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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하소설가

[영화감상] 색조의 빛을 갈망하는 고흐의 영혼을 스크린으로 만나다

작성자산정-김익하|작성시간19.12.27|조회수179 목록 댓글 0


[영화감상]


색조의 빛을 갈망하는 고흐의
       영혼을 스크린으로 만나다


김익하



 
 
2019년도 마지막 강의를 끝내고 바로 메가박스 목동으로 발걸음 했다.
 귀 싸맨 자화상으로 눈에 익은 인상파 화가 고흐. 색조의 빛을 갈망하는 그 고흐의 영혼을 스크린으로 만나기 위해서다. 겨울 극장가, 온통 ‘겨울왕국’이 스크린을 점령한 판세라 서울에서도 상영관 찾기가 쉽잖았다. 국내 개봉 첫날인 이날 불꽃 같은 생을 사르고 간 고흐처럼 메가박스 목동에는 극영화가 아니라서 그런지 개봉 뒤 주말 일정을 포함해서도 단 1회 상영밖에 볼 기회가 없었다. 요행 그의 그림을 좋아하거나 그의 생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칠십여 석의 좌석을 메웠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원제: At Eternity's Gate》는 2018년 개봉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삶 가운데 1888년 2월, 밝은 태양을 찾아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로 이주해 ‘노란 집’에 살면서 폴 고갱을 만난 뒤 37세로 요절할 때까지, 런닝 타임 111분짜리 드라마 영화이다.


 고흐가 그린 <노란 집> 72x91.5㎝·1888년 9월·캔버스 유채


 제60회 칸영화제에서 <잠수부와 나비>로 감독상을 받은 화가 감독 줄리언 슈나벨이 연출과 감독을 맡았고,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세계 영화제 연기상을 휩쓴 윌렘 데포가 고흐 역을 소화해내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화가 감독은 그를 보자마자 고흐를 영화화하겠다고 역발상 했을 만큼 닮은 모습, 햇빛 쏟아지는 숲과 황금 조각이 물결치는 갈대숲으로 향하는 눈빛, 드넓은 황금빛 밀밭과 태양을 찾아 언덕을 오르는 몸짓까지 고흐를 영락없이 20세기 한국인 앞에다 재생해 놓았다.



영화 속 갈대숲을 달려가는 고흐의 스틸 사진


 한때 그림의 동반자로 결국, 귀를 자른 자해에 원인을 제공했던 폴 고갱 역은 <인사이드 르윈>의 오스카 아이삭이 맡아 열연했다. 고흐는, 프랑스 화단을 향해 ‘우리가 혁명(그림 세계)해야 해!’를 외치는 고갱과 같이 남부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려고 두 달 동안 공동생활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나 화풍과 성격 차이로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킨다. 그들은 그림에 대한 이해부터 달랐다. 심지어 고갱은 풍부한 색채와 두껍게 바른 물감과 대담한 붓 터치로 빠르게 그려대는 고흐에게 너무 빨리 그려댄다고 나무라기까지 한다. 고흐는 그와 다투다 정신병 발작으로 자기 귀를 자르는 일까지 발생하여 고갱과 결별하게 된다.


영화 속의 고갱과 고흐의 스틸 사진



<귀를 자른 자화상> 1889·60.5x50㎝·캔버스에 유채
  


 위 그림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카페 여주인 지누를 모델로 한 방안에서 고흐와 고갱이 경쟁하듯 그려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그림이다. 왼쪽이 1888년 고흐가 그린 <지누 부인>이고, 오른쪽은 고갱이 역시 1888년에 그린 <밤의 카페, 아를>이다. 고흐가 그린 지누의 초상화는 인간 내면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의도였던 반면, 고갱은 지누를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창녀 같은 인상으로 그려냈다. 리얼리즘적이었던 고흐는 이런 고갱의 그림 창작 스타일을 왜곡했다고 생각했으나 비난하지 않는다.


 영화 속의 지누 부인의 스틸 사진


 그러나 고흐는 고갱을 아끼고 사랑했다. 귀가 잘린 통증에도 그에게 편지를 쓴다.


 ‘멋진 세상 악의는 없었소. 자네에게 깊은 우정을 전하려고 퇴원하자마자 편지를 쓰네. 병원에서 자네 생각을 많이 했네. 높은 열에 시달리고 정신이 희미해진 순간에도. (하략)’
                -『반 고흐, 영혼의 편지』p227 <예담>에서


 고흐가 귀를 자른 뒤 프랑스인들은 네덜란드 쥔더르트에서 1853년 3월 30일에 태어난 이 미치광이 화가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진다. 특히 정신병원으로 드나들 때 고흐에게 가장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천주교 신부역은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매즈 미켈슨이 역을 맡아 냉소적인 말투로 연기하여 고흐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영화 속의 고흐와 대담하는 천주교 신부의 스틸 사진


 신부가 고흐에게 냉혹한 눈빛으로 묻는다. ‘당신이 왜 화가라고 생각하죠?’ 당시 미술 화풍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무시당하는 처지로선 이 물음은 당연했을 게다. 이에 고흐는 간장 종지만큼 크고 퍼런 눈에 슬픔을 가득 담고 변명하듯 대꾸한다. ‘왜냐하면, 그거 외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이 노력했어요.’ 신부는 냉소하며 또 묻는다. ‘왜 유명해지지 않았죠?’ 이에 아버지가 목사였고 한때 목사를 꿈꾸었던 고흐가 답한다. ‘예수도 죽은 뒤에 알려졌어요.’ 그러면서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영화 속 신부의 물음에 답하는 고흐의 스틸 사진

 

서른일곱에 요절한 고흐는 우리나라 양구 출신 화가 박수근처럼 사후에야 그림값을 제대로 받았다. 그러니 그의 생계는 파리에서 화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 팔린 작품은 데생 하나뿐이었으니까. 이런 동생 테오 역은 루퍼트 프렌드가 맡았다.    

 

영화 속의 고흐와 동생 테오의 스틸 사진

 

고흐의 작품에는 유난히 자화상이 많은데 이는 가난해서 모델료를 아끼려고 자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연유로 가까운 사람이 모델로 나서기도 해서 그렇게 그려진 그림도 많다. 고흐는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심경을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알리곤 했는데 무려 668통에 이른다. 편지를 통하여 고흐의 심경이 세세히 드러나서 이해하는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평생 생활비조차 벌지 못하는 형을 위해 헌신하던 동생 테오도 수명이 길지 못해 고흐가 죽은 6개월 뒤 만성 신장병으로 죽어 형 옆에 나란히 묻혔다. 고흐가 정신병원에 가는 일도 동생에게 부담이 가중될까 봐 꺼렸던 거로 알려졌다.  

  

영화 속 고흐가 의사 가쉐를 그리는 장면의 스틸 사진  

  

<의사 가쉐> 1890. 3·68x57·캔버스 유채  

  

<우체부 조셉 쿨랭> 1888·81.2x65.3· 캔버스 유채

생활비 때문에 동생과 자주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친하게 된 우체부도 몇 장 그렸다.  


화사한 날 꽃나무를 그리고 있는 고흐의 스틸 사진  

 

  <꽃이 핀 자두나무> 1888.4·55x65·캔버스 유채

 

고흐의 초기작들은 주로 서민 노동자 등의 하류계급, 그리고 생활 풍습을 소재한 어두운 화풍으로 알려졌다. 그때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본 조언자 라파르드 충고로 1886년 화상 점원생활을 하는 동생 테오을 찾아 파리로 진출하면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감자 먹는 사람들> 1885·81.5x114.5·석판화

일본 우키요에(浮世繪)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파리에 싫증 난 고흐는 18882월 아를로 이주한 뒤, 눈부시고 강렬한 색채화가로 거듭난다. 이때 피기 전, 해를 따라 도는 황금빛 해바라기를 많이 그려냈는데, 영화에서도 배경화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른 죽음을 암시하듯 햇빛을 향해 활짝 핀 해바라기가 아니라 고개가 꺾이고 황폐하게 쓰러진 해바라기를 카메라가 되풀이해서 잡는다. 고흐는 18888월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마르세유 사람이 부이야베스 생선 수프를 먹는 것처럼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중략) 해바라기를 캔버스 세 개에다 동시에 그리고 있다. 첫 번째는 초록색 화병에 꽂힌 커다란 해바라기 세 송이, 두 번째 역시 세 송이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꽃잎이 떨어지고 씨만 남았다. 세 번째는 노란색 화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며 30호짜리다.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중략) 매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꽃이 빨리 시들어버리는 데다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엄밀하게 그릴 작정이다.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 1888.8·91x72·캔버스 유채

 

고흐는 18905월 마지막 귀착지인 프랑스 북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온다. 죽기 두 달 전이다. 의사 가쉐의 보호 아래 라부 여인숙의 다락방에 기거하며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여 팔십 일 동안 무려 칠십 다섯 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의 특유의 화려한 채색화, 강렬한 색과 거친 화풍, 정신 병원을 들락거리며 번뇌와 고독과 절망을 통해서 터져 나오는 갈등의 산물을 화폭에 옮겨 놓았다.


  

위 그림은 8년 앞서 <영원의 문에서>이란 판화 작품으로 그린 것인데, <울고 있는 노인>으로 캔버스 유채작품으로 다시 그렸다. 이즈음 주민들이 그를 미친 사람이라 정신병원에다 집어넣으라고 경찰에 청원하던 무렵이라 알려졌다. 영화에서 이 노인이 신은 구두와 같은 본인의 신발을 그리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거칠게 덧칠하는 배경색은 갈댓잎에서 번들번들 빛나는 햇빛 조각을 오려다 붙인 듯해 찬란해 보이기도 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50.5x103·캔버스 유채


 

고흐의 마지막 그림이다. 여느 그림과 같이 직선이 없고 모든 게 뱀처럼 꾸불거리는 스펙트럼 색띠를 병치하여 이글거리는 감정을 독특한 곡선으로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지금 어지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밀밭을 그리고 있으며, 지독한 슬픔과 고독을 그리고 있다고 썼다. 이글거리는 밀밭 위를 검푸른 하늘이 짓누르고 불길하게 검은 무리의 새떼가 낮게 날아다닌다. 노랑과 파랑·녹색의 강렬한 보색 대비, 여기에 그의 슬픔과 고독과 분노가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영화 속 고흐의 스틸 사진

 

고흐의 죽음은 정신질환을 앓다가 1890727일 스스로 총으로 자살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 영화 감독은 타살로 처리했다. 고흐의 타살설은 2011년 하버드대 출신 스티븐 네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의 저서로 불거졌다. 이에 법의학자 빈센트 디 마이우가 가세했다. 총상 부위는 스스로 겨냥하기 어려운 위치고 고흐의 손에 화약 흔적이 없기에 타살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감독은 이에 따르면서 그 이유를 댔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팔십 일 머물면서 그림 칠십 다섯 장이나 그린 그가 극단적인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

  

  

영화 속 고흐의 스틸 사진

 

남프랑스의 강렬한 태양이 노랗게 이글거리듯 노랑이 고흐 트레이드마크다. 물감을 덕지덕지 으깨 거칠게 덧칠해서 찬란한 빛이 절정에서 소용돌이치게 해 영혼을 사르는 그림. 색조 속에서 빛을 찾아 빛이 내린 숲을 야생마처럼 헤매는 광기 넘치는 이 사내를. 또 현대 미술의 표현주의에 거대한 폭풍을 휘몰아치게 한 불우의 천재적인 이 화가를.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생전 한 점도 팔아보지 못한 이 인기 없던 화가를. 생활은 없고 그림에 왼 정신이 나가 있어 생활인으로서 철저히 패배한 이 광인을 감독은 스크린에다 어떻게 옮겨놓을 것인가.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시작 전 컴컴한 스크린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감독은 고흐 걸작이 탄생한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아름다운 풍경, 실제 그가 살았던 곳에서 로케이션 촬영했다고 알려졌다. 광활한 밀밭, 고흐가 머문 샛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방. 멀리 화재 난 듯 역광으로 번들거리는 푸른 수풀,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출신 감독이 카메라로 그림을 그리듯 솎아낸 서정이 화면에 꽉 들어차 시선을 압도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난 듯 윌렘 데포의 눈빛과 표정과 몸짓이 경이를 넘어 깊게 빨아들여 동행을 요구한다. 사람을 대할 때 겁먹고 주저하던 눈빛이 태양 빛이 머문 곳으로 찾아갈 때 살기를 느낄 만큼 광기로 번뜩인다. 카메라는 번갈아 캔버스에다 물감을 입히듯 영상을 찍는 게 아니라 흔들 때는 가차 없이 흔들면서 그려간다. 고흐의 그림의 동적 요소를 담아내듯 더 거친 흐름을 보이려고 나무와 풀을 바람에 시달리게 해서 색조의 흐름이 화면에 출렁거리도록 한다. 저절로 화면 안으로 휩쓸려 든다. 극영화가 아니라서 지루하지만, 고흐의 눈빛 때문에 사이의 암전을 참아가며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고흐와 천주교 신부의 대화 장면에서 천재성을 인정받고도 먹거리를 위해 의지를 꺾고 일찍 진로마저 바꾼 예비 예술인들을 내내 생각하잖을 수 없었다. 한해의 해가 짙은 노을을 품고 저물기에 앞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게 여러 모에서 위안을 받기도 했고 내가 할 일에 믿음의 진위를 되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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