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 또 하나님이 말씀하사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들의 새와 짐승과 온 땅과 땅 위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 의논하셨다.
사람은 하나님 창조의 왕관이고 하나님의 수고의 면류관이므로 의논하사 특별한 조물로 만드시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의논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시사 창조를 맡기시려고 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를 다스리고 관리하며 그들에게서 섬김받으시고 찬양받으시기를 계획하셨다. 그리고 특별한 창조물인 사람에게서 창조주로서 인정받으시고 그를 인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다른 동물들과 우주의 창조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므로 특별하게 지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시기로 하시므로 자기와 유사한 존재를 만드시기로 하셨다.
이런 특별한 존재를 만드시기 위해 지금까지 명령으로만 창조 작업을 하시던 하나님이 특별한 의논을 하시므로 이제껏 창조물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를 만드실 것임을 알리시기로 하셨다.
3.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시기로 하심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로 만들기로 하심이다.
사람은 그냥 고등 동물들이 아니어서 땅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그 손으로 만드실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통상 지성과 도덕적 성품으로 이해해왔다. 이 견해는 로마교회의 가르침으로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해 왔다. 하나님의 형상에 지성과 도덕이 포함되지만, 이것은 바른 이해라고 볼 수 없다. 루터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거룩과 의와 지식으로 말한다.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설 때 나타내는 순정성으로 말하였고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과의 동형성으로 말해왔다.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격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인격을 따라 인격체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모양도 형상과 같은 의미이고 다른 뜻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은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말로 같은 사항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처럼 사람이 인격이 되는 데 성립한다. 사람도 자기의 인격의 복사로 만드심으로 자기의 형상이 되게 하셨다. 타락해도 사람은 그 인격 됨을 상실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인간성을 상실해도 인격은 파괴할 수 없다. 인격은 최소한의 형태라도 남아서 사람이 사람으로 남음을 유지한다.
인격에는 지성과 의지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의지에는 도덕적 성품이 필수적으로 속한다. 사람이 인격인 한에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람이 타락했으므로 바른 인격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처음 아담이 나타낸 인격이 지금 우리의 상태와 얼마나 다른지 바로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격이시듯이 사람도 하나님의 인격에 상응하게 살고 결정하며 일하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허락하사 인격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일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확정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사전에 계획하신다. 따라서 자기의 복사물이어서 형상이 될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시되 자기의 인격에 따라서 사람을 인격으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창조된 후에 한 결정들은 다 자기의 결정이요 자기의 일이다. 자기의 지식을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자기의 결정에 외적 사물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고 스스로 모든 일을 자기의 계획 곧 지식에 따라 결정하시고 일하셨다. 지식이 결정을 선행한다.
사람도 지식이 있어야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자기 지식이 없으면 바른 결정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종속하여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자기의 일을 자기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면 바른 인격이 아니며 인격체로서 바로 선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의 일을 결정하면 그것은 자기의 결정이므로 자기의 책임이 된다. 인격은 자기 일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시고 스스로 결정하신 대로 일하신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일을 다 책임지신다. 사람도 자기의 일을 자기가 책임질 때만 인격이 되어 하나님을 반사한다.
사람은 인격이므로 하나님을 바로 반사한다. 인격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이어서 하나님을 바로 반사하기 때문이다. 인격으로 행동하는 한 하나님을 가장 잘 모방하고 잘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격인 한 영이다. 영은 자기 초월의 능력을 갖는다. 사고와 지식과 결정에서 자신을 넘어간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간다. 자기 자신에게만 머무르고 자기 자신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격이어서 자기 자신을 넘어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물이므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바라게 되어져 있다. 인격은 그 원본에서 완성되고 그 원본에서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격으로서 참 인격이신 하나님의 복사물이므로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의 인격의 그림자이고 하나님은 인격의 원본이고 실체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이므로 즉 형상이므로 원본에 마주서야 인격으로 바로 정립되고 확인된다. 그림자는 원형이 있어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만 하나님을 복사하여 하나님의 형상이다.
모양은 형상과 다른 새로운 요소로서 형상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동의어의 반복이고 강조이다.
그리고 우리의 형상대로는 안에서로가 전혀 아니고 뒤에 나오는 우리의 모양대로의 처럼 해석해야 합당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 내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즉 자기를 반사하여 원형에 상응하게 지으셨다. 원형에 상응해서 원형을 반사할 때만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창조하셨다. 형상 안에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의 범위가 되고 영역이 된다.
4.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므로 그와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자기와 유사한 인격으로 지으신 것이다. 교제는 인격 간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교제는 언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언어는 인격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과 말하고 사귀기 위해서 그를 인격으로 지으셨다.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그렇게 하시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 비밀을 알리시고 자기의 창조의 지혜를 현시하게 하기를 바라셨다. 그런 탐구로 사람은 하나님과 말하여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많은 백성을 만드사 자기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심도 알게 하시므로 어떻게 자녀들을 낳고 길러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는지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을 낳도록 하시려고 계획하셨다.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자기들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의논하기를 바라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교제로 바쁘시기를 원하셨고 모든 백성들이 자기에게만 의존해서 살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를 가지셨으므로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자기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와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다 동시적으로 대화하시고 답을 말씀해주실 수 있다. 자기의 창조물들이므로 그들이 다 나아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려고 하셨다.
5. 하나님은 신형상에 하나님 섬김을 그 본성으로 넣으셨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교제하시기를 바라시고 기뻐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 섬김으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그 심장에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당연한 것으로 알도록 종교의 씨를 심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당위 의식과 하나님을 섬김이 바로 사람의 본분임을 아는 의식이다. 신형상은 하나님을 닮은 인격을 뜻하지만 바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당위 의식을 포함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사람이 자기 본분을 다해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지식을 뜻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김에 기쁨이 있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김이 사람의 생명이므로 그 생명 행위에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6. 신형상의 증거는 사람이 자기 인격에 대해 갖는 존엄 의식으로 표현된다.
사람은 인격이므로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 의식을 갖는다. 그 존엄 의식은 인격체만이 나타내는 현상이다. 아무리 비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자기 인격에 침해와 모독 혹은 무시당하면 분노를 느끼며 그런 자에 대한 용서와 용납을 하기 어려워한다.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 의식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단적인 증거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이므로 이처럼 자기 인격을 가장 존귀한 것으로 여긴다. 자기 인격이 바로 자기의 생명이고 자기의 전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제도나 정치나 사람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인격의 무시에 신적 분노가 일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격을 인격으로 대접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도 인격 존중에 성립하고 자녀 교육도 인격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 속에서 불꽃으로 작용한다.
자기 인격 곧 사람의 자기의식이 모든 것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의 복사물이고 그림자이므로 하나님처럼 창조적인 일을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존재이다.
7.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것은 창조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은 창조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위대한 창조를 다스릴 존재를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피조물을 다스릴 존재이므로 고상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다스리려면 창조주에 버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의 복사물 곧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를 다스리려면 창조주에 버금해야 하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피조 수준에서 인격이 되게 하여 자기의 바른 결정과 지식으로 다스리게 하셨다. 자기의 창조를 다스릴 존재이므로 이렇게 인격으로 만드시고 자기의 모양으로 사람을 지어 가시적인 신적 존재와 같게 하셨다. 모든 피조물들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이처럼 육체 안에다 인격을 격에 침해와 모독 혹은 무시를 받으면 분노를 느끼며 그런 자에 대한 용서와 용납을 하기 어려워한다.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의식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이므로 이처럼 자기 인격을 가장 존귀한 것으로 여긴다. 자기 인격이 바로 자기의 생명이고 자기의 전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제도나 정치나 사람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인격의 무시에 신적 분노가 일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격을 인격으로 대접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도 인격존중에 성립하고 자녀 교육도 인격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 속에서 불꽃으로 작용한다.
자기 인격 곧 사람의 자기의식이 모든 것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의 복사물이고 그림자이므로 하나님처럼 창조적인 일을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존재이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것은 창조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은 창조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위대한 창조를 다스릴 존재를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피조물을 다스릴 존재이므로 고상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다스릴려면 창조주에 버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의 복사물 곧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를 다스릴려면 창조주에 버금해야 하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피조 수준에서 인격이 되게 하여 자기의 바른 결정과 지식으로 다스리게 하셨다. 자기의 창조를 다스릴 존재이므로 이렇게 인격으로 만드시고 자기의 모양으로 사람을 지어 가시적인 신적 존재와 같게 하셨다. 모든 피조물들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이처럼 육체 안에다 인격을 넣어 인격이 가시적이 되게 지으셨다. 창조주에 버금하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하여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어도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에 버금하는 인격이 다스리게 하셨다.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기는 하나님의 그림자가 한다.
8. 다스림의 대상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들이다.
사람이 다스릴 대상으로 지목된 첫째 생물은 바다의 고기들이다. 바다의 고기들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쉽게 잡을 수도 없는 생물들이다. 사람과는 다른 생활 환경에 산다. 우리는 육지 곧 마른 땅에 사는데 물고기들은 바다와 물에 산다. 사람은 물속에 살 수 없고 그곳에 살려고 하면 죽는 길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바다와 많은 물들의 고기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때의 다스림은 지금처럼 그물로 망을 쳐서 잡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고기들을 말씀으로 모아오신 것처럼 말로 모아올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물고기들 위에 지배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타락으로 이 지배권이 상실되어 말로 바다의 고기를 사람이 다스릴 수 없게 되므로 기구들을 이용하여 고기들을 잡게 되었다.
바다의 고기들이 사람의 거주지와 전혀 달라서 다스리고 잡기가 어렵다면 공중의 새들은 더욱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공중의 새들 위에 지배권을 주셨으므로 아담은 이름들을 지을 때 새들의 이름을 지어 부르기만 하면 그 새들이 왔다. 이것은 노아가 방주를 짓고 새들을 그 안으로 불러올 때 잘 나타났다. 사람이 가까이하면 새들이 달아나는 것도 타락으로 사람이 지배권을 상실하므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올바르다. 노아로 하나님이 모든 호흡 있는 생물들을 살리려고 하실 때 노아의 수고 없이 새들이 몰려오므로 그것들을 방주 안으로 넣는 일은 쉬웠다. 말을 하면 새들이 오는 것이 사람이 새들을 다스리는 방식이다. 처음에 아담은 이처럼 말만으로 새들을 불러오고 다스렸는데 그것이 바로 새들을 이름하고 그것들과 함께 지냄이었다. 지금은 공중의 새들을 불러올 수 없으니 기구들을 이용해서 새들을 잡고 가두어서 기르며 먹거리로 쓴다.
육축은 일차적으로 가축을 뜻하지만 땅 위에 사는 짐승들을 뜻한다. 육축은 들짐승을 포함하여 모든 짐승들을 말하면 사나운 짐승들을 포함하여 모든 짐승들이 사람의 지배의 대상으로 배속된 것을 뜻한다. 땅 위의 짐승들은 사람과 같은 생활공간에 살고 사람들이 먹는 식물을 함께 먹게 되어졌다. 그러므로 짐승들이 사람의 관리하에 놓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짐승들은 사람의 행동과 운명에 가장 가깝게 관련되어 사람의 저주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입은 생물들이다. 그럴 뿐 아니라 후일에 사람들을 위해서 제물이 되어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게 되었다. 또 노아 홍수 후에 식량의 부족을 메우고 사람의 목숨을 단축하려고 할 때 짐승들을 먹이로 허락하시므로 사람을 봉사하는 종이 되어 사람을 위해 존재하게 되어졌다. 그러므로 땅 위의 짐승들이 가장 먼저 사람들에 의해서 가축으로 사육되고 길러졌다.
짐승들은 사람과 같은 날 창조되어 생명의 혼으로 불림으로 사람과 매우 친근할 수 있음을 지시한다. 처음 창조 시에는 맹수들도 다 순한 양과 같아서 아담과 함께 지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고 아담의 명령에 잘 순종하였다. 이런 무서운 짐승들과 땅의 모든 생물들이 다 아담의 말에 순종하여 통치자로서의 위엄이 대단하였다.
9. 다스림의 대상은 모든 땅과 땅 위에 기어 다니는 짐승들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모든 땅을 다스리라는 것이 생략되어 번역되었다. 모든 땅 브콜 하아레쓰 라고 맛소라 본문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다스림의 대상은 모든 동물들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와 식물들 전체와 땅에 사는 모든 것을 뜻한다. 식물들을 명시하지 않고 단지 모든 지구 혹은 땅이라고 하므로 식물들과 광물들과 물과 공기와 흙이 다 아담의 통치 대상으로 넘겨졌다. 그 다스림은 관리이고 보존의 사역을 뜻한다.
다스림의 대상으로 모든 땅을 넣은 것은 단지 땅과 거기에 사는 식물들과 기는 동물들만이 아니고 천체들에 그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 이해해야 바르다고 본다. 그러면 별들 그중에 특히 태양계가 다 사람의 관리 영역이 된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땅 위에 기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아담의 다스림의 대상이 되었으니 기는 짐승들과 곤충과 벌레들이 다 아담의 다스림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기는 것들이라고 함으로 훗일에 사탄의 도구가 되어 인류를 유혹한 뱀도 아담이 특히 잘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강조함이 들어있다. 뱀을 잘 다스리고 돌보았으면 사탄이 뱀을 이용하여 사람을 타락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땅과 그 위에 지으신 모든 것을 다 아담의 다스림의 대상으로 넣으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창조를 돌보고 보호하며 바로 다스리게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를 대신하여 창조의 통치자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므로 하나님의 복사물이 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