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쓴 시 외 2편
김유자
느닷없는 원고청탁, 시 한 편 건지려고
눈 비비며 밤새워 흰 종이 마주하니
달빛도 살짝 내려와 내 마음 비춰주네
문밖엔 귀뚜라미 구슬피 우는 밤에
책상 위 잉크 빛은 별빛처럼 번지고
잠겼던 생각들조차 새벽 물결에 젖는데
감긴 눈 맑아지며 새 아침 밝아오고
감출 수 없는 기쁨, 일출 속에 스며들어
한밤의 흔적까지도 햇살에 녹아드네
버킷리스트
봄이면 여기저기 연둣빛 피어나고
가만히 속삭이는 말이 내게 걸어오네
잊고 산 작은 꿈들이 다시 불을 켜라고
책 한 장 마음 밭에 천천히 쌓아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룰루랄라 학교 가면
내 가는 골목길마다 새길이 돋아나리
오늘도 작은 목록에 별 하나 찍어두니
언젠가 한 권 시집도 저절로 완성되리
조용히 모인 하루가 또 다른 길을 낸다.
눈 꽃송이 소식
전신거울 앞에서 서 있는 나를 보다가
나 아닌 친정엄마 거울 속에 서 있네
어느새 청춘은 가고 서릿발 성성하다
감추면 감출수록 흰머리 올라오고
그 많던 머리칼은 어디로, 사라졌나
때 되어 염색 안 하면 고속도로 휑하네
푸르던 내 청춘도 갈바람에 물들어
단풍잎 한입 두입 떨어져 쌓여 가고
조용히 찾아온 첫눈 소녀인 듯 설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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