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달래꽃을 유독 좋아한다.
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33살 자살한 소월의 삶이 아련하다.
계속된 사업실패로 입에 풀칠 할 수 없는, 가난을 더 견디지 못하고 빈곤자살을 한 시인의 아픔이 오늘 더 아프게 느껴진다.
그의 단 한권의 시집 '진달래꽃'이 없었다면 기억을 지금처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달래꽃은 소월이 이백 권이 자가 출판되었고 마땅히 사는 사람도 없어 그냥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세살 연상의 ‘오순’이란 여인을 사랑했지만, 소월은 이미 할아버지에 의해 14살 때 정혼자가 있어 ‘오순’과 인연이 되지 못했다.
‘오순’은 결혼하고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다 22살 구타를 피하는 길은 자살이라고 생각하고 자살한다.
19살 소월은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소월은 스스로 언젠가는 그녀처럼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날 소월이 쓴 시 초혼이다. 시가 아닌 통곡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소월은 일본인에게 심한구타로 정신장애자가 되는 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가 점지한 홍단실과 결혼한다.
그러나 외로움 덩어리 소월은 삶마저 고통이었다. 취업은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그의 통풍과 관절염을 지켜주는 것은 마약이었고 애타게 애타게 돈을 그렇게 벌고 싶었지만 결국 돈은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고 33살 1934년 12월24일, 성탄이브에 빈곤자살로 삶을 마쳤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진달래색처럼 멍드는 것 같다.
봄 산에 찾아 온 진달래는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림이고 또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민초들의 삶 같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듯 시인의 아픔이 있어 더 진달래가 깊게 보인다.
소월이 평소 아내에게 한 말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는 유언 아닌 유언이 애잔하다.
(사진은 여주영릉 진달래동산에서. 박순희 안수영과의 출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