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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잔다리로 불렸던 마포구 동교동 (1)

작성자박경룡|작성시간26.06.07|조회수20 목록 댓글 0

윗잔다리로 불렸던 마포구 동교동(1)

동교동 지도

 

동교동의 동명은 동쪽 잔다리 곧 윗잔다리를 줄여서 부른 데에서 비롯된다.

동교동의 동명유래가 된 윗잔다리는 망원동 길과 동교동 길 사이의 복개도로 오른쪽에 있는 잔다리에서 비롯되었는데 이곳의 윗잔다리도 동세교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전일의 용산선 철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120여 가구가 윗잔다리였다. 와우산 기슭에서 이어져 내려오므로 동교동의 지형이 높아서 그 서쪽은 아랫잔다리, 동쪽은 윗잔다리로 불렸다.

 

동교동은 궁동이라 하여 연희궁과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서교동 지역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양화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것은 서교동과 같다.

 

동교동은 1957년에 서교 택지 조성사업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 이전에 형성된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었다. 개발 이후부터 중산층이 살고 있어서 마포구의 어느 지역보다도 비교적 주민 이동은 적은 편에 속하였다.

 

신촌전화국 근방에는 ‘강성생’ 혹은 ‘강성샘’이라는 웅덩이가 있었다. 둘레 20평 정도의 수렁인데 사람이 빠지면 나올 수가 없는 갯펄처럼 된 곳으로 한강과 통했다는 설이 있다. 이는 지금 신촌전화국 뒷편의 복개도로의 하천이 한강까지 유입되고, 그 하천의 물이 이 수렁과도 통했기 때문이라 한다.

 

옛 사람들은 아기의 태를 이곳에 버려야만 무병장수 할 수 있다 하여 도성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곳까지 와서 태를 버렸다. 그러자 이 태가 썩는 악취가 대단해서 일제 때는 태를 버릴 경우 벌금 등 처벌을 한다는 팻말을 붙여 놓기도 하였다.(*)

 

동교동 김대중 전대통령 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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