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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

작성자공학섭|작성시간26.06.22|조회수10 목록 댓글 0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

 

우리는 대개 죄를 생각할 때 "잘못된 행동"을 떠올린다.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해치거나, 법을 어기는 일을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을 더 깊이 병들게 한 것은 때로 적극적인 악행보다도 침묵과 무관심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가 역사의 비극을 만들었다.

단테의 신곡지옥편에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지옥문에 들어선 순례자는 빈 깃발을 쫓아 끝없이 달리는 무리를 본다. 그들은 선을 위해서도, 악을 위해서도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단테는 이들을 지옥의 가장 비참한 무리 가운데 하나로 묘사한다.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책임지는 존재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가장 무서운 모습이 특별한 악마성에서 나오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평범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역사 속의 수많은 비극은 소수의 악인보다 다수의 침묵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질 때 침묵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약자를 외면하는 것은 방관일 뿐이다.

영화 로베레 장군의 한 장면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치에 저항하지 않았던 한 시민은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처형당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레지스탕스는 오히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죄"라고 외친다. 조국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갈 때 침묵으로 일관한 삶은 결코 무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대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책임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성경 역시 죄를 단순히 금지된 행동의 범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야고보 사도는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4:17)고 말한다. 죄는 악한 행동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았지만 지나쳤다. 그들은 때리지도 않았고 빼앗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멈추어 섰고, 다가갔고, 돌보았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사람은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선을 행한 사람이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을 행해야 한다. 침묵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해야 하고, 손 내밀어야 할 때 손을 내밀어야 하며, 복음을 전해야 할 때 전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는 때로 행한 죄보다 더 무겁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랑과 책임의 기회를 스스로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책임을 향한 아름다운 순종의 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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