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신 학 자 료 ☆

영성의 거장들(칼빈)(4)

작성자서병문 목사|작성시간11.11.14|조회수16 목록 댓글 0

4. 갑작스런 회심

기독교에서 회심이란 참된 복음을 깨달음으로 인하여 심령의 변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받은 사람들은 모두 결정적인 회심의 순간이 있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을 경험하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어거스틴 역시 회심을 통해서 미신을 숭배에서 벗어나 참 복음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섰다. 앞으로 다루게 될 영적 거장들 역시 회심 사건은 그들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전환점을 이루었다. 그들은 회심을 체험한 후에 복음을 위해서 온몸을 불살라 헌신했다. 그 정도로 회심은 한 개인의 생애와 사역의 향방을 좌우할만한 중대한 종교적 사건이다. 물론 회심은 사람의 노력과 방법에 의해서 일어나는 인위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손길에 의해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심령이 변화되어 삶의 방향이 전환되는 것이 바로 회심이다.

자신의 증언

그런 점에서 칼빈이 자신의 회심을 "갑작스런 회심"(Subita Conversio)1)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령, 존 오웬, 찰스 스펄전, 조지 휘트필드 등의 경우도 모두 갑작스런 회심을 경험했다. 심지어 바울조차도 갑작스러운 회심으로 중대 변화를 가져왔다. 칼빈이 로마 카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회심을 체험함으로 개혁 신앙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다음 몇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1. 칼빈은 회심을 통해서 복음의 확신 가운데 이르게 되었다는 의미. 2, 회심을 통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 삶의 진로를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는 의미. 3. 회심을 통해서 성경을 확신함으로 개혁신학과 사상의 뿌리를 굳게 세웠다는 의미 등. 칼빈의 회심을 알려주는 자신의 「시편 주석」(1557) 서문에서 언급된다. 일단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처음에 나는 너무도 고질적으로 교황주의와 미신에 열성적이어서 그 진흙의 깊은 수렁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갑작스런 회심으로 나의 마음을 복종시키셨고 온순한 성격이 되게 하셨다. 그것은 내 생애의 초기의 어던 것에서 기대했던 것?萱? 이러한 사건들에서 더욱 단단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참경건에 대한 어떤 맛과 지식을 얻은 후에 나는 이내 그 속에서 정진하고자 하는 강렬한 갈망으로 불붙게 되었다. 비록 내가 한꺼번에 다른 공부들을 그만두지 않았을지라도 전보다는 훨씬 적은 열정으로 그것들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일년이 경과하기도 전에 나 자신이 아직 단순한 초심자이며 초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좀더 순전한 가르침을 찾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내게 배우러 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아주 놀랐다. 때를 벗지 못고 숫기없는 성격으로 d니해서 나는 언제나 드러나지 않고 은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말았는데 그때 나는 대중의 시야에서 가려질 수 있는 약간의 외진 구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기는커녕 모든 은신처들은 마치 공립학교와 같았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참으로 바라는 한가지 목적은 속세에서 떠나 은둔하여 알려지지 않은 채 사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너무나 다른 방향전환과 변화들을 통해서 인도하셨으므로 어느 곳에서도 쉬도록 허영하신 적이 결코 없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타고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대중의 주목을 끌도록 만드셨다.2)

이 증언 외에도 칼빈이 쓴「사돌레토에게 보내는 답장」(1539년)에서는 자신의 생애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이 왜 로마 교회에서 개신교로 개종했는지 밝히고 있다. 거기에서 칼빈은 카톨락에 전적으로 헌신된 상태였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개혁 사상을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로 주저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 듣고 복음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두가지 증언을 보면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회심에 나타난 특징들 

첫째,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은밀한 섭리로 역사하셔서 자신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이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자신의 회심까지 이끄셨다고 증언했다. 하나님은 나를 갑작스럽게 회심시키셔서 ---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셨으며 쉽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성격으로 변화시켜 주셨다. 심령의 변화는 인위적으로 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이르어진다. 칼빈 자신의 주장대로 “만물이 우연에 의해 --- 되는 듯하나" (I.16.9),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주권에 관해 이런 입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칼빈은 자신의 회심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일부 학자들이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은 일정 기간을 거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 하지만 그 시점이 언제이든지 간에 칼빈 자신의 강조점은 자신의 회심에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에 있었다.      

둘째,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은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깨우친 사건이었다. 갈빈에서 있어서 경건의 뿌리는 성경에 있다. 그런데 칼빈의 회심은 성경의 발견이요, 복음의 체험이었다. 그는 회심을 통해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총들을 발견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 듣고 복음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증언한 부분이 이를 입증해 준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깨닫게 된 것도 성경을 통해서였다. 거기에다 성경을 통해서 경건의 은혜와 신비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진정한 경건의 맛과 지식을 조금 알고 난 뒤 나는 갑작스럽게 나의 경건을 향상 시켜야겠다는 열의에 불타게 되었다.

그는 경건을 알고 난 후에는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회심 이후부터 시작해서 일생 동안 지속되었다. 그런 식으로 칼빈은 회심 체험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성경의 진리들을 일생 동안 실천하려고 애썼다. 칼빈의 신학에서 성경의 권위와 절대성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대학 시절에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능통하게 익혔던 것이 성경을 확신하게 된 견인차 역할을 한 셈이었다. 칼빈이 그렇게 성경에 대한 확신과 근거를 갖고 개혁에 착수할 수 있었던 분기점이 바로 회심이었다. 그런 체험에 의해서 칼빈이 “믿는 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4)을 중점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서도 “더 큰 유익을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I.6.2)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칼빈이 직접 체험했던 말씀은 무엇 말씀일까? 대체로 개인의 회심 체험에는 명백한 말씀이 그 근거로 남아 있다. 어거스틴은 “집어 들으라” 소리를 듣고 롬13:13을 읽고 회심을 체험했다. 휘트필드는 롬8:15을 통회해서 거듭남을 체험했다. 그렇지만 칼빈의 경우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근거로 해서 롬1:18-25의 말씀을 통해서 회심을 체험했다고 본다. 배틀스 교수는 칼빈의 초기 저작을 정밀하게 분석한 끝에 이 견해를 지지한다.5) 21절은 그 핵심을 이룬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여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칼빈이 「기독교 강요」와 각종 주석 및 일생의 과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경건의 중심 주제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정황에 근거해서 그 구절이 회심 체험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말씀으로 간주하고 있다.    

셋째,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은 “성령의 내적 증거”6)를 통해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칼빈의 회심 자신의 노력이나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회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의해서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우친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의 회심에서 그의 심령에 빛을 비춰주고, 깨달음을 준 동인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 성령이셨다. 「기독교 강요」에서는 “성령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신과 효과적으로 묶어주는 띠”(3권 1장1절)라고 했다. 성령의 띠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임재하신다.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고전12:3).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회심은 성령의 내적 증거를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회심으로 인하여 새로운 심령으로 변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넷째,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은 즉각적인 완성이 아니라 참 경건의 출발이었다. 칼빈의 회심은 어디까지나 “완전한 회심”7)이었다. 로마 카톨릭에서 완전히 돌아섰다는 의미이다. 그 동안 로마 교회의 우상에 빠져 있던 신앙을 완전히 청산했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회심”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회심이 신앙과 인격을 즉각적으로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참 경건의 출발이요, 거룩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의 회심이 완성되기까지는 일생이 소요된 것이다. 칼빈 자신도 자신의 회심을 통해서 신앙의 완성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동안 경건한 삶 곧, 성화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을 강조했다. 성도들은 일생 동안 경건한 삶 곧,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완전한 경건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계속적인 경건의 실천이다. 따라서 칼빈에게 있어서 회심은 즉각적인 완성이 아니라 참 경건을 향해 나아가는 첫발판이었다.

다섯째, 칼빈의 “갑작스런 회심”은 개혁의 발판이 되었다. 칼빈의 생애는 회심 이전과 이후가 뚜렷하게 구분되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나 회심은 그의 영적 순례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 소개할 영성의 거장들도 대부분 회심이 생애와 사역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칼빈에게 있어서도 회심이 그의 생애와 사역에 결정적인 전환이 되었다. 그러나 칼빈의 회심 시기에 관한 견해들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르프랑(Abel Lefrance)은 점진적 회심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결정적인 회심 이전에 이미 회심에 영향을 끼칠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그러다가 콥의 연설문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회심이 완결되었다는 것이다.8)

하지만 홀트롭은 칼빈의 회심 시점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그는 그 시점을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을 쓴 다음(1532년 4월 이후)이자 니콜라스 콥의 연설문 사건이 있기 전(1533년 11월 1일 이전)이었음이 분명하다”9)고 주장한다. 홀트롭은, 콥의 연설문 작성자가 칼빈이라고 단정할 때, 그 내용은 칼빈이 이미 개혁자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해 준다는 것이다. 자유 진영의 일부 학자들은 콥의 연설문이 칼빈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카톨릭 신학자는 기독교 강요 초판을 출판하고 난 후에 개혁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독교 강요의 내용을 볼 때 그 이전에 개혁 사상에 확실한 기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가 어느 때이든 간에 문제는 칼빈이 회심 이후부터 성경 연구에 주력하면서 신학적인 확고한 입장을 전개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곧 칼빈은 회심 이후부터 비로소 개혁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