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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0조 기부하고 재단 해체 후 한 푼 없이 세상 뜬 척 피니

작성자알자지라|작성시간25.06.30|조회수66 목록 댓글 0
부인 헬가와 함께 한 척 피니. 코넬 대학 제공

세상의 많은 부자들이 기부를 한다. 하지만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그런 위선을 떠는 이도 적지 않다. 더욱이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하늘로 떠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일생 동안 표 나지 않게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난 억만장자 기업가가 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29일(현지시간) 전해 눈길을 끈다. 2023년 10월 9일 샌프란시스코의 수수한 임대 아파트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척 피니가 주인공이다.

글로벌 명품 소매 대기업인 듀티 프리 쇼퍼스(DFS)의 공동 창업자 피니는 인생의 후반을 초부유층에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일, 즉 모든 것을 나눠주는 일을 하며 보냈다. 그는 조용히, 체계적으로, 그리고 깊은 의도를 가지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대의에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었고, 끝까지 그를 따라다닌 '자선활동의 제임스 본드'로 통했다. 

그가 재산을 기부하기 위해 만든 자선재단 어틀랜틱 필란드로피스(Atlantic Philanthropies)는 고인의 죽음을 확인하는 성명을 통해 "척 피니는 모든 것을 줬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1931년 뉴저지주의 아일랜드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피니의 어린 시절은 겸손, 절약, 근면의 가치를 배우는 시기였다. 한국전쟁에 주한 미 공군으로 참전한 뒤 코넬 대학에 입학하는데 이 대학은 나중에 조용히 관대한 동문들로부터 수억 달러의 기부금을 받게 된다.

1960년, 피니는 동업자 로버트 밀러와 함께 DFS를 공동 창업해 국제 제트족의 신흥 시장을 공략하고 공항 소매업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재산이 불어도 그의 생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여객기를 비즈니스석으로 탔고, 손목에 찬 시계는 15달러짜리였다. 그는 디자이너 수하물 대신 비닐봉지를 들고 다녔다. 친구들과 사업 동료들은 그를 극히 비밀스러운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의 검소함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칙이었다. 1984년에 그는 DFS의 지분 5억 달러를 비밀리에 어틀랜틱 필란드로피스에 양도해 자신의 재산을 사실상 단절시켰다. 그 뒤 40년 동안 이 재단은 익명으로 80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10조 8232억원) 이상을 기부해 12개국 이상에서 공중보건, 교육, 인권 및 평화 구축을 위한 노력을 뒷받침했다. 그의 유산은 모든 대륙에 걸쳐 병원, 대학, 정책 개혁에 새겨져 있다. 이 작업을 끝낸 뒤 그 재단은 해체의 수순을 밟고 있다.

베트남에서 그의 자금은 국가 의료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에이즈와 싸우기 위한 노력을 강화했다. 아일랜드에서 그의 기부는 리머릭 대학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비롯해 고등교육을 변화시켰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와 코넬 대학 같은 곳에 아낌없이 기부했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지원했으며, 사형제 폐지 캠페인을 후원했다.

2011년, 피니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멜린다 게이츠가 이끄는 글로벌 캠페인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참여해 자신이 오랫동안 실천해 온 것, 즉 재산 대부분을 자신의 생애 동안 기부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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