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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에베레스트 8700m에 홀로 버려진 뒤 생환 링컨 홀

작성자알자지라|작성시간25.11.11|조회수27 목록 댓글 0
링컨 홀과 에베레스트 원경. Jamie McGuinness/Project-Himalaya.com 게티 이미지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반가 링컨 홀(당시 50)은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85m) 등정 중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몇 시간 동안 그를 소생시키려 시도했던 동료들은 그가 죽었다고 결론내렸다. 5월 25일 일어난 일인데 가족은 그가 세상을 등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홀은 1984년 에베레스트 첫 등정에 성공한 호주 탐사대의 일원으로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데 힘을 보탠 산악인이었다. 두 번째 시도로 정상을 밟은 뒤 하산하던 중 8700m 높이의 비좁은 능선 위에서 이런 횡액을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앤드루 브래시(캐나다), 마일스 오스번(영국) 등과 함께 정상을 향하던 미국 산악인 댄 마주르(당시 45)는 홀이 8300m 지점의 능선 위에 앉아 꿈틀거리는 것을 보게 됐다. 구글도 끼지 않았고, 장갑도, 모자도 쓰지 않은 채였고 단열복 지퍼도 열린 채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정도 높이에서 홀로 아주 기본적인 장비도 챙기지 않은 채 혹독한 추위를 견뎌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알고 보니 숨을 거둔 것으로 확신한 동료들이 그의 몸에서 필요한 장비를 빼앗은 뒤 에베레스트 능선 위에 내버려두고 하산한 것이었다.

이렇듯 놀라운 얘기는 피플 닷컴이 10일(현지시간) 공개한 것이었다. 마주르는 당시 매체 인터뷰를 통해 "갑자기 그를 마주쳤다. 그는 한쪽에 약 2400m 높이의 절벽이 있는 산등성이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얇은 양털 상의만 입은 채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모자도, 장갑도, 고글도 없었다. 산소도 없었다. 그냥 입만 헤 벌린 채 앉아 있었다"고 조우 순간을 돌아봤다.

마주르의 말은 이어졌다. "그는 '죽었고'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의 모든 물건을 가져간 것 같았다. 그는 세 명의 셰르파와 함께 했는데 그들은 그의 눈에 손가락을 찔러넣는 것 같은 동작을 했는데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거의 죽을 뻔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몇 명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는 '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놀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 친구, 당신을 만나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마주르가 홀을 만난 것은 등정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뜻했다. 그와 가이드는 "멈추는 것에 대해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라고 되묻고는 "그는 앉아서 손을 들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지나치면 지옥에 갈 거야, 친구, 지옥에 갈 거야!"라고 말했다. 마주르는 홀의 지퍼를 잠그고 장갑과 모자를 쓰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홀은 한사코 벗으려고만 했다.

남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링컨 홀. 극심한 설맹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Jamie McGuinness/Project-Himalaya.com 게티 이미지

"그의 손가락은 촛불처럼 보였다. 반쯤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 밀랍 같고 노란색이었다. 영하 20도, 영하 30도정도였다. 그러나 바람은 없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친구. 이게 네 장갑이야? 장갑을 끼자. 좋아, 모자는 어디 있니? 모자를 쓰자. 코트 지퍼를 잠그세요'라고 을러댔다. 그는 마치 세 살배기 아이 같았다."
그 뒤 홀은 섬망 증세를 보였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따르는 현상이었다. 마주르의 회상이다. "그는 보트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우리가 여기에서 요상한 보트를 타고 있는 거지?', '와우, 너희도 이 보트를 타고 있는 거야?'라고 했다.

예상치 않게 구조대로 변신한 이들은 홀이 눈에 띄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여분의 탱크에서 산소를 제공했다. 홀의 재킷에 로고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베이스캠프 텐트를 식별할 수 있었고,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네팔인 셰르파 등 많은 이들이 달려왔다.
마주르 일행은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피플에 "우리가 잃어버린 4시간은 계속하는 것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오후에는 폭풍이 몰아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양의 산소를 써버렸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일에 아주 겸허하다. 나는 산과 상황에 대한 존경심을 느낀다. 때로는 1인치 정도가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작다. 마치 당신이 작은 완두콩인 것처럼"이라고 털어놓았다.

홀은 완전히 회복됐는데 결국 고산병으로 인한 동상과 뇌 부종으로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

 

여기까지가 피플 기사여서 뒷얘기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위키피디아에 검색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홀은 저술가이자 자선단체 호주히말라야재단의 창립 멤버로 자신의 경험을 청중과 공유한 연사였다. 1987년 그는 등산에 대한 공로로 호주 훈장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호주지리학회가 시상하는 평생 모험상을 수상했다. 호주국립대학 등산 클럽의 종신 회원이었다.

그는 자신을 돕기 위해 생애 한 번 뿐인 에베레스트 등정을 기꺼이 희생한 마일스 오스번과 가깝게 지냈다. 오스본은 홀이 "정말 여유롭고 나쁜 농담을 좋아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미국 NBC 데이트라인은 2006년 에미상 후보에 오른 다큐멘터리 스페셜 'Left for Dead on Mount Everest'를 방영했다. 홀은 공저 한 권, 다른 주제를 다룬 다섯 권, 에베레스트 경험에 관해 두 권의 책을 썼다. 두 책 제목은 'Dead Lucky: Life after death on Mount Everest'(2007)와 'Alive In The Death Zone: Mount Everest Survival'(2008)이다.

그의 책 'Dead Lucky'를 기반으로 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 'Miracle on Everest'는 2008년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호주 ABC에서 방영됐다. 었습니다.

홀은 뉴사우스웨일스주 블루마운틴에서 아내 바버라, 두 아들과 함께 살다가 2012년 3월 20일 시드니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56세 한창 나이였고, 극적으로 생환한 지 불과 6년 만이었다. 중피종(mesothelioma)이 사망 원인이었다.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본 단짝이자 동료 산악인 그렉 모티어는 "어젯밤 11시 45분쯤 매우 평화롭게 떠났다. 링컨은 조용하고 리드미컬한 호흡을 시작했고, 거의 명상적이었고, 조용히 빠져나갔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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