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6월, 보름달은 가장 낮다
이태형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관장
| 좌) 1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시기가 바로 6월 하순 하지 무렵이다 우) 황도와 적도. 태양은 하지에 적도에서 가장 북쪽으로 멀어지고, 동지에 가장 남쪽으로 멀어진다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
낮이 밤보다 5시간 이상 긴 6월 하지
한여름 정오 무렵 하늘을 올려다보면 태양이 유난히 머리 위에 가깝게 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시기가 바로 6월 하순의 하지(夏至) 무렵이다.
지구의 자전축은 공전궤도면에 대해 약 23.5도 기울어져 있다. 이 때문에 태양은 1년 동안 천구의 적도를 기준, 남북으로 약 23.5도씩 오르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북반구에서는 여름철에 지구의 북극이 태양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태양이 높이 뜨고, 겨울철에는 반대로 태양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에 태양이 낮게 뜬다. 즉, 여름에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가 하늘 높은 곳을 지나고, 겨울에는 하늘 낮은 곳을 지난다.
태양이 천구의 적도에서 가장 북쪽까지 올라가는 날이 바로 하지이다. 이날은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고 낮의 길이도 가장 길다. 2026년 서울 기준 하지는 6월 21일이며, 이날 해는 오전 5시 11분에 떠서 오후 7시 57분에 진다. 낮의 길이는 약 14시간 46분으로 밤보다 무려 5시간 이상 길다.
그런데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이 시기는 보름달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을 황도, 달이 지나가는 길을 백도라고 한다. 백도는 황도에 대해 약 5도 기울어져 있으므로 달 역시 대체로 태양과 비슷한 길을 따라 움직인다.
보름달은 지구에서 볼 때 태양과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달이다. 따라서 하지 무렵의 보름달은 태양이 있는 여름철 위치의 반대편, 즉 겨울철 태양이 지나는 낮은 길 근처에 놓인다. 태양이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보름달은 반대로 낮은 길을 따라 움직이고, 태양이 낮게 뜨는 겨울에는 보름달이 높은 길을 따라 이동한다.
2026년 6월의 보름달은 6월 29일 밤에 뜬다. 이날 서울에서 자정 무렵 가장 높이 오른 보름달의 남중고도는 지평선 위 25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팔을 뻗었을 때 손바닥 한 뼘(20도)보다 조금 높은 위치로, 올해 가장 낮은 길을 따라 움직이는 보름달이 되는 셈이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속의 일출과 월출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는 1889년 프랑스 남부 아를에 머물며 밀밭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위의 두 그림에도 붉은 천체가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하나는 태양이고 다른 하나는 달이지만, 그림만 보아서는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과연 어느 그림이 일출이고 어느 그림이 월출일까?
그 비밀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 속에 숨어 있다. 태양은 춘분과 추분 무렵 거의 정확히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춘분 이후에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며, 여름철에는 동쪽보다 북쪽으로 치우친 방향에서 떠오른다. 반대로 가을과 겨울에는 남쪽으로 이동하여 동쪽보다 남쪽에서 떠오른다.
동해안에서 동쪽을 바라본다고 가정해보자. 해가 떠오르는 위치의 왼쪽은 북쪽이고 오른쪽은 남쪽이다. 따라서 여름철 태양은 동쪽보다 왼쪽, 즉 북쪽으로 치우쳐 떠오른다. 반면 보름달은 태양과 정반대 위치에 있으므로 남쪽으로 치우쳐 떠오르게 된다.
| 1889년 여름 반 고흐가 그린 그림(위 ①, 아래 ②) ○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같은 지형이다 |
오른쪽의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②번 그림의 천체가 ①번보다 더 왼쪽, 즉 북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②번 그림은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 장면이고, ①번 그림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월출 장면이다.
천문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반 고흐의 그림 속에도 자연의 법칙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과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반 고흐는 천문학자가 아니었지만 자연을 누구보다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의 그림 속 하늘은 오늘날 천문학의 시선으로 보아도 놀라울 만큼 사실적이다.
해가 졌음에도 밤하늘이 어두워지지 않는 백야 현상
여름철 북유럽이나 알래스카를 여행한 사람들 가운데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밖이 훤히 밝아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해가 지기는 했지만, 밤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환한 상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흔히 ‘백야(白夜, White Night)’라고 부른다.
극지방의 대표적인 천문 현상으로는 오로라와 백야, 그리고 ‘자정의 태양(Midnight Sun)’이 있다. 그런데 자정의 태양과 백야는 같은 현상이 아니다. 자정의 태양은 밤에도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고, 백야는 해가 졌음에도 밤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이다.
백야에 대한 정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일부 자료에서는 북위 48.5도 이상을 백야 지역으로 설명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북위 약 60.5도 이상 지역을 백야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가 진 직후 하늘이 곧바로 어두워지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 약 6도 정도 내려가야 비로소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인공조명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밝은데, 이 시간을 ‘시민박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위도부터 밤이 어두워지지 않을까? 그 기준이 바로 북위 약 60.5도이다. 하지 무렵 태양이 밤에도 지평선 아래 6도보다 더 내려가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밤이 되어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 이 지역이 바로 백야 지역이다.
물론 백야 지역이라고 해서 언제나 밝은 것은 아니다. 해가 지는 방향에 높은 산이 있거나, 구름이 많고 비가 오는 날에는 평소보다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맑은 날이라면 밤늦은 시각에도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할 수 있을 만큼 밝은 하늘을 만날 수 있다.
백야는 북위 60.5도 이상 지역에서만 보인다
북극성의 고도는 관측자의 위도와 같다. 따라서 북극에서는 북극성이 머리 위인 90도 높이에 보이고, 서울에서는 북쪽 하늘 약 37도 높이에 보인다. 하지 무렵에는 태양이 북극 방향으로 23.5도 정도 올라가 있다.
| (좌) 계절에 따른 태양의 고도 변화 (우) 박명시간의 종류. 시민박명 시간에 해당하는 밤을 가진 지역만이 백야지 역이다 ©천문우주기획 |
태양이 한낮에 가장 높이 떴을 때를 남중했다고 한다. 하지에 태양의 남중고도는 [90도-위도+23.5도]이다. 즉, 서울의 경우는 76.5[=90-37+23.5]도 정도가 하지 때 태양의 남중고도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밤중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장 많이 내려가는 정도는 어떻게 될까? 북쪽 지평선의 하늘위도(적위)는 [90도–위도]이다. 즉, 서울의 경우 +53도가 북쪽 지평선의 하늘위도이다. 하지 무렵에 태양은 하늘의 적도에서 북쪽으로 23.5도 올라가 있기 때문에 태양은 지평선 아래로 29.5도(=53-23.5) 정도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위도가 높아질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태양이 밤에도 충분히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위 60.5도 부근에서는 태양이 지평선 아래 6도보다 더 내려가지 못해 밤에도 하늘이 어둡지 않다. 이것이 백야가 시작되는 이유이다.
북위 66.5도 이상인 북극권에서는 태양이 아예 지지 않는 자정의 태양을 볼 수 있다. 하지가 지나 태양이 조금씩 남쪽으로 이동하면 백야 지역과 자정의 태양 지역도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
백야권에 숨어있는 천문학의 원리
태양이 지평선 아래 6~12도 내려간 상태를 항해박명, 12~18도 내려간 상태를 천문박명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은 천문박명 정도가 되면 충분히 밤이라고 느끼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하늘에는 아직 태양빛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북위 48.5도 이상 지역도 백야 지역으로 소개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백야의 정확한 의미는 ‘해가 져도 어두워지지 않는 하얀 밤’이란 뜻이다. 즉, 시민박명 시간에 해당하는 밤을 가진 지역만이 백야 지역이다. 따라서 하지 무렵의 백야는 북위 약 60.5도 이상에서만 나타난다.
하지 무렵은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르고 낮이 가장 길어지는 계절이다. 동시에 보름달은 가장 낮은 길을 따라 움직이고, 북유럽의 하늘에는 밤이 사라진 듯한 백야가 펼쳐진다. 같은 태양과 달이라도 계절과 위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양과 달이 만들어 내는 이런 계절의 변화는 우리가 사는 지구가 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친숙한 증거이기도 하다. 올여름에는 해가 지는 방향과 보름달이 떠오르는 위치를 한번 유심히 살펴보자.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하늘 속에도 놀라운 천문학의 원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이 원고는 월간 <과학과기술> 6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