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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세 가지 재산 사용법

작성자공학섭|작성시간26.06.19|조회수13 목록 댓글 0
덜꿩나무

세 가지 재산 사용법

 

17세기 중반 이후 18세기 초반 조선에는 세 명의 큰 부자가 있었다. 역관 출신인 장현, 김근행, 그리고 변승업이다. 이 가운데 변승업은 영조가 직접 일국의 부자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소유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부를 대하는 태도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장현은 장희빈의 친척으로서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정치에 개입하였다. 그러나 권력에 기대어 누리던 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장희빈이 몰락하자 그 역시 유배되어 외딴섬에서 생을 마쳤다. 부가 권력의 도구가 되었을 때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김근행은 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검소한 옷을 입고 장신구도 사치스럽게 하지 않았다. 재산을 자랑하지 않았기에 시기와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현명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는 부를 지키는 법을 알았다.

그러나 변승업은 재산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어느 날 변승업이 중병에 걸려 죽음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이 빌려준 돈의 총액이 얼마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장부를 계산해 보니 무려 은 50만 냥이 넘었다. 당시 조선이 중국과의 무역에 사용하는 연간 자금이 10만 냥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이참에 빌려준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리하기도 번거롭고 떼일 염려도 있습니다.” 변승업은 아들에게 화를 내며 이 돈은 서울 일만 호의 목숨줄이다. 어찌 하루아침에 그것을 끊으려 하느냐?”

변승업은 재산을 자신의 소유물로만 여기지 않았다. 수많은 상인과 백성들이 그 돈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그 돈을 한꺼번에 회수하면 수많은 사람이 파산할 수 있었다. 변승업은 돈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더 이상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는 놀라운 통찰이다. 큰 부는 결코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제도, 시장의 질서,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소비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형성된다. 그렇다면 그 부에는 사회적 책임 또한 따라야 한다.

변승업은 한 집안이 부를 독점하는 것도 권력을 독점하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보았다.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면 부패하듯이, 부도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되면 결국 사회의 반발을 부르고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손들에게 재산을 흩어버리라고 말했다. 흩어버리지 않으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그는 재산을 여러 곳에 나누었다.

변승업의 가르침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많은 이들은 재산을 사유물로 여기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 그러나 변승업은 300년 전 이미 더 높은 차원의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조차도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공공적 자산으로 바라보았다. 재산은 독점의 수단이 아니라 순환의 통로여야 한다. 그것이 개인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만 부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부자를 꿈꾸는 자들도 얼마나 가질 것인가보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해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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