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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삶

[스크랩] 사랑함이 많은 여인(눅 7:47-50)

작성자풀꽃향기|작성시간18.07.27|조회수1,452 목록 댓글 0


[그말씀] 20176월호, pp.94-105 "은혜, 사랑의 원동력"

 

       사랑함이 많은 여인

                   누가복음 747-50

 

 

                                                               변 종 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갈라디아서 522-23절에 나와 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 여기에 아홉 가지 열매가 열거된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개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외에도 더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인 것 아홉 개만 열거한 것이다. 여기에 열매’(karpo,j, 카르포스)란 단어가 단수로 사용된 것은 성령의 여러 열매가 한꺼번에 열리기 때문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개가 차례대로 순차적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한꺼번에 다 열리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열매란 단어가 단수로 사용된 것은 그것이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문자적이고 실제적인 열매들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열매가 이처럼 비유적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는 히브리서 135절의 입술의 열매’(찬송의 제사)과 에베소서 59절의 빛의 열매등이 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 보면 성령의 아홉 열매 중에서 사랑’(avga,ph, 아가페)이 제일 먼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사랑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에게 맺게 하시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이것을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갈릴리의 한 죄인 여자의 행동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I. 본문 배경

 

   본문의 사건은 갈릴리의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일어났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집에서 식사하고 있는 도중에 그 동네의 한 죄인인 여자가 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향유를 그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었다(7:36-38). 이 사건은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은 사건(26:6-13; 14:3-9; 12:1-8)과는 다르다. 그것은 예루살렘 가까이 베다니에서 있었던 사건이며, 본문은 갈릴리의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죄인인 이 여자의 이름은 여기에 나와 있지 않다. ‘죄인이란 것은 이 여자의 직업이나 부도덕한 행실과 관계되어 있는 것으로 창녀이거나 또는 그와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는 여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남자들이 식사하는 자리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고 하여도 예수님은 물리치지 않고 용인하셨다.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발을 만지는데 예수님은 어째서 피하지 않고 가만히 계신단 말인가? 예수님을 초청한 그 바리새인(이름은 시몬)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님에 대해 도덕적이고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여 존경하였지만 이 사건을 보고서는 실망이 컸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39)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빚진 자 둘이 있는데 하나는 500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50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주인이 둘 다 탕감하여 주었다. 그러면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41-42) 그러자 바리새인 시몬이 대답하였다.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43)

   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하시고서 이 여자의 행동을 설명하셨다. 이 여자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표현한 것은 그의 많은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47) , 이 여인의 행동은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 많다는 의미이다. ‘사랑을 이루어 내는 원동력은 죄 사함은혜임을 알 수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성령의 역사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할 수 있다.

 

II. 본문 연구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47)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살펴볼 것은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는 말씀이다(47). ‘사하여졌다는 말의 원어 아피에미’(avfi,hmi)는 원래 떠나다’(leave), ‘가게 하다’(let go), ‘탕감하다’(remit), ‘용서하다’(forgive), ‘허락하다’(allow) 등의 의미를 가진다. 가장 기본적인 뜻은 떠나가다이다. 어원상 아포’(avpo,)로부터’(from)를 뜻하고 히에미’(i[hmi)가다’(go)를 뜻한다. 구약 시대의 대속죄일에 아사셀염소를 광야로 멀리 떠나보내는 것과 같다(16:10). 이것은 우리의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멀리 치워졌음을 의미한다(103:12).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것도 같은 의미이다(1:29). 이처럼 죄인인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함 받았다. , 그의 모든 죄가 다 치워지고 용서받은 것이다.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47)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함 받은 줄을 아셨을까?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바로 아실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그러지 않으시고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유를 나타내는 문장으로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가 된다. 그 여자의 많은 사랑의 행동을 보시고서 그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 사함사랑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죄 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고, 죄 사함을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왜냐하면 죄 사함은 각자가 지고 있는 죄의 빚을 탕감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탕감’(蕩減)은 어떤 사람의 채무를 없애 주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카리조마이’(cari,zomai)인데 은혜의 표시로 값없이 주다’(to give freely as a favor)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빚진 돈을 취소해 주다’(to cancel a sum of money that is owed)는 의미를 가진다.

 

갚을 것이 없으므로(42)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빚을 탕감해 줄 때 주인이 전부 다탕감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탕감에는 부분탕감전액탕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탕감은 전액탕감이다. , 각자가 빚진 금액을 전부 다 없애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빚진 자는 갚을 것이 없기때문이다(42; cf. 18:25).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이 빚진 자들은 둘 다 갚을 것이 전혀 없었다. 갚을 능력이 조금도 없었다. 요즘 말로 하면 신용불량자요 파산자였다갚을 것이 없으므로란 말씀은 사실 우리 인간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마어마한 죄의 빚을 졌는데(cf. 18:24일만 달란트’), 우리에게는 갚을 것이 전혀 없었다. ,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 죄의 빚을 해결할 능력이 조금도 없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기때문이다(3:19).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전액탕감이라는 방법을 택하셨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주 파격적인 방법을 택하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갚을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 파산 상태에 있었다. 신용불량자일 뿐만 아니라 회생불능의 파산자였다. 마치 모압 땅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와 같은 신세에 있었다(룻기 1).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전액탕감이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그러다 보니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의 입장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곧 많이 빚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되는 현상이다. 본문의 비유에서 500 데나리온 빚진 자와 50 데나리온 빚진 자 중에서 500 데나리온(일당 10만원으로 잡으면 5천만원) 빚진 자가 훨씬 이익이다. 따라서 전액탕감의 경우에 많이 빚진 자일수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대박인 것이다. 적게 빚진 사람은 소박이고 많이 빚진 사람은 대박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48)

   본문에 나오는 갈릴리의 죄인인 여자는 그야말로 대박을 맞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많은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부끄러운 과거를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시니 얼마나 감사했겠는가? 그래서 그 여자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해서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다(48). 여기서 ()함을 받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페온타이’(avfe,wntai)인데, 앞에서 말한 아피에미’(avfi,hmi) 동사의 완료 수동태이다. 그 근본 의미는 떠나가다임을 이미 앞에서 말하였다. 그리고 헬라어 동사의 완료’(完了)는 과거에 발생하여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 어떤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여자의 죄 사함 받은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그래서 그 결과로 그녀는 이제 죄 사함 받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여자가 죄 사함 받은 시점은 그녀가 예수님을 믿은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예수님을 처음 믿은 그 시점에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였고 큰 기쁨과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감사하여 그것을 표현할 기회를 찾다가,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머무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그의 감사를 눈물로 표현한 것이다.

 

성령의 역사

   이런 믿음사랑은 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다. 성령이 그 마음에 역사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으며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고전 12:3).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에 감동하시고 역사하셔야만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으며(살전 3:2), 너희는 그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2:8). 베드로도 예루살렘 공회석상에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하였다(15:11). 예수님도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3:5).

   ‘믿음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도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그 성령께서 또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사랑을 실천하게 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한 것이다(5:22). ,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참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많은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감사하며 순수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사랑은 두 가지 방향으로 역사한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향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갈릴리의 이 여인의 경우도 그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께 그의 사랑을 나타내었다. 우선 그의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귀한 향유 곧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쏟아 부어 드렸다. 이 여인의 사랑은 우선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고 또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5:44).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운 사람, 원수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에 반()하며 감정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따라서 이 사랑은 본능적 사랑이 아니라 의지적 사랑 곧 아가페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성령의 열매로 맺는 사랑도 아가페이다. 우리의 본능적, 감정적 자아(自我)를 극복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부인’(自己否認)이 필요하며,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랑한 손양원 목사의 사랑이 그 전형적인 모범이다.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

   이러한 원수사랑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신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하셔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어떤 사랑을 나타내 주셨는지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며, 우리도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도록 감동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된 사람, 대적이 된 사람을 조금씩 사랑하고 화평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늘 불평과 원망과 다툼이 있던 가정이 평안해지고 화목해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해 가는 것이다. 나아가서 교회도 평안해지고 각박한 사회도 인정이 있는 사회로 변해 간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한국 교회의 치우친 사랑

   그러나 한국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강조하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은 약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하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은 많이 약하다. 개인적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은 강조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것은 등한시한다. 혹 이웃 사랑에 대해 말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사랑하는 것만 강조하고, 교회 밖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단지 전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심지어 지옥 갈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랑의 대상으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햇빛을 비춰 주시며 때마다 비를 내려 주신다(5:45).

   따라서 우리는 사랑의 범위를 확대하고 대상을 넓혀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사랑의 대상이다. 우리 주위의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 북한의 동포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사람들, 나아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의 대상이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또한 할 수 있는 대로 사랑을 실천하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 개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교회적으로 힘써야 한다. 교회가 자기들끼리만 행사하고 즐기기보다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기를 힘써야 한다. 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을 주위 사람들을 위한 구제와 복지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므로(고전 13:5), 참된 사랑은 이타적이다. 따라서 자기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 때에 참된 사랑이 이루어진다.

 

균형 잡힌 사랑

   그렇게 할 때 성령의 열매는 균형 있게 열리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성령의 열매가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열심이다. 요즘은 이것도 많이 식었지만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경 읽기와 기도에 열심이었다. 요즘은 찬양에 열심을 내고 있다. 이에 반해 이웃 사랑은 많이 약하다. 특히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서 지역사회와 나라를 위한 사랑은 많이 약하다. 생각을 잘 안 한다. 그러니 성령의 열매에 있어서 불균형이 심각하다. 말하자면 수직적인 것만 강하고 수평적인 것이 약하다.

   그러나 이웃 사랑이 약하면 하나님 사랑도 약하게 된다. 이웃 사랑이 없는 하나님 사랑은 참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사도 요한은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요일 4:20). 따라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돌보지 아니하면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은 참된 하나님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찬양과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아니하신다. 그런 것은 자기 자신의 종교적 감정 만족일 수도 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에(16:13-14),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하신다(22:1 참조). 따라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균형 잡힌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22:37-40).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가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골고루 많이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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