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외모보다 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으면서 그것도 모자라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그래서 한때는 성공한 연예인들이 학력을 속였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하기도 했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들의 가방끈이 가짜로 밝혀지자 공통적으로 변명하는 말이 학력을 속여 그 어떤 이득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재산상의 이득이야 보지 않았더라도 한때나마 대중들에게 기본적인 가방끈은 갖췄다고 보임으로해서 컴플렉스를
가리는 자기 위안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이 속인 것이 학력을 낮춘 게 아니라 학력을 높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서울대 나온 것이
부담스러워 지방대 나왔다고 학력을 속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사회는
학력도 높이고 코도 높이고 아파트에서 자동차까지 무조건 높이고 봐야 대접을 받는다. 내가 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진지하게 세 번이나 봤던 것도 그런 비주류의 삶이 너무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누가 말하길 학력은 그저
일부분에 불과할 뿐 인생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고졸이라는 학력으로는 그 벽을
뛰어 넘기가 벅찬 것은 사실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다섯 여자는 인천의 변두리에 있는 상고를 졸업하고 갓 스무살이 된 사회초년생들이다. 촌스런
본명을 버리고 예명으로 데뷰한 탈렌트 이름처럼 들리는 태희, 혜주, 지영,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같은 화교계
쌍둥이 비류와 온조, 이렇게 다섯 친구는 꿈 같은 여고시절을 보내고 사회로 나왔으나 이 사회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
이제 학창 시절처럼 몰려다니며 한가롭게 놀 수도 없고 각자의 삶을 찾아 사회로 나가 자신만의 인생을 가꿔나가야
하는데 세상일이 순탄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대로 잘 사는 친구는 그 나름대로 걸림돌이 많고 할머니와 단칸방에서 사는 친구는 말할 것도 없이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어서 비주류로 살 수밖에 없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악조건을 우울하게만 그리지는 않는다. 한창 외모를 가꾸고 남자 친구나 섹스에 관심이 많을 풋풋한 나이에는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것, 그들이라고 한방 인생을 꿈꾸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다섯 친구 중에서 그런대로 가난은 벗어난 집이랄 수 있는 태희(배두나)는 식구들의 무관심으로 있어도 그만 없었도
그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봉사활동에서 알게 된 뇌성마비 시인을 좋아한다. 그중 가장 외모가 낫다고 보는
혜주(이요원)는 증권회사에 취업을 했지만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겠다는 당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서류를
복사하거나 상사들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처지다. 어느날 직장 상사가 언제까지 이렇게 저부가 가치의 일만 할 거냐는
충고를 하자 학벌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고졸의 한계를 실감하며 절망한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지영(옥지영)은 유학을 꿈꾸지만 늙은 할머니 수발 때문에 그저 먼 나라 얘기다. 어느날 지영이
길 잃은 새끼 고양이를 만나면서 그녀들의 삶은 더욱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티티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고양이는 생일 선물로 친구들의 손을 하나씩 거쳐가면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각자의 삶을 통과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왜 영화 제목이 고양이를 부탁해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장면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표준형 가족관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이 주류에서 밀려난 소외되고 고단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적이다. 영화의 첫 장면이 뱃고동 소리 울리던 허름한 항구에서 여고 시절을 보내는 장면이었으나
영화의 마지막은 인천국제공항 여객 청사다. 마치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어딘가 떠날 곳이 결정된 것처럼 태희와 지영의
밝은 표정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비행기 날개 만큼이나 힘차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희망을 찾는 그녀들을 관객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의 가난한 동네에서 여상을 갓 졸업한 스무 살의 다섯 친구가 교복을 벗고 세상과 처음
마주치면서 겪게 되는 그들만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 평단의 호평을 받은 수작이었으나 흥행에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나중 이 영화가 묻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문화인들의 노력으로 재개봉을 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는데
그냥 묻히기에는 무척 아까운 영화임에 틀림없는 작품이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우리 영화사에 꼭 짚고 넘어갈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