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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서 대동오거리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왼쪽 산 능선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이 있다. 대전 동구 대동 산1번지. 대전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불리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을 지나야만 다다를 수 있는 대동종합사회복지관 인근 동네다. 마을 꼭대기에 서면 빽빽하게 늘어선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대전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008년 9월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7%에 달하는 252세대 485명이 기초수급권자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노인 인구도 1,019명이나 된다. 게다가 한부모가정 118명, 장애인 403명 등 취약계층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달동네’ 대동에 닿기 전, 큰길인 자양로는 번화한 도시 분위기다. 하지만 길을 건너자마자 분위기가 금세 바뀐다. 낡고 허름한 가게들이 이어진다. 길 이름은 한밭여중길. 길 오른쪽에 한밭여중이 있어 이런 길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 |

대전 대동 복지관길 지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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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동은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다. 대전에서는 보기 힘든 골목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2 지금은 문을 닫은 복지관3길의 연탄가게. 한때 힘들었던 산동네 생활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 3 대동산1번지. 대동 달동네는 요즘 새단장에 한창이다.
- 4 복지관3길에 설치된 재미있는 조형물. 이들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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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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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여중길은 트럭 한 대가 너끈히 지나갈 정도로 넓다. 아스팔트가 깔린 바닥은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여중길’답게 분식집, 문구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후 무렵이면 여학생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진다. 길을 계속 따라 대한빌라를 지나면 본격적인 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오른편으로 새하얀 벽, 주황색 벽, 보라색, 연두색 벽을 가진 예쁜 건물 4채가 나타난다. 창틀도 빨간색,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다. 샛노란 쪽문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물 맞은편 전봇대에 ‘아트인 시티 2007 대전 대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대동이 바뀌게 된 내력은 이렇다. 대동은 2007년 이후 그 모습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문화관광부가 지역생활문화 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아트인 시티 2007’ 사업 공모에 오늘공공미술연구소가 참여해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주민들도 적극 나섰다. 동네 한가운데 버려져 있던 작은 공원에는 꽃밭이 만들어졌고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설치됐다. 잿빛 일색의 삭막하던 골목길은 화사한 노란색으로 칠해지고 갖가지 꽃 그림과 새 그림이 그려졌다. 30여 명의 지역 작가들이 참여해 도왔다. 이후 대전시가 추진한 ‘무지개 프로젝트’도 대동의 모습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전시는 기존 주택과 상가 건물은 그대로 놔둔 채 진입로와 언덕길 등 주거환경을 깨끗하게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최근 들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뉴타운 등 ‘때려부수는’ 개발 사업과는 분명 다르다. 소규모 아파트와 살만한 단독주택은 리모델링한 뒤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 재개발로 인해 기존의 원주민과 세입자가 떠나지 않아도 됐다. | |
“앞으로도 계속 살 동네인데 보기 좋게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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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대동을 찾았을 때 십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머리에 수건을 쓴 채 동네 골목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철거된 건물 폐자재를 옮기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호미를 들고 꽃을 심을 공원 부지를 가꾸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동네가 이렇게 바뀌니 좋죠. 요즘 테레비 뉴스 보면 다 부수고 살던 사람들 나가라고 난리를 치던데, 여기는 그런 일 없어요. 시에서도 약속했으니깐 믿어야죠.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살 동네인데 보기 좋게 만들어야죠.” 한 아주머니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그래도 내 사진은 찍지 마요. 여기저기서 찍어가니까 이젠 귀찮아. 얼마 전에도 내가 테레비에 나왔다고 하던데……”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한결 환해졌다. 주민 잔치인 어울림한마당 축제, 정월대보름 장승제 등 여러 행사도 열렸고 지역 종교단체 등 후원, 불우이웃 돕기 등 따뜻한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마을 분위기가 많이 변했어요. 골목도 한결 밝아졌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마음도 따뜻해진 것 같아요.” 대동을 떠난 지 5년, 부근을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렀다는 김아무개씨(45)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었는데 오늘 보니 다들 신수가 훤하네요. 하하.” | |
눈부시게 노란 골목, 그곳엔 꽃이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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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 골목길은 한밭여중길이 끝나는 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동산마켓을 앞에 두고 좌회전하면 복지관1길이 시작된다. 그 위로 차례로 복지관2길과 복지관3길이 놓여져 있다. 골목은 복지관1, 2, 3길을 뼈대 삼아 사다리 모양으로 걸려 있다. 골목 대부분은 어른 한 사람이 지나가기 버거울 정도로 좁은데다 이리저리 얽혀 있다. 가파르기까지 하다. 건장한 젊은이들도 쉬어가며 올라가야 할 정도다. 골목을 다니다 보면 계단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골목 양 옆에는 낡은 판잣집이 빼곡하다.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인 집들도 많다. “그나마 살면서 이것 저것 고쳐서 이만해진 거지. 예전엔 화장실 없는 집들도 많았어.” 골목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의 말이다. “동네가 언제 헐리려나 조마조마하던 때가 있었지. 가진 돈 한 푼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나가라면 나가야지 무슨 방법이 있나. 길 거리에 나앉는 수 밖에. 그래도 우릴 쫓아내지는 않는다고 그러더라고. 반가운 소리지.”
복지관2길을 걷다 보면 골목 전체가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진 곳이 나온다. 그 색감이 너무 화사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벽에는 파스텔톤의 꽃 그림이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귀여운 얼굴을 내놓고 있는 아이 그림. 양쪽 벽에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사이 좋게 그려져 있다. 대동 골목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큰길인 복지관3길 이곳 저곳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동복지관 앞에는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재미있는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골목을 거닐며 벽화와 조형물을 감상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대동 골목에는 정겨운 풍경이 참 많다. 낮은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놓인 소쿠리가 올려져 있다. 백발의 할머니는 햇볕이 잘 드는 공터에 앉아 해바라기에 한창이시다. 길섶에는 분홍색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이 모든 것이 골목의 낡은 풍경과 어울려 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대동 산1번지 복지관길은 지금도 변신 중이다. 마을에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고 골목은 좀더 화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살던 사람들이 떠나지는 않는다. 불도저나 굴삭기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대동 산1번지의 변화가 기대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