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ughan Williams is arguably the greatest composer Britain has seen since the days of Henry Purcell. In a long and extensive career, he composed music notable for its power, nobility and expressiveness, representing, perhaps, the essence of 'Englishness'.
본 윌리암스는 헨리 퍼셀의 시대 이래로 이어진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곡가 일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그리고 장대한 경력에서 그가 작곡한 음악은 그 힘과 귀족적인 느낌, 그리고 가장 표현적이며 상징적인 것들로 주목할 만 하며 아마 가장 영국다움의 진수가 될 것이다. (이상 지나친 형용사의 표현으로 신빙성 없음)
Vaughan Williams was born in 1872 in the Cotswold village of Down Ampney. He was educated at Charterhouse School, then Trinity College, Cambridge. Later he was a pupil of Stanford and Parry at the Royal College of Music after which he studied with Max Bruch in Berlin and Maurice Ravel in Paris.
본 윌리암스는 1872년 Cotswold village of Down Ampney에서 태어났다. 그는 Charterhouse School, Trinity College, 그리고 Cambridge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후에 pupil of Stanford 그리고 Parry at the Royal College of Music에서 공부하였고 이후에 Max Bruch와 Berlin에서 그리고 Maurice Ravel과 Paris에서 공부하였다.
At the turn of the century he was among the very first to travel into the countryside to collect folk-songs and carols from singers, notating them for future generations to enjoy. As musical editor of The English Hymnal he composed several hymns that are now world-wide favourites (For all the Saints, Come down O love Divine). Later he also helped to edit The Oxford Book of Carols, with similar success.
세기가 넘어가면서 아주 순수하게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것은 그 지방의 가수들에게 민속노래와 carol들을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것을 후세에도 즐기기 위해 수집과 동시에 기록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현재 전세계에 걸쳐 가장 (유명한)찬송가를 작곡하기도 했다.(For all the Saints, Come down O love Divine 이런것들..) 후에 ‘The Oxford Book of Carols’을 편집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Vaughan Williams volunteered to serve in the Field Ambulance Service in Flanders for the 1914?1918 war, during which he was deeply affected by the carnage and the loss of close friends such as the composer George Butterworth.
본윌리엄스는 Flanders(벨기에 그리고 남부 네덜란드 북 프랑스에 걸친 중세의 나라)에서 Field Ambulance Service(구급후송대)로 1914~1918의 1차대전 동안 자원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는 대 학살과 절친한 친구인 작곡가 George Butterworth를 잃으면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Before the war he had met and then sustained a long and deep friendship with the composer Gustav Holst. For many years Vaughan Williams conducted and led the Leith Hill Music Festival, conducting Bach’s St Matthew Passion on a regular basis. He also became professor of composition at the Royal College of Music in London.
전쟁 전에 그는 작곡가인 Gustav Holst와 길고 깊은 우정을 가져 왔었다. 오랜 시간 동안 본 윌리엄스는 Leith Hill Music Festival(영국의 Dorking지역에서 열리는 100년 이상의 전통의 음악행사)에서 지휘하고 그것을 이끌었으며 일반적인 기본에 충실한 바하의 마태 수난곡을 지휘 했었다.
In his lifetime, Vaughan Williams eschewed all honours with the exception of the Order of Merit which was conferred upon him in 1938. He died in August 1958, his ashes are interred in Westminster Abbey, near Purcell.
그의 일생에 그는 1938년 그에게 수여 된 ‘Order of Merit’을 빼고는 모든 명예들을 삼가였다. 그리고 그는 1958년 사망했으며 그의 유골은 Westminster 수도원에 퍼셀의 가까운 곳에 묻혀져 있다.
In a long and productive life, music flowed from his creative pen in profusion. Hardly a musical genre was untouched or failed to be enriched by his work, which included nine symphonies, five operas, film music, ballet and stage music, several song cycles, church music and works for chorus and orchestra.
길고 생산적인 그의 인생에 음악은 그의 넉넉함 속의 창조적 펜으로부터 물 흐르듯 흘러 나왔다. 그의 음악의 성향들은 그의 일들에 있어서 거의 제한 없이 만들어 졌는데 그것은 9개의 교향곡, 5개의 오페라, 영화음악 발레, 무대음악,song cycles(연가곡), 교회음악 그리고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
http://www.rvwsociety.com/본 윌리엄스의 영국 홈페이지 발췌
이후로는 또다른 참고문인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중복 되지 않는 선에서 해석 하였습니다.
VaughanWilliams, Ralph
(b Down Ampney, Glos., 1872; d London, 1958). Eng. composer, conductor, and organist. Studied at Cambridge Univ. 1892-5 and RCM 1890-2, 1895, teachers incl. Parry, Charles Wood, Alan Gray, and Stanford; later in Ger. with Bruch and in Paris 1908 with Ravel. Org., St Barnabas, S. Lambeth, 1897. Began collecting Eng. folk-songs 1902. Mus. ed., English Hymnal, 1906. Cond. Leith Hill (Dorking) Fest., 1905-53. Prof. of comp. RCM 1919-39. Cond., Bach Choir, London, 1920-7. OM 1935.
One of leaders, with Holst and others, of 20th-cent. revival of Eng. mus. in wake of Elgar.
그는 Holst와 그 외 사람들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음악의 부활 혹은 재생자이다.
Early works mainly songs, such as the famous Linden Lea and Silent Noon, and chamber mus.
Deeply influenced by revival of interest in Eng. 16th-cent. composers and by his own folk-song collecting.
그에 의해 수집된 전통 노래 모음집은 16세기의 작곡가와 영국음악에 흥미성을 부활 재생 시키는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
Studied for 3 months with Ravel when 36 and thereafter produced series of major works, incl. Fantasia on a Theme by Thomas Tallis for str., On Wenlock Edge, song-cycle on Housman's ‘Shropshire Lad’ poems, and A London Symphony (1913). Served in 1914-18 war although over military age and after war was active in every phase of Eng. mus. life as cond. of amateur choral fests., teacher, writer, and of course composer. Lived at Dorking, Surrey, 1929-53, then returned to London. Gave constant encouragement to young musicians; had strong prejudices, about which he wrote entertainingly in various essays.
VaughanWilliams's mus. is strongly individual, with the modal harmonies characteristic of folk-song composers, yet owing something to Fr. influence of Ravel and Debussy.
본 윌리엄스의 음악은 매우 독창적(개인적)인데 전통노래 작곡가들의 특성인 화음적 음계(선법)을 가졌으며 그것은 Ravel과 Debussy의 프랑스적인 어떤 영향이다.
He wrote works in almost every genre, from operas and syms. to choral works for amateurs as well as for highly professional choirs, concs.
그는 수준 높은 전문 합창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들을 위해서도 합창곡을 만들었고, for neglected instrs. such as harmonica and tuba, a suite for pipes, etc. He believed that a composer should ‘make his art an expression of the whole life of the community’, but he was paradoxically a very personal composer rather than a state laureate. His operas have not so far held the stage, except for Riders to the Sea, but all are spasmodically revived, for they contain fine mus. His 9 syms. range from the choral Sea Symphony (Whitman text) and the picturesque London to the programmatic Antartica and the sternly ‘absolute’ Nos. 4, 5, 6, and 9. A wide range of orch. colour is deployed in these works and in his large-scale choral works such as Sancta Civitas.
http://www.classicalarchives.com/bios/codm/vaughan.html에서 발췌한 원문의 해석
*곡의 해석
The Vagabond
방랑자
Give to me the life I love, Let the lave go by me,
내가 사랑하는 삶을 주시오, 바로 나에 의해 흘러가게 하시오
Give the jolly heaven above And the byway nigh me,
진짜 기쁜 하늘 위 천국과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을 내 옆에 주시오
Bed in the bush with stars to see, Bread I dip in the river
별들을 볼 수 있는 덤불 속 침대, 강물에 씻어먹는 빵들
There's the life for a man like me, There's the life for ever.
거기에 나 같은 놈을 위한 삶, 거기에 영원한 삶이 있소
Let the blow fall soon or late, Let what will be o'er me;
지금 혹은 후에 바람은 그저 날리게 하오, 그저 내 너머에 있게 하오.
Give the face of earth around And the road before me.
(그 바람이 불어) 이 대지의 형상을 보여 내 앞길을 보여주소서.
Wealth I seek not, hope nor love, Nor a friend to know me;
부요와 재산 따윈 찾지 않아. 사랑도 소용없지. 또 날 아는 친구들도 원치않아.
All I seek, the heaven above And the road below me.
내가 추구하는 것은 저 위의 하나님과 그 아래의 나만의 길이니까.
Or let autumn fall on me Where afield I linger,
아니면..내가 자주 어슬렁거리며 떠나지 못하는 광야에 가을이 오게 해주오
Silincing the bird on tree, Biting the blue finger.
나무의 새들의 고요함 그리고 파란 손가락을 물어 뜯는 것
white as meal the frosty field, Warm the fireside haven
서리 내린 들에 새하얗게 덮힌 내 식량들, 난로가 피난처의 따뜻함들
Not to autumn will I yield, Not to winter even!
가을에게 이런 것들을 양보할 순 없어, 그것은 겨울도 마찬가지고!
*개인적인 곡의 해석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김삿갓’이 생각났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그 인생을 하나의 긴 여행으로 생각한다면 우린 모두 한명의 나그네이며 방랑자가 된다.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방랑자요 나그네.
사람들은 아니라 할 찌라도 그 나그네는 삶의 목적과 기쁨이 뚜렷하다. 별이 보인다 하여 덤불 속 침대를 기뻐하고 강이 흐른다 하여 물에 씻어먹는 빵도 사랑한단다. 그것이 영원하기까지도 바란단다.
그는 하늘을 바란다. 나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자연에서 온 사람이니 heaven(하나님)께 이 땅을 보여주실 것과 인도해 줄 것을 당부한다. 자연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땅에 태어난 나는 재산도 사랑도 친구도 원치 않는다. 오직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와 같은, 하늘의 하나님과 그 아래 나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는 방랑자의 모습을 표현하는 듯 하다.(그것은 첫 연부터 'Give' 라고 외치는 대상이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 신앙인으로의 나의 모습을 대입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연 안의 미물 뿐 인 것이다.
노래는 매우 당당하다. 나 자신의 소신과 아집으로 살아가는 Vagabond로써의 면모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거칠어야 한다.
하지만 하늘에 구하는 기도자인 만큼 겸손해야 하며 갈구해야 함이 있다. 기도문이 아니지만 교만한 자는 아니니까. 추운 겨울은 사랑하지 않는 따뜻함을 아는 사람 이니까.
추신
이 세상에 10월이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군요
만약 9월에서 곧장 11월로 넘어가 버린다면
얼마나 시시할까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 中에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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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01김래주 작성시간 06.10.08 01지훈아~~그치? 너도 역시 나랑 똑같은...생각을...그냥 부러울뿐이다... 형...예전엔 테너의 형의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데..이젠..정말...멋지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래도 형이랑 잘어울리구요~~!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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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문영 작성시간 06.10.08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음악도 독창적일 수 밖에 없네요 ^^좋은 성악가가 되는데 필요한 덕목중하나가 바로 문학성과 상상력입니다 기열이는 이위에 날카로운 분석적인면도 갖추었으니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 진짜 기대가됩니다 학생으로서뿐만 아니라 후배로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 보겠어요 "이상 지나친 형용사의 표현으로 신빙성 없음"이 위 조사내용 중 가장 맘에 드는 대목입니다 이번기회에 빨강머리앤 한권 밖 안읽은 분들 나머지 다 읽으세요 heaven above 는 천상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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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03배소희 작성시간 06.10.09 단어에 따라 Legato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한것 같아요^^ 귀에 익은 노래인데 곡을 너무 잘 살려서 부르시네요^^ 수고 많으셨어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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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03김지선 작성시간 06.10.10 오빠 조사 장난아니네요,,정말 전 암것도 아니네요,,,노래도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셨음 이렇게 부르세요,,대단혀요,,말그대로 오빠의 나그네와 인생에 대한 철학이 묻어나게 맛깔나게 부르셨네요~오빠의 기름지고 깊이 있는 목소리와 섬세한 감정이 살아있게 들려요. 하지만 한가지 조금 아쉬운게 있다면 인생에서, 나그네길에서 일관된 소신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면만이 보여지는 것 같아요.그런면이 있다면 반대로 삶을 살면서 여기저기에서 여러 경험과 고통을 통해 단련되고 일종의 모난 돌에서 둥근돌로 변하는 모습..그런 인생의 면, 그런 나그네의 변화적인 삶, 버라이어티한 다이나믹한 부분도 표현되면 완벽할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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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03오혜민 작성시간 06.10.15 굉장히 진취적 분위기의 곡이네요^-^ 중요한 단어표현도 잘되고 조사한 것만큼 곡해석도 잘하신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