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깨우며]
작년 삼복더위가 지나고 입추가 찾아왔을 무렵이었다.
한여름 내내 쉼 없이 돌아가며 더위를 식혀주던 선풍기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나는 선풍기를 닦아 보관 케이스에 넣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이제 푹 쉬어라."
그리고는 보관 케이스를 가리키며 선풍기에게 말했다.
"이건 보관 케이스가 아니라 네 이불이다. 이 이불 덮고 편안하게 자거라."
그렇게 선풍기는 창고 한쪽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시간은 참 빠르다. 꽃이 피고 지고, 봄이 지나고 어느새 다시 여름 문턱에 섰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부쩍 오르더니 뉴스에서는 올여름이 예년보다 더 무더울 것이라고 연일 경고한다.
그래서 오늘, 창고 문을 열고 선풍기를 다시 꺼냈다.
1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선풍기 케이스의 지펴를 열고 전원 플러그를 꽂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프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피식 웃어다.
전기라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잠시 후.
윙―
선풍기는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머뭇거림도 없고 투정도 없다. 마치 어제까지 일하던 녀석처럼 묵묵히 제 역할을 시작한다.
참 충직한 녀석이다.
에어컨도 점검했다. 리모컨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필터도 살펴보았다. 이제 올여름 더위와의 전쟁을 치를 준비는 끝난 셈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름은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폭염, 열대야 등, 듣기만 해도 땀이 흐를 것 같은 단어들이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더위의 이름들이 우리 곁을 찾아와 춤을 추게 될까.
그래도 여름이 싫지만은 않다.
시원한 수박 한 조각, 그늘 아래의 바람, 계곡물 소리, 해 질 무렵의 노을, 그리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냉커피 한 잔은 여름이 주는 작은 선물이다.
피서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시원한 그늘을 찾고, 땀을 식히고,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 또한 피서이리라. 그래서 나는 올여름에도 작은 행복들을 찾아다니며 더위를 견뎌볼 생각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바람돌이야~~!! 올여름도 잘 부탁한다. 고장 없이 건강하게 돌아줘."
선풍기는 대답 대신 시원한 바람을 보내준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벌써 한여름 피서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