻에 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요 ③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인정하고 그 능력을 힘 입기를 간구하는 행위요 ④ 인간은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⑤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행위요 ⑥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행위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사용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의 영성개발에서 기도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어느 곳에서나 골방에서 처럼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모르게 되며 자신을 모르면 하나님과 이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참다운 기도를 드리고 진실한 기도를 드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시간을 정해놓고 또 일기를 쓰면 매우 효과적이다.

(3) 말씀공부 훈련
말씀공부 훈련이란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성서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영성개발의 목적이 인간의 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 훈련이 가장 효과적이다. 학습이란 객관적인 구조를 잘 관찰함으로써 사고작용을 일으켜 어떤 습관으로 옮겨감을 말한다.
말씀공부 훈련은 마음의 변화, 삶의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 말씀공부는 진리를 깨닫는 길이요, 성령의 역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말씀공부는 말씀묵상과는 다르다. 묵상은 경건이고 공부는 분석이요 해명이다.
말씀공부는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반복이다. 반복은 정신을 특정 방향으로 늘 향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반복을 통해 사고의 습관을 형성한다. 두번째 단계는 집중이다. 연구내용에 집중한다면 학습은 크게 증대될 것이다. 세번째는 올바른 이해이다. 이해는 통찰과 분별로 이끌어 간다. 이는 올바른 인식을 위한 기초가 된다. 네번째는 숙고이다. 숙고를 통해서 의미를 알 수 있다. 숙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해 준다. 말씀공부에서 한가지 더 이해할 것은 성경공부와 더불어 체험에서 우러난 기독교 고전의 자료와 말없는 교과서도 훈련의 귀한 자료가 될 수 있다.

(4) 금식 훈련
금식훈련은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요구가 있어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때,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내 속에 있는 죄의 요소를 씻으시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금식은 영적인 목적을 위해 음식을 단절하는 행위이다. 중세에는 금식이 지나친 고행이라는 나쁜 평판이 있었다. 그 이유는 내면적 본질적 추구가 시들고 겉 형식만 강조되어 영혼의 힘이 제외되고 형식만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통해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금식을 하였다. 금식은 영적 교제를 더 깊이 갖도록 한다 (시 69:10).
모든 훈련이 그러하듯 금식을 위해서도 준비가 있어야 한다. 먼저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금식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영적인 도약을 가져다 준다. 금식기도의 주의점으로는 타인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목적없는 금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금식은 음식뿐 아니라 마음도 금해야 한다. 실제로 금식을 통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어려울때의 도움, 잘못된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일을 찾고, 순수한 참회, 죄에 대한 승리, 하늘의 지혜, 중보기도의 응답, 성령의 능력등을 얻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내면적 훈련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못박고 온전히 드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위한 훈련인 것이다.

b. 외면적 훈련
(1) 단순화 훈련
펠넬롱은 단순화 훈련은 우리에게 솔직하고 온유하며 순진하고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고 하였다. 현대인은 내면성이 복잡함으로 외적 생활양태도 단순치가 않다. 또한 문화가 병들어 가고 있고 이런 것들이 인간을 구속한다. 병든 사회풍조는 기독교인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어 물질만능주의와 세상적 성공주의가 팽배해져 가면서 영인 지축이 흔들리고 인간의 자유를 구속한다. 그러므로 단순성은 자유이다. 단순성 훈련은 기쁨과 안정을 가져온다.
성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소유욕 때문에 영적혼란을 가져왔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눅 16:13). 그러므로 단순성은 소유물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서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실재이다.
포스터는 단순성 훈련의 중심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데 있다고 보고 단순성의 내적 자세와 외적인 표출에 대하여 언급한다. 단순성의 자세로는 ① 모든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으로 부터 온 선물임을 시인 하는 것 ② 우리의 소유물은 하나님의 보호로 유지 된다는 것 ③ 우리의 소유는 타인을 위하여 쓰여져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단순성 훈련의 마음가짐이라고 본다. 이 세가지를 한마디로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하고 하셨다. 또한 단순화를 위한 외적 표현의 원칙을 10가지 제시하였다.
① 물건을 구입할 때 위신이나 체면을 보지 말고 실용성을 보아야 한다.
② 탐닉하게 되는 모든 것을 물리쳐야 한다.
③ 물건들을 버리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④ 광고에 현혹되지 말라.
⑤ 소유보다는 즐기는 법을 배우라.
⑥ 자연과 가까이 해야한다.
⑦ 외상거래를 금한다.
⑧ 정직한 말을 해야한다.
⑨ 남을 억압하게 될 일은 모두 물리쳐야 한다.
⑩ 나의 중요 목표에서 다른 곳으로 마음을 팔리게 하는 것을 모두 물리쳐야 한다.
이처럼 단순성 훈련은 먼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을 최우선권으로 두는 것이다.

(2) 고독 훈련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하나 고독은 내적인 충만이다. 고독은 영혼의 내적인 성곽과도 같다. 고독훈련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훈련이다. 예수님은 내면적 심령의 고독중에 사셨다. 그뿐 아니라 외부의 고독도 흔히 체험하셨다 (마 4:1, 눅 6:12, 5:16, 마 26:36-40).
이 훈련을 통하여 인간은 고독과 공포에서 자유케 한다. 그리고 고독안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체험하게 되고 내적 침묵에 이르게 된다. 고독훈련에 관하여 포스터는 몇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① 하루생활 중 짧은 시간동안 홀로 있기의 훈련을 할 수 있다.
② 홀로 있기 위해 집안에 고요한 장소를 마련한다.
③ 집을 떠나 고요한 장소를 찾아서 할 수 있다.
④ 하루종일 침묵의 생활을 시도한다.
⑤ 일년에 서너차례 정도 삶의 목표를 재정비 하기 위한 홀로의 시간을 기도원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다.

(3) 순종 훈련
순종훈련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가족 그리고 이웃, 교회공동체에 대한 순종을 말한다.
순종에 대한 성서의 교훈은 서로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순종할 때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이 이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해방과 자유함이 있다. 순종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막 9:34) 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자기부정은 자기경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부정은 타인에게 양보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일생을 순종과 섬김으로 사셨다. 십자가의 삶이란 자발적인 순종의 삶이다. 바울도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명령했다 (빌 2:4-7). 순종은 신약전체를 뚫고 흐르는 윤리의 주제이다.
순종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자세이다. 순종의 훈련은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이웃과 세계를 섬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순종을 통한 영적 권위를 증가시키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4) 섬김 훈련
섬김훈련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봉사훈련이다. 섬김은 이미 순종의 현실속에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함이라" (마 20:28) 이라고 가르치셨고, 유월절 최후의 만찬에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요 13:14-15). 참된 섬김은 침묵하고, 인내하며, 꾸밈없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겸손히 돌보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섬김의 삶을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섬기기 위해 봉사할 때는 주도권을 포기하고, 숨은 봉사가 있어야 한다. 의무 때문이 아닌 내면의 인격에서 솟아나오는 섬김이어야 기쁨이요, 평화인 것이다.

c. 공동체 훈련
(1) 예배 훈련
예배훈련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며,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함께 하나님의 사명을 받으며, 하나님의 교역 (ministry)을 위하여 함께 세상으로 나가며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동참하는 훈련이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예배를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 예배의 인도자는 살아계신 단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원히 거룩하신 분 앞에서 변화를 받게 된다.
예배의 시작이 거룩한 기대인것 처럼 그 끝은 거룩한 순종이다. 그리고 진정한 예배는 개인적인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어디서나 모든 악한 세력을 거부하도록 한다.

(2) 고백 훈련
어거스틴 (Ajugustin)은 "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첫 출발점이다" 라고 하였다. 고백과 용서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고백훈련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엡 4:13) 성장시켜 준다. 고백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객관적인 변화가 따르고 우리 자신안에 주관적으로 변화가 따를 것이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수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죄의 고백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죄를 용서할 권세가 주어졌다. 고백한 사람은 절대적으로 용서의 말씀이 주어진다 (요일 1:9).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을 준비하는데 한가지 주의할 점은 자기 성찰과정에서 분명한 한계점이 있어야 한다. 고백훈련은 죄문제 뿐 아니라 사랑, 섬김, 신앙고백 등등을 고백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2) 인도 훈련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개인적이다 또는 집단적이다 하는 것은 조직체란 뜻이 아니고 유기적이고 기능적인 뜻에서 한 말이다. 오늘날에는 신성한 인도에 대한 집단적인 면이 결핍되어 있다.
인도훈련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의 사건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깨닫고 참여하는 훈련이다. 예수님은 "너희중에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9-20) 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께서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인도하시는 일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개인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훈련을 낳아야 한다.
개인이나 집단을 인도할 때 성령의 내적 권위와 성경의 외적 권위가 항상 있어야 한다. 사실상 성경자체가 집단인도의 형태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의 통로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성령이 통치하시고 성령의 훈련으로 변화하는 공동체가 된다. 그들은 온유하게 공격적이고 부드럽고 강하며 고난 받음으로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하나의 공동체로 부르셨다. 이때 영적 지도자를 통해 인도하신다.

(2) 경축 훈련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축을 가져다 주셨다. 그리고 경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1). 구약에서 특히 우리는 많은 축제를 보게 된다. 경축은 모든 성서훈련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훈련에 즐거움과 감사의 성격이 있어야 한다. 또한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 기쁨은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영성생활에서 참다운 기쁨을 생산하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순종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비결은 순종의 기쁨이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은 불행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순종하며, 사랑하며, 봉사하고, 섬김으로 오는 기쁨을 알도록 하신다. 이처럼 경축은 하나님 의지의 행위요 하나의 훈련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당연히 기쁨이 샘솟는다. 그리스도인은 나름대로 경축행사를 개발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교역자의 영성개발을 위하여서는 구체적인 방법인 내면적 훈련, 외면적 훈련, 공동체 훈련를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새롭게 고쳐나가고,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동참하여야 하는 것이다.

. 결 론


사전적으로 "종교적인 가치에 붙잡혀 사는 영적인 삶의 상태"라는 의미를 갖는 영성(Spirituality)의 기독교적 특성은 인간 내부에서 생성되는 어떤 성품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과정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구약은 인간을 하나님과 이웃과 피조세계와의 관계속에 놓여진 영적 존재로 이해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하신 영(ruah)은 인간생명의 본질로서 창조의 시초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 계속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신약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체험 그리고 제자들의 부활체험과 초대교회의 성령강림 사건에 근거한다. 예수의 수세사건에서 하나님의 영은 예수안에 강림, 내주하였다. 그의 말씀과 행위는 하나님과의 영적교제의 외적표현이며, 그의 기도는 그 내면생활이다. 예수의 공생애와 죽음, 부활은 그와같은 영적교제에서 비롯된 역동적 활동으로서 그 힘은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과 초대교회에도 이어졌다.
구약의 돌연하고 일시적인 영체험은 초기 기독교에서도 계속되었다. 지극히 영적인 사람이었던 바울은 '교제의 신비'(Communio Mystica)라고 불리우는 신비주의적인 영성을 보여준다. 교제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연합안에서 그에 대한 복종 및 그와의 교제의 관계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신약의 영성은 그것이 단지 내적인 느낌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케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초대교회는 플라톤주의와 영리주의의 비 기독교적인 영성의 영향으로부터 기독교적 영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초대교회에서 교회의 세속화에 저항하기 위하여 일어났으나 중세에 이르러 도피적, 은둔적 정신운동이라고 비판 받았던 수도원 운동은 은둔, 독거, 묵상, 노동, 검소, 청빈, 극빈, 성경연구, 기도, 명상, 침묵, 예배등을 통하여 영성훈련을 쌓았고 그 활동은 이단 회개, 성직자 각성, 적극 선교, 교육과 성서번역 사업등에 큰 역할을 하였다.
개혁자들의 영성의 중심은 성서였다. 루터는 영은 말씀을 통해서 활동하고 말씀은 영의 활동으로 의미를 지닌다고 하여 신앙의 주,객관적인 양면을 역동적으로 조화시켰고, 칼빈은 성령에 의한 신생과 성화를 통한 구원을 영성의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개혁자들의 영성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개신교회는 개인의 구원과 성결에 중점을 두는 내향적 운동과 사회의 구조악 개선과 성결에 중점을 두는 외향적 운동이 극단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 영성의 주조는 여전히 성경중심, 성령의존의 개혁자적 양상을 띠고 있다.
오늘날 목회현장에서 올바른 영성에 대한 이해와 정립이 매우 시급한 때이다. 뿐만 아니라 교역자의 영성은 교회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교역자는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영적체험과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체험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보다 우선되야 한다. 그리고 목회현장에서 예배를 통하여, 치유와 성만찬을 통하여 적용되는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성장하는데 크나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성생활이란 추상적인 종교적 신앙생활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써의 수임된 과제를 수행하여 너와 내가 공존하는 참된 인간화된 삶 자체이다. 단지 선한 인간성의 함양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꾸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참된 영성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교역자의 영성은 성도들을 능력있는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일이되며, 나아가 참된 교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한 규범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교회의 성장은 교역자의 영성과 영력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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