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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술이야기

소림무술 그역사와유래

작성자김수로왕|작성시간08.10.14|조회수439 목록 댓글 0

중국무술을 말하려면 하남성 등봉현 숭산(崇山)소림사의 소림무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고 소림무술을 말하려면 중국불교 선종(禪宗)의 개조인 달마대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소림사가 창건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전인 북위(北魏) 태화20년 (서기 496년)이다. 인도에서 고승들이 중국에 불법을 전파하러온 것을 환영한 북위의 효문제가 가르침에 대한 답례로 풍광이 빼어난 소림사 터를 제공해 절을 세운 것이다. 그 뒤 서기 527년에 인도에서 불교선종 28대 종정인 보리달마가 이곳에 와서 면벽 9년의 고행 끝에 득도하자 그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승려들이 많아져 중국 최대의 명찰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선종은 움직이지 않고 면벽참선을 하며 마음을 닦는다. 이 수련법 때문에 수행자들이 운동부족으로 몸이 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달마선사가 제자들을 위한 건강증진, 정신수양과 담력-체력증강 훈련법으로 소림권법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산중무술인 소림권법은 깊은 산속에서 종족을 보존하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곰 호랑이 뱀 독수리 원숭이등 야생동물들의 몸동작의 원리를 응용한 신묘한 무예로 유명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면벽 좌선행보다 심신을 단련하는 역근행(易筋行)에 더 매력을 느끼고 심취해서 이를 더 열심히 수련한 무술승려들이 후세의 소림무술의 기초를 닦았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나 무협소설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소림무술의 설화 중 역사적 기록으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당태종이 즉위 전 적에게 포위돼 위험에 처했을 때 소림사 무술승 13명이 홀연히 나타나 번개 같은 타격력, 기계(병기)술과 장풍 등 괴력으로 수백명을 물리쳤다는 얘기다. (장풍(掌風)은 과연 있었을까? 나도 전에는 믿지 않았지만 중국무술의 수련을 거듭하고 무술경(硬)기공 같은 것을 참관할수록 그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인간이 더욱 자연친화적이고 산중무술의 깊은 경지에 이르렀었다면 전신의 기혈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집중-폭발력도 더 가공할 경지에 갈수 있었을 테니까.)

  어쨌든 이후 명(明)- 청(淸)시대를 거치면서 소림무술은 이른바 ‘반청복명’, 즉 명나라 지지자들의 나라를 되찾기 위한 싸움과 조직을 통해 민간에게도 널리 전승되면서 중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된다. 그러나 1898년 이후 의화단사건의 주동세력이 소림권법을 쓰는 무술인들이란 이유로 청국군을 격파한 서구열강과 일본군들은 소림무술을 철저히 탄압했고 소림사는 수십년이나 인적이 끊긴 폐찰이 되었다.

  소림무술은 물론, 전란과 문화혁명으로 인해 다른 전통문화와 마찬가지로 명맥이 끊기다시피한 중국무술을 복원한 것은 중국정부였다. 1985년 등소평 조자양 호요방 같은 당시 최고 실권자들이 폐허가 된 소림사를 방문하고 소림무술 재건과 권법의 복원에 열의를 보인 것이다. 전국으로 흩어진 고수들 중에서 소림무술 고승 소희(素喜)스님 등 80여명이 다시 모여들어 권보(拳譜)의 복원과 정리에 힘쓴 결과 중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인 소림무술이 멸실(滅失)의 위기에서 부활하게 된 것은 크게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홍콩 영화사들의 다소 황당한 중국무술 소재 오락영화들이나 무술인을 소재로 한 역사물들도 중국무술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증폭시키는데 일조했다. 복원된 소림무술을 비롯, 중국 전역의 다른 수많은 전통권도 지역마다 있는 무술학교를 통해 후진양성과 지도자 기량향상을 통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교장이나 우슈 지도자들이 30-40대 젊은 무술인인 것도 복원된 중국무술의 현실을 말해준다. 아무튼 인구 15억의 대국인 중국의 지역 현단위에서부터 성(省)단위를 거쳐 북경까지 전국대회에 토너멘트로 올라가 종목별 무영(武英_무술영웅)급 선수, 즉 챔피언이 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나 같다. 그래도 무술학교에 진학하는 어린이들은 이소룡 이연걸 같은 무술 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지금도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혹독한 수련과 학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이 중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992년이지만 한국에 중국무술이 들어온 것은 6.25전쟁 직후로 50년쯤 된다. 쿵푸(功夫 ) 십팔기(十八技) 국술(國術)등의 명칭으로 주로 화교학교 교사나 대만출신 화교들을 통해 손에서 손으로 전수되었다고 들었다. 중국이 공산화될 무렵 산동성 등 한국과 가까운 지역 무술인이 대거 이주해 온 것이 전국 곳곳에 산발적으로 중국무술을 보급시켰고, 일부는 산중무술로 한국의 고유무술이 되는 융합, 정착과정을 겪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많은 역사적 사건과 전쟁을 통해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중국무술이 전래되었다. 조선시대 훈련도감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킨 것도 중국무술이었다니까 전통무술의 많은 용어와 동작, 명칭들이 중국무술과 같거나 공통점을 가진 건 당연한 일이다.

  중국 각지의 무술학교나 소림사입구의 수많은 무술학교 (최근에는 소림사에 의해 전부 통합 흡수돼 지난해에 내가 갔을 때에는 이곳저곳의 여러 무술학교 학생들 수천명이 모두 똑같은 깜장과 빨강색이 배색된 트레이닝복을 입고 강도 높은 수업을 받고 있었다.)들의 수업은 우리나라 예고나 체육고 처럼 학과수업과 무술 각 종목을 시간표에 따라 배운다. 대개는 기숙학교여서 그 훈련량과 강도는 대단하다. 한국의 쿵푸체육관은 선수양성기관이 따로 없고 대개 수련생도 흥미위주나 건강을 위해 학원처럼 한두시간씩 수련을 하므로 그 수준이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훈련 방식 등 기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기본 수련. 입관하면 기본 자세인 궁보(등산식) 소등산식 독립보 마보(기마식) 허보 헐보(좌반식)를 배운다. 정지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비틀거나 짜야 되니 일반인, 특히 고령자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다음엔 중국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기본 발차기(전척퇴 측척퇴 이합퇴 파련퇴 전퇴 전소퇴 후소퇴...)와 등공발차기 (선풍각 선자 측공번 창배 이어타정...)와 단수를 연마해야 권법을 배울수 있다. 어학으로 본다면 기본발차기와 손이 알파베트라면 손발을 여러방법으로 가격하는 연속동작의 단수(단식)는 단어나 구(句), ‘금강권’ ‘나한권’등 여러 가지 권법은 긴 문장이나 문단(패러그래프)로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용어부터가 한문명칭을 한국어로 읽는 것과 중국음이 혼합 또는 와전된 용어가 섞여있어 혼란스럽고 저마다 다르다. 국내에 수많은 중국무술책이 번역돼있지만 일본책을 다시 옮겼거나 부실한 내용의 것들이 많아서 아직은 자료를 통해 중국무술을 배우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동영상은 ‘아는 만큼’ 보이므로 초보자가 봐서는 따라할 수도 없을 뿐 더러 실제로 눈앞에서 하는 게 3차원이라면 동영상은 3차원을 가장한 평면화면(컴퓨터 모니터나 비디오화면)일 뿐이다. 정확한 수법과 쓰는 각도 등을 익히기 힘드니 독학한 무술과 일대일로 지도받은 무술이 확연히 다른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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