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으로의 초대, AI와 공존하는 초등학교 교실
김홍재 과학 칼럼니스트
| 제6차 교육혁신미래포럼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AI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2022년 개정된 초등 도덕과 교육과정에 등장하는 쉽지 않은 화두다. AI를 활용한 수업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편리함에 앞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 또 책임 있는 디지털 기술 활용과 성숙한 디지털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AI 윤리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제6차 교육혁신미래포럼이 지난 5월 7일 ‘에듀테크(EdTech)를 넘어 에듀벨류(Ed-Value)로: AI와 공존하는 초등학교 교실’을 주제로 개최됐다.
AI가 가져온 ‘편안한 삶’과 ‘좋은 삶’의 차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다스 왕은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얻었지만, 그로 인해 음식조차 먹을 수 없고 사랑하는 이의 손조차 잡을 수 없는 완벽한 고립에 내몰렸다. 첫 발제자로 나선 이한진 청주교대 교수는 ‘인공지능과의 지속가능한 동행 교육을 묻다’를 주제로 발표하며, AI의 무한한 능력이 미다스 왕의 황금손처럼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AI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과 AI의 동행은 궁극적으로 어떤 ‘좋음’을 지향하는지, 어떠한 목적과 가치를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관계적 실천의 차원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편안함과 좋음의 가치를 구분하기 위해 이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행복)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AI가 선사하는 마찰 없는 편리함으로 가득한 삶과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하는 좋은 삶은 엄연히 다르다. 인간에게 좋은 삶은 성장의 고통을 수반한다”며 AI는 작은 피로나 고단함조차 허락하지 않지만, 결핍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의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AI 윤리는 기술적 규제에 치중돼 있지만, 이제는 AI와의 공존이 우리를 편안함에 가두는지 아니며 다른 사람을 향해 더 열 수 있도록 만드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과 AI의 관계가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AI가 쏟아내는 말은 진리가 아니라 확률 계산에 기반한 억견(臆見)”이라며 “진실성이 결여된 무책임한 존재와의 상호작용이 일상화되면 인간은 스스로 성찰하고 책임지는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용자의 만족을 위해 아첨하는 AI에 길들여지면 타인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견디는 근육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AI가 인간의 생각 노동을 대신할수록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판단할 기회를 잃게 되고, 결국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실천적 지혜를 기르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억견: 어떤 근거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상상하는 소견(네이버 사전)
결국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학생들을 ‘불편함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사람마다 편안함을 느끼는 컴포트존이 있는데, AI에 길들여질수록 그 영역은 오히려 좁아진다. 교육은 학생들이 이질성과 불편함을 포용할 수 있도록 경계를 넓혀가는 훈련의 장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초등학교 교실이 지향해야 할 에듀벨류는 ‘사랑이라는 지혜의 기술’”이라며 “자신의 편의를 내려놓고 기꺼이 타인을 위한 불편함을 감당하려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사랑의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이 인간의 고귀한 본성을 잠식하기 전에 아이들을 무조건적인 편리함으로 이끌 것이 아니라, 기꺼이 불편함 속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이한진 청주교대 교수는 ‘인공지능과의 지속가능한 동행 교육을 묻다’를 주제로 발표했다.(사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클릭 시 이동) |
교실 속 AI 윤리, 신호등으로 길을 찾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이미 AI와의 공존이 시작됐고, 교육 현장의 발걸음도 아주 빨라지고 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정정숙 청주 솔강초등학교 교사는 ‘디지털 시민을 위한 교실 속 실천 중심 AI 윤리 교육’을 주제로 발표하며, 지난해까지 5년간 재직했던 학교에서 추진한 교육 사례를 공유했다. 정 교사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현장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며 “디지털 전환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역량, 자신의 삶과 학습을 이끌어가는 주도성에 초점을 맞췄다. 학습자 주도성을 갖춘 아이들이 성숙한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천 중심 AI 윤리 교육이 학교 현장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 교사는 “학교 특색 교육과정으로 사람 중심의 미래사회를 선도하는 SW·AI 교육을 발굴해 6년째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전문적 학습공동체도 꾸준히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설이 부족해 교육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환경 개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2021년 온라인 콘텐츠 활용 교과서 선도학교를 시작으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미래형 융합교육 선도학교, 도 자체 지정 디지털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되면서 교육 시설과 환경을 고도화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디지털 소양 함양에, 방과 후 활동에서는 관련 지식과 기능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두는 전략을 취했다. 정 교사는 “교과로 ‘디지털로 잇는 우리 사회’를 학교자율시간 활동으로 진행했다.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AI·SW교육을 15시간씩 운영하고, 융합과학교육주간과 미래교육주간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실제 딥페이크 사례가 발생하면서 학생들이 단순한 방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 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됐다”며 “AI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스톱모션 영상을 만드는 등 다소 투박하더라도 직접 경험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AI 윤리를 구체적인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특히 교실에서 AI를 어떤 기준으로 활용할 것인지 학생들과 함께 정한 과정이 눈길을 끌었다. 정 교사는 “AI를 이용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먼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AI 실천 윤리 신호등’을 함께 만들어 교실마다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빨간불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하는 활동, 노란불은 AI를 수행 비서로 활용할 수 있는 활동, 초록불은 AI가 창작 파트너가 되는 활동을 의미한다”며 “학생들이 신호등 색깔을 보고 AI 활용 가능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팩트체크 습관을 기르고, 출처 표기를 통한 디지털 정직성을 내면화하면서 학생들의 디지털 소양도 함께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 ▶ 정정숙 솔강초등학교 교사는 ‘디지털 시민을 위한 교실 속 실천 중심 AI 윤리 교육’을 주제로 발표했다.(사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클릭 시 이동) |
AI의 한계를 넘어, 더 적극적인 관계를 고민할 때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AI와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과 학교 현장의 실천 방안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박은주 청주교대 교수는 “AI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면, AI가 지닌 가능성에 주목하되 한계는 예방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거짓 정보를 생성해 인간의 실천적 지혜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을 배제하기보다는, 학생의 사유 능력을 키우고 비판적 문해력을 형성하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국 충북교육청 장학사는 학교 현장의 AI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을 소개했다. 그는 “충북교육청은 AI 리터러시 인정도서를 개발하고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고 있다. AI를 교육에 도입하고 학생들의 활용 과정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교원의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관련 연수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충북형 AI 윤리를 제정해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읽고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서예진 청주교대 예비교사는 교사가 먼저 불편함과 시행착오를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사가 인지적 마찰이 발생하는 상황에 끊임없이 뛰어들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포기하지 않는 실천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학생들에게 가장 강력한 교육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AI가 제공하는 완벽하고 즉각적인 답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교사가 고군분투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을 인간다움이 아니라 단순한 비효율로 오해할 수 있다”며 AI 시대에 교사가 마주할 새로운 과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