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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평 들판에서 유래된 삼선동

작성자박경룡|작성시간10.12.29|조회수501 목록 댓글 0

 

 

삼선평 들판에서 유래된 삼선동

 

성북천 남서쪽의 서울 성곽을 끼고 있는 삼선동은 조선시대에 혜화문 밖의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三仙坪)이라고 칭했기 때문에 연유된 이름이다. 삼선평은 이 동 남쪽의 옥녀봉에서 옥녀(玉女)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과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삼선평은 평평하고 넓어서 대한제국시대까지 을지로 6가의 훈련원, 살곶이들[箭串坪]과 같이 열무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삼선동은 조선시대 초부터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에 속해 있었으나 마을 명칭은 나타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조선말 갑오개혁(1894) 때 기록에 보면 한성부 동서 숭신방(성외) 동문외계 삼선평이라 하였다.그 뒤 경술국치로 일제가 191141일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삼선평이라 하고, 191441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로 하였다.

193641일 일제가 경성부 구역을 확장할 때 경성부에 다시 편입되어 돈암정(敦岩町)이란 일본식 동명을 붙였다. 1943610일에 서울에 구제(區制)를 실시함으로써 이 동은 동대문구에 속하였다.

광복 후 서울의 동, 가는 우리 고유의 명칭으로 고쳐지게 되었으므로 1946101일 돈암정은 돈암동으로 개칭되었고,1949815일 성북구가 신설되기 이전인 같은해 513일에 삼선동 1,2,3가로 되었으며, 그 후 5개동으로 분할되어 삼선동 1,2,3,4,5가로 되었다.

 

이 동의 서쪽과 남쪽의 경계를 이루는 서울 성곽은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곽은 총 연장 18,127m로서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잇고 있다. 이 성곽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천도한 지 2년 뒤인 태조 5(1396) 19일부터 228일까지 49일간 118,070명을 동원하여 축조하였다. 이 때 2/3 이상은 토성으로 쌓았으므로 그 해 여름에 장마로 무너지자 태조는 2차로 91일부터 49일간 79,400명을 동원해서 돌로 쌓고 8개의 문루를 건축했다.

그 후 20여년이 지나서 무너진 곳이 많게 되자 세종 4(1422) 115일부터 40일간 322,64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이 당시 872명이 사망했는데 부상자 수효는 알 수 없다.

세종 때 축성된 도성은 모두 석성으로 자연석이 아닌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쌓은 것이 특색이며 태조 때보다 1척씩 높게 쌓은 외에 성첩을 쌓아 군사들이 전투 때 이 성첩에 의지해 싸울 수 있도록 했다. 또 성 안팎에 15척의 도로를 내어 순찰에 편하도록 하였으므로 도성의 위용은 세종 때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도성의 관리를 위해 성문도감을 설치하고 우의정을 책임자로 8인의 실무진을 두어 10일마다 1번씩 도성 내외를 순찰하고 보고를 하게 했다.

임진왜란 후 숙종 30(1704) 325일부터 수축공사를 하다가 중지하고 이듬해 6월부터 시작하여 숙종 35(1709)에 완료했다. 숙종 때 수축된 도성의 특색은 상하 모두 약 2척의 방형이고,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이 없이 수직으로 쌓았는데 동대문,백악 동쪽,광희문 부근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삼선동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그 후에도 이 성곽은 영조 때와 고종 때도 보수공사를 했지만 일제에 의하여 광무 2(1898) 10월부터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5년에 경성시구역개수계획에 따라 많은 부분이 철거되었다. 이에 1975년부터 서울시에서 서울성곽 복원계획을 세워 총연장 18,127m 중에서 멸실된 6,703m 외에 복원 가능한 11,424m1979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했다.

이 동의 남쪽 옥녀봉 부근의 오뚝한 곳은 옛날 군인의 사형장으로 쓰였다고 구전되어 온다. 또 혜화문 밖에는 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혜화문 문루에 봉황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이 곳에 봉황정이란 정자가 지어졌다고 하며 정자 이름을 따서 봉황동이란 마을 이름도 있었다.

삼선교는 삼선평의 이름을 따서 성북천에 놓인 다리이름으로 동소문동과 성북동, 삼선동의 경계가 되는 동소문로에 놓여진 다리와 그 남쪽에 인도교가 각각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는데 한 때 성북천 일부가 복개되어 삼선시장과 상가아파트가 들어섰으나 최근에 복원되어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삼선동 1가의 문화재로는 한성여고 옆의 삼선공원(삼선동 512-160) 내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삼군부 총무당(統武堂)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조선말 고종 3년 대원군이 군무(軍務)를 통할하는 관아로서 비변사 대신 훈련도감의 신영,남영,마병소를 설치하여 삼군부라고 했다. 이 건물은 2년 뒤인 고종 5(1868)부터 현재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삼군부가 사용하던 것을 고종 19(1882)에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과 통리군국사무아문의 청사로 쓰이다가 갑오개혁 후 시위대(侍衛隊)청사가 되었다.

경술국치 후 일제는 삼군부 건물을 조선보병사령부로 사용하다가 1930년대에 3개 건물 중 총무당 만을 이곳으로 옮기고 경기도 공무원연성장으로 사용했다. 6.25전쟁 후에는 고아원과 서울시 직업훈련원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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