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 외 2편
김구해인
오직 달항아리와 나뿐인 세상에
무늬도 언어도 색깔도 없어라
존재를 무장해제할
이 고요
이 맑음
이것에 이끌리며 그동안 치러온
내밀한 전쟁들 피 흘리고 쓰러지다
잘 벼린 칼날 붙잡고
일어서던
싯푸른 날들
평생 머리에 삿갓 쓰고 감출 것은
삼손의 머리카락 아름다운 신의 목소리
흰 벽에 둥실 떠오른
달항아리
그리고 나
월정사 그리고 돌의 기도
돌들은 무의미한 채 한없이 무한하고
평소 탐구할 가치도 없는 세속의 말
오래 전 어느 짐승의 폭력으로 굳어졌나
향기도 색도 잃고 바스라진 환상들
어디에나 있었기에 모두에게 외면 당해온
스스로 불타오르다 소진된 트라우마
바라보니 하나같이 눈 코 입 윤곽이 없고
땅에 박힌 돌울음 저항 의지 투철하니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운명의 돌 찾아본다
물소리는 점점 나를 황망하게 무너뜨리고
나타난 작은 돌 우리는 이미 하나
누구를 누가 얼마나 기다렸나 묻지 않으리
천관사 편백나무 숲을 바라보며
가장 깊은
비밀을 품고 서 있다
미래의 부처로 태어날 씨앗들
시작도 종말도 없이
손에 손 잡은
시간들
누가 누구를
무엇이 무엇을
이름 부르자 문득 홀로 밤이어서
대낮은 장갑을 끼고
짙푸른 그늘
닦고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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