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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강론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

작성자공학섭|작성시간26.06.05|조회수48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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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

본문: 사도행전 18:24-28

 

배우는 일에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하면 배울 것이 많아집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배우기를 싫어합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날이 언제입니까? 방학하는 날입니다.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도 휴강하는 날입니다. 교인들은 어떤 설교를 좋아합니까? 빨리 끝나는 설교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배우기를 싫어합니다. 반면 본문에 배우기를 좋아했던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볼로입니다. 배우기를 좋아했던 그에 대하여 살펴보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등대와 고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로서 교회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입니다.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던 도시답게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볼로는 학문의 도시에 어울리는 지성인이었습니다.

우리 순천은 걸어서 10분이면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도서관 도시입니다. 또한 평생 학습도시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알렉산드리아라고 할 수 있는 순천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도시에 사는 자들답게 남녀노소 모두 배우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순천시민들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평생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 정원에서 꽃만 볼 것이 아니라, 정원 곳곳에서 독서하는 사람들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00개가 넘는 작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도시의 시민답게 지성을 갖춘 시민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성도님들 시민들보다 두 배나 배움에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언변이 좋은 사람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지역이었지만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웅변에 능한 사람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의사나 약사가 선망받는 직업이지만, 당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아볼로는 언변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24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고린도교회에 아볼로파가 있을 정도입니다.

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입만 부지런하고 손발은 게으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삶과 말이 일치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말 잘하는 재능을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만일 그가 달변으로 자기 유익을 취했다면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언행이 일치해야 합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진정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고운 말 하는 사람, 보증수표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한 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로 형제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 형제와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만 잘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깨끗한 말, 덕을 세우는 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말을 하는 사람입니까? 말을 잘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말로 형제를 섬기며, 나약한 자들을 대변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술을 선용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했고, 언변도 뛰어났으며, 가르치는 열정도 있었습니다. 25절은 배우기도 힘쓴 자임을 말합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라고 말씀합니다.

아볼로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쳤지만, 십자가의 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성령께서 오셨다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를 따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평신도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배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겸손하게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서철원 박사님을 모시고 신학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서철원 박사님의 제자로서 조직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분입니다. 이미 충분히 배웠다고 할 수 있는 분인데도 지금까지 매주 서울에서 열리는 서 박사님의 강의를 들으러 가십니다. 그 태도는 참으로 본받을 만한 모습입니다.

랍비 마빈 토케이어는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배우기를 게을리하는 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배우기를 포기하면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 인간다운 성장은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 나갈 때도 책을 가지고 갔고 말을 타면서도 독서했다고 합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열네 살 때 동네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 역시 도서관이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배우는 사람을 당해낼 사람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만 가지고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부지런히 배운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무엇이든 겸손하게 배우되, 특별히 성경을 배우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디모데가 무식해서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딤후 3:14-15)

우리 도시는 이단이 많은 도시입니다. 성경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한 사람입니다

아볼로는 배운 것을 나누었습니다. 27절을 보면 그는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했습니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직접 기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배운 것을 나누고자 했을 때 형제들은 그를 격려해 주었고,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환영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형제를 섬기고 유익한 일을 하려고 하면 격려하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함께할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아주 귀한 분을 만났습니다. 일본 분이신데, 한국에서 고등학생들의 일본어 수능 지도를 오랫동안 해 오신 유능한 분입니다. 다문화교실에서 교사로 모시려고 합니다. 유익한 일을 계획하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좋은 사람도 예비해 주십니다.

배운 것은 나눌 때 의미가 있습니다. 지식을 혼자만 누리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안에만 묻어둔 지식은 결국 녹이 슬고 맙니다. 아볼로는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눔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었습니다. 27-28절에서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의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 이유는 증거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세례요한에 대해 가르쳤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가르침의 유익은 웅변이나 재미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는 데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증거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할 때 참된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이름은 세례요한이 아니라, 세례요한이 가리켰던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는 자만이 영혼의 유익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을 살리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결론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했던 지성인 아볼로는 배움의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평신도에게 배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르치기 전에 먼저 겸손히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는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아볼로처럼 무엇이든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더욱 힘쓰며, 배운 것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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