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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역된 성경들 / 표준새번역 성경

작성자일오삼|작성시간14.09.05|조회수1,057 목록 댓글 0

번역된 성경들

 


(1) 헬라어, 라틴어

1) 70인역(LXX)
가장 먼저 번역된 성경은 헬라어 성경이었다. 주전 3세기경(28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의 장로(학자)들이 모여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을 했다. 이 성경은 우리에게 '70인경'으로 알려져 있다. 헬라어는 당시에 “전 세계가 사용하던 언어”였기 때문에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일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 성경으로 인해 헬라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주님께서 열어 준비해 주신 귀중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3세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 성경이 복음과 함께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셨다.
2) 아람어 탈굼 역과 수리아 역 페시타
그 후에 구약 성경은 아람어로 번역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에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점차적으로 히브리어를 잊고 그 지역에서 사용되던 아람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람어는 당시 페르시아와 그 종족들이 사용하던 주된 의사 소통의 매개체였다. 아람어는 당시 정치와 상업부분에서 국제어로 사용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후세들을 위해 예배 시간에 읽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탈굼(targum)이라는 아람어 번역 성경을 만들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 시리아에 거주하던 기독교인들 역시 '페시타'(Peshitta)라고 부르는 시리아 역 성경을 만들었다.
3) 라틴어 역본들
그 후에 번역된 언어는 라틴어였다. 첫 번째 라틴어 역 성경은 이탈라 역본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2세기에 편집되어 200년경에 완성이 되었다. 이 성경은 히브리어 구야 성경에서 직접 번역하지 않고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경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만들었다. 그 후에 두 번째 라틴어 번역 성경으로 제롬의 불가타(Vulgata), 또는 벌게이트 역이 탄생했다. 282년에 교황 다마스커스는 제롬에게 70인 역 성경을 참고해서 첫 번째 라틴어 번역 성경인 이탈라 역을 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롬은 이 명령을 받고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390-404년에 걸쳐서 번역 작업을 마쳤다. 이 라틴어 성경은 “벌게이트(“대중적인”이란 뜻) 역“이라고 불렀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로마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된 '벌게이트 번역 성경“은 그 후 약 1,000년 동안 기독교 교회에서 공식적인 경전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두에이역(Douay Version)은 라틴 불가타에서 번역된 영역판으로서 1609년에 출판되었고 로마 가톨릭의 공인 성경이다.


(2) 영어역본

1) 위클립 역(Wycliffe's Version)
1383년 최초로 완성된 영어 성경으로 라틴 불가타에 근거하였다. 위클립은 평민들이 사용하던 말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그의 번역을 몇 사람이 도왔다. 위클립은 성경 번역 때문에 박해를 당했다. 번역된 문체는 단순하나 불완전한 표현이 많다.

2) 틴데일 역(Tyndale's Version) 1525년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라틴 불가타의 도움을 받아 헬라어에서 직접 번역한 영어 성경이다. 윌리엄 틴데일이 큰 고난을 무릅쓰고 번역하였다. 그는 영국에서 추방된 후 각처로 다니면서 성경을 번역 출판하였다. 성경을 영국에 밀수하여 평민들에게 팔았다. 세련된 영어 문장과 장의 구분, 적당한 크기의 제본 및 알맞은 가격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흠정역의 요한일서 9/10, 에베소서는 5/6가 틴데일 판에서 인용하였다. 후에 틴데일은 배반자의 밀고로 순교당했다.

3) 흠정역 또는 제임스왕 역(King James Version) 1611년
1604년 7월 22일 영국의 제임스왕 1세는 54명의 사람들에게 성경을 번역하게 하였다. 그들은 영국 국교회 교직자들과 청교도 목사들과 평신도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여섯 집단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부분을 맡아서 번역하여 그것을 모아 전체 회의에서 최종 승인을 받았다. 그 시대는 영국 문학의 전성기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아 문체와 표현이 장엄하다. 영국 개신교가 지금도 좋아하는 성경이다.

4) 개정역(The Revised Version)
영국에서는 1881년과 1885년, 미국은 1901년에 출판되었다. 개정역은 원어에 보다 충실한 번역이다. 흠정역을 준비할 당시에는 다섯개의 위대한 사본들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었다(B.A.C.S.D). 또한 영어의 어떤 낱말들은 상당히 변하였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보다 철저한 지식을 얻게 되고, 성서 본문 비판 학문의 발달은 성서 번역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5) 표준 개정역(The Revised Standard Version)
1946년에 신약, 1952년에 완간되었다. 흠정역과 개정역과 미국 표준역의 개역을 목적으로 나온 역본이다. 흠정역의 문학적 표현을 담고 있다. 번역자들 중의 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자였으므로 그 번역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인기에 있어서는 흠정역만 못하였다.

6) 새 번역 영어 성경(The New English Bible)
1961년에 신약이 출판된 후에 1970년에는 성경 전체가 출판되었다. 이 역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서 완전히 새로 번역하였다. 번역의 장점은 성경 본문을 현대적이며 고상한 영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필요 이상으로 세련된 표현을 하였으므로 비판을 받았다.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자유주의적 편견을 드러내었다. 헬라어를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읽는다면 크게 오해하여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7) 현대 영역 신약(Today's English Version)
1966년에 출판되었다. 대량 보급을 위하여 값싸게 발행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매우 단순한 표현 때문에 성경 본래의 사상이 때때로 상실되었다. 성경 본래의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다른 번역들을 참고해야 한다.

8) 리빙 바이블(The Living Bible)
1972년에 출판되었다. 이것은 매우 자유로운 의역 번역이다. 논쟁이 될만한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어 판은 "현대인의 성경"으로 편역되었다.

9) 신 국제역 신약 성경(New International Version, New Testament)
1973년에 출판되었다. 100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초교파적으로 노력한 결실이다. 뉴욕 국제 성서협회가 후원하였다. 각기 나누어진 전문가 팀이 성경 각권을 번역한 후 잇따른 세개의 편집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이 역본은 균형이 잡혔고 학적이며 신앙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문을 영어로 옮기는 데 있어서 가장 정확하고 실용적이며 뜻이 명확한 번역을 그 목표로 삼았다. 완성된 성경 발행 연대는 1978-1980년이다.

10) 새 미국 표준 신약 성경(New American Standard New Testament)
신약은 1960년에 출판되었다. 전체 성경은 1971년에 출간되었다. 이것은 1901년에 출간된 미 표준역(ASV)을 개정한 것이다. 반대가 있었던 1901년 당시의 역본의 어떤 번역들(예:딤후 3:16)이 정정되었다. 이 역본은 페이지 여백에 많은 참고 구절을 실었다. 이 역본은 헬라어 시제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형식의 구애를 받고 혹은 독단적이어서 비평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것은 탁월한 역본이며 분명히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며 사용되었다.


(3) 한국어 성경

해방 이전
한국에 성경을 소개한 사람은 1832 년에 화란 선교사 구츨라프 목사였다. 그는 홍주 고대도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
그 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로스(John Ross)와 한국 사람 이응찬, 백홍준은 1883년에 누가복음 3 천부를 발행했다.
1887 년에 로스 목사는 같은 계통에서 파송된 매킨타이어(John Mclntire)와 함께 신약 성경 전부를 번역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국 관비 유학생 이수정이 1884 년에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1885 년에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그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1887 년에 아펜젤러 역 마가복음, 1890 년에 언더우드역 누가복음과 스크랜톤 역 로마서, 1892 년에 3 인 공역인 마태복음, 1894 년에 펜윅(Fenwick) 역 요한복음, 1895 년에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1897 년에 골로새서와 베드로 전. 후서, 1900 년 5 월에 신약 성경 전부가 완역되었다.
1904 년에 신약 전서가 개역되었고, 1906 년에 이것을 재 수정하여 결정본으로 공인역으로 출판되었고, 1937 년에 다시 개역하여 일제 말기를 지나 8. 15 해방을 거쳐 오늘 날까지 한국 교회의 공인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1) 개역 성경
1958년에 이미 있던 성경을 개역한 것으로서 대한 성서공회가 출판하였다. 직역한 성서로 문체가 장엄하다. 고어와 한자를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다. 출판 당시에는 한국어 성경으로는 유일하였다. 개신교도들이 정규 예배시에 사용하는 성경이다.

2) 공동번역 성경
개신교와 천주교가 1968년 성서 번역을 위한 공동 위원회를 구성하여 번역한 의역 성경이다. 1971년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다. 1977년 완역된 성경이 출판되었다. 본 역본은 의역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의역 성경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직역 성경을 함께 사용해야 할 것이다. 본 역본에는 외경서가 포함되었으므로 개신교도들이 배척하였다. 개신교는 정규 예배시에 사용하지 않는다. 가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성경이다.

3) 새 번역 신약 성경
1973년에 출판하였다. 개역 성경의 고어를 현대어로 고친 성경이다. 과감하게 현대어로 고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개역 성경보다 현대인들의 이해를 돕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4) 현대인의 성경
영어 성경 "Living Bible"을 원본으로 편역한 의역 성경이다. 1985년 개인 출판사에서 출판하여 현대인들의 이해를 돕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의역 성경의 단점을 지니고 있다.

6) 표준 새번역 성경
1993년에 출판하였다. 대한성서공회가 기존의 개역 성경을 대체할 목적으로 번역한 성경이다. 번역상의 여러 문제들이 발견되어 재번역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개역 성경의 단점인 고어와 중국식 용어에서 탈피하여 전혀 새로운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역본이다

 

 

 

                                                                                               

 

표준새번역 성경

 

 

 

 

<공동번역>이 실패한 경험을 살려, <표준 새 번역>에는

한국교회에서 인정받는 학자들과 보수교단들을 주로 참여시킨 것이다.

성서공회는 이 성경을 소개함에 있어서,

번역에 참여한 학자들과 교단들의 이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이는 한국교회에 충분히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1993년에 <성경전서 표준 새 번역>이 출간되었을 때,

한국교회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이 나올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반대를 한 것이다.

각 기독교 신문들과 잡지들에는 3년 이상

이 성경에 대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대한성서공회의 부총무인 민 영진 박사는 이에 대해 일일이 답변해 주기에 바빴다.

<표준 새 번역>에 대한 각계의 비판은 "표현이 세속적이다."

야훼”를 주로 바꾸었다." "직역이 아니다." 등 무수했다.

그중에는 논리적이지 못하고, 설득력이 부족한 비판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판 속에서

개역성경에 대한 한국 교회의 절대적인 의존도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몇몇 교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표준 새 번역>을 외면했다.

앞장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성서공회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들은 1983년부터 1992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 동안 개역성경의 수정이나 교정이 아닌 전혀 새로운 번역,

개역성경의 뒤를 이어 한국의 대표적인 성경으로

자리 잡을 이 성경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이미 인쇄되어 나온 <표준 새 번역>이 외면당하자

일단 많은 군인 교회들에 "보급"해 버렸다.

<표준 새 번역>이 "의역"이라는 비판이 가장 많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의역("내용동등성 번역")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주장한다

(민 영진, "성경번역에 있어서 직역과 의역" [<그 말씀> 93년 5월호, pp.104-112)

의역이면서도 오히려 원문에 더 충실하다고 주장한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이처럼 <표준 새 번역>이 옳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더 깎아 내려지는 성경은 개역성경이다.

그렇다면 성경이라는 것이 원래 한문으로 기록된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의 한국인이 기록한 것도 아닌, 외국의 번역서인

마당에 개신교가 아직도 개역한글판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고 새로운 번역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공동번역판><표준 새 번역> 성경이 있다.

<공동번역판>의 경우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번역했으나,

개신교 측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공동번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천주교에서만 보고 있다.

<표준 새 번역>이 안고 있는 번역상의 문제점을 알아보자.

예를 들어 <표준 새 번역>에서는 '야훼'라는 명칭이 사라졌다.

'엘로힘' 또는 ''은 '하나님'으로, '야훼'는 '주'로 번역된 것이다.

도대체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이 왜 사라졌을까?

(영어성경에도 야훼여호와를 빼버리고 LORD라고 기록된 것이 많다.

서양인들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일까?)

수많은 하나님의 명칭의 반대자들이 야훼가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도둑질해갔다고 지탄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여호와라는 명칭을 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만물의 창조주이며 형용할 수 없는 존재인 신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라는 것을 자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결국 원래의 성경에는 절대 없는 '여호와'라는 명칭을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급기야 '여호와'라는 명칭을 버리게 된 셈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번역과정에서 '여호와'보다는 '야훼'가 히브리 원어에 알맞다는 것을 알자,

'야훼'라는 명칭이 일반 개신교신자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없는 괴상한 발음이라서

결국 그 명칭을 버렸을 수 있다.

성경에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면서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의 명칭까지도 헌신짝처럼 내 버릴 수 있는 배교자들임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는 <표준 새 번역>이 현대의 한국인에 맞게 쉽게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구절을 고의적으로 감추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안티바이블에서 지적했던 성 불구자에 대한 비하와 관련된

개역한글판 신명기 23장 1절의 '신낭'(불알, 고환)이라는 단어가

표준 새 번역판에 여전히 등장하고 아예 한술 더 떠서 '신경'이라는 단어까지 새로 등장한다.

영문판 NIV에서는 '거세하다'라는 뜻의 'emasculate'라는 단어가 나오고,

NASB에서는 'male organ'(남근)이 'cut off'(잘린)사람은

주의 집회에 올수 없다고 분명히 나와 있는데,

현대에 쉽게 번역했다는 표준 새 번역에서는 아직도 '신낭'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나마 '신낭'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것이 남성의 음부를 표현하는 단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신경'이라는 단어는 과연 무엇인가?

야후의 국어사전을 검색해도 '신경'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설명밖에는 안 나온다.

(국어사전을 새로 만들어서 봐야하는가?)

개역한글판에 비해 표준 새 번역판이 읽기는 쉽다.

그러나 표준 새 번역에는 번역한 사람의 비열한 눈가림과,

신의 명칭까지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배교자들의 냄새까지 난다.

<표준 새 번역>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온 지 오래인데 보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역한글판>보다는 읽기 쉽지 않은가?

바로 목사들이 교단에서 설교를 할 때 표준으로 삼는 것이 계속해서 <개역한글판>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목회자들의 잘못된 권위의식 때문이다.

그 잘못된 권위의식이 찬송가마저도 경전으로 만들어 놓았다.

( 요즘 '찬미예수'등에 수록된 복음송가 중에 좋은 곡들이 많지 않은가? 찬송가마저도 교회의 표준을 정해놓고 경전 화 시켜 개정할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찬송가마저도 경전 화되어 손댈 수 없는 상황이니 <개역한글판>을 누가 바꾸려 하겠는가?

또 한 가지 이유로는 목사들은 신자들이 쉽게 번역된 성경을 읽고

성경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될까 두려워 한다는 점이다.

<개역한글판>은 그 점에서는 최고의 경전이다.

<개역한글판>으로 창세기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뒷골이 팍 당겨 버리는 바람에

포기한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사실 나도 그러하였다.)

설사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한 기독인은 얼마나 될 것인가?

중세시대 때 로마 가톨릭은 평신도들이 혼자서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목회자들은 평신도들로부터 성경을 멀리 치워 놓았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만족감만을 주는

예배할 때의 준비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녕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번역된 새 버전의 성경을 구입하여

꼼꼼히 읽어보아야 한다.

나는 <공동번역판>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표준 새 번역>도 권장할 만하다.

쉽게 번역된 성경으로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경전을 조용한 시간에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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