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초과근무
언젠가 한 전도사가 섬기던 교회에서 초과근무를 했다며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 달라고 노동청에 진정한 일이 있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부교역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목회자를 성직자로 이해해 온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충격적인 일이다. 어떻게 목회자가 노조를 만들고 초과근무 수당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전의 목회자들은 목회를 천직으로 여기며 헌신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장 귀한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임금이나 처우 문제를 입 밖에 꺼내기조차 주저하였다. 그런 정서가 이제까지 이어왔기에 교인들은 목회자에게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삶이 전반적으로 부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만 가난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가 발생하는 교회의 경우 담임목사는 상식 이상의 사례비를 받으면서 부교역자에게는 적은 생활비를 지급되고 있다. 한국 교회 대부분이 부교역자들에 대한 처우가 인색하다. 게다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적지 않다. 노동청에 진정하거나 노조 결성도 그러한 현실의 반영일 수 있다.
목회자는 사명자로 살아가지만 동시에 한 가정의 가장이며 생활인이다. 성직자라 해도 의식주를 염려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자발적으로 희생할 수는 있지만, 교회가 그 희생을 전제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가장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은 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이다.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는 모든 일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설교 준비와 예배 인도는 물론이고 행정, 심방, 기도, 병문안까지 맡는다. 교회 시설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일도 해야 한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안부를 살피고,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며, 마을의 경조사를 챙기는 일도 목회의 일부가 된다.
생각해 보면 작은 교회 담임 목회자는 날마다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수고가 경제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세상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정당한 임금과 초과근무 수당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회는 일반 직업과는 다른 차원의 소명을 포함하고 있기에 모든 것을 노동의 가치로만 계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목회자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복음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지만, 교회는 그 헌신에 감사하며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을 지원해야 한다.
목회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맡은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교회는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길 때 건강한 공동체가 세워질 수 있다. 헌신은 감사와 사랑 속에서 자발적으로 드려질 때 비로소 참된 의미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