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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미지근한 사랑이라서 좋다

작성자공학섭|작성시간26.06.23|조회수11 목록 댓글 0

미지근한 사랑이라서 좋다

 

육십 대를 넘긴 부부들에게는 젊은 날의 뜨거운 포옹도, 가슴 설레는 사랑 고백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혼자 외국에 나가 있을 때면 문득 집에 홀로 남아 있을 아내가 떠오른다. 아내가 열이 나거나 밥을 잘 먹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반대로 입맛이 돌아오고 목소리에 생기가 돌면 마치 내 병이 나은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집안에도 다시 햇살이 드는 것 같다.

사랑은 말과 몸짓으로 드러나지만, 정은 소리 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란다. 마치 땅속 깊이 흐르는 지열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따뜻함을 품고 있다. 우리 부부가 그렇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인색하다. 때로는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고, 다시는 함께 살지 않을 것처럼 투덜거리기도 한다. 겉으로는 차가운 얼음장 같은 기운이 감돌지만, 그 아래에는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미지근한 사랑이지만 그렇게 사십 년, 오십 년의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비단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대부분 노부부가 비슷하게 살아간다.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표현이 서툴다고 사랑까지 얕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사랑은 말보다 마음에 더 깊이 새겨져 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도 어느 한 사람이 아프면 숨어 있던 사랑이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약을 챙기고, 안부를 묻고, 잠든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 속에 사랑이 담겨 있다.

미지근한 사랑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뜨겁게 끓는 냄비처럼 금세 식어 버리지도 않는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천천히 익어 간 사랑이다. 자녀가 부모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만, 배우자에게서 나오는 사랑과는 다르다. 자녀들은 언젠가 자신의 길을 가지만,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람은 남편이고 아내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사실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미지근한 사랑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 일이다. 좋은 보약은 센 불에 급히 달이지 않는다. 은근한 불에 오래도록 달여야 약효가 깊어진다. 부부의 사랑도 그렇다. 매일 뜨겁게 타오를 수는 없다. 한순간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쉽게 식어 버려도 되는 사랑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 걸어가야 하는 사랑이다.

느리고 더뎌 보여도 멈추지 않는 사랑, 화려하지 않아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사랑, 뜨겁지는 않아도 오래도록 따뜻한 사랑. 어쩌면 그것이 부부가 평생에 걸쳐 완성해 가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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