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공공성 위기와 그 대안
예장(통합)대전환 신학위원 칼럼 [5]
정원범(전 대전신학대학교 교수)입력 2026.06.10
Ⅰ.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
한국사회의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의 수위가 정말 심각하다. 2026년 2월 기윤실이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로 국민 5명 중 4명이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별 신뢰도 순위를 보면, 가톨릭이 25.3%, 불교가 24.4%, 개신교가 13.6%로 개신교가 꼴찌였다.
한국교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들은 교회가 공공의 이익보다 교회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를 지적했다.(24%)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의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공공성을 상실한 데 있다는 것이다.
Ⅱ. 공공성 상실의 원인
마이클 샌델에 따르면 공공성이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공동선을 위해 함께 책임을 지는 태도와 장(場)”을 의미한다. 한국교회가 공공성을 상실했다는 말은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삶이 공동선이나 공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공공성 상실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 복음의 사사화 때문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계몽주의 이후 사회가 과학은 공적 영역, 종교는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교회가 복음을 개인의 내면이나 마음의 평안 위주로만 소비하는 ‘사사화’ 현상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복음이 지나치게 ‘죽어서 천국 가는 것’과 ‘개인의 영혼 구원’으로만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잃고 공공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원론적 사고 때문이다. 이원론적 사고란 실재를 둘로 나누어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 영과 육, 교회와 세상,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즉,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며,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악하며, 구원은 영혼만의 문제이고, 신앙은 사적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고를 말한다. 한국교회가 공공성을 상실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원론적 사고 때문이다.
셋째로, 개교회 중심주의와 교회성장주의 때문이다. 개교회 중심주의란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 생존과 자기 확장에 몰두하는 사고방식(레슬리 뉴비긴), 또는 교회가 자신을 하나님 나라 전체와 분리된 독립적 실체로 이해하는 태도(미로슬라브 볼프)를 말하며, 교회성장주의란 교회의 본질과 사명보다 양적 성장(출석 인원, 헌금, 건물, 조직 규모)을 우선시하며, 이를 교회 성공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런 생각은 관심의 대상을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 아니라 자기 교회의 성장에만 몰두하게 함으로써 교회의 공공성 상실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넷째로, 제자도 없는 신앙의 문제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은 많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 즉 정의를 추구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제자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제자도의 상실은 교회를 사적 종교 공동체로 축소시키고, 그 결과 사회를 향한 책임과 공적 증언을 약화시킴으로써 교회의 공공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다섯째로, 선교관의 왜곡 때문이다. 데이빗 보쉬는 교회의 왜곡된 선교관, 즉 교인수 증가와 교세 확장을 선교의 목적으로 보는 선교관, 선교를 전도 활동으로만 축소하는 선교관, 교회를 선교의 주인으로 생각하는 선교관을 비판하며, 이러한 선교관의 왜곡은 하나님의 선교를 교회의 성장 사업으로 축소하는 것이며 결국 교회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여섯째로, 하나님 나라 비전의 상실 때문이다.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고, 기독교의 목적은 영혼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가치: 자유, 공평, 사랑, 생명, 정의, 샬롬, 섬김 등)를 이 땅에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상실함으로써 신앙을 개인 구원 중심의 신앙으로 축소시키고, 교회를 자기 중심적 조직으로 축소시킴으로써 결국 공공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Ⅲ. 공공성 회복을 위한 대안
교회의 잃어버린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올바른 하나님 이해를 정립해야 한다. (1) 성경의 하나님은 교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을 교회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속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이해해야 하고, 하나님을 우리 교회를 위한 분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해야 한다.
(2) 성경의 하나님은 고독한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로 존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고독하게 자족하는 하나님, 인간의 지배와 독재를 정당화시켜주는 독재자 하나님이 아니라 상호존중, 나눔, 사랑, 교제 안에서 공동체로 존재하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교회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따라 경쟁, 배타성, 자기중심성이 아니라 세상의 약자들에게 환대, 섬김, 나눔을 실천하는 공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3) 성경의 예수님은 단지 개인의 영혼만을 구원하는 분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전체의 주권자이다. 예수님은 복음의 공적 진리와 공적 신앙을 선포하신 하나님이고, 예수님의 복음은 개인의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공적 복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이 개인 구원의 주시며 동시에 역사의 주, 세상의 주가 되시는 분이라는 공적 이해를 가지고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적 사명(인간존엄성의 회복, 정의와 화해의 실천, 평화구축, 사회적 약자보호, 지역사회 섬김, 창조세계 돌봄 등)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로,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본회퍼는 예수님을 타인을 위한 존재라고 말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교회 역시 타인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이다.”라는 것이다. 몰트만에 따르면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희망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를 잊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살아 있는 교회도 저절로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셋째로, 교회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크리소스토무스는 “기독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가장 정확한 정의, 최고점은 바로 공동선의 추구다. 왜냐하면 이웃을 돌보는 것만큼 한 사람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칼뱅도 신자들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고, 그들 자신의 이익만을 증진하기 위해 살지 말고, 기회가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로, 교회는 사회선교와 마을목회를 추구해야 한다. 사회선교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사회 안에 구현하는 선교이고, 마을목회란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목회이고,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 이렇게 사회선교와 마을목회는 교회의 관심을 교회 내부에서 지역사회로, 이웃과 세상으로 확장시켜줌으로써 공공성 회복의 중요한 대안이 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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