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이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신생활』 2호, 1923. 3)
[작품해설]
1920년 전반기 한국 서정시의 정상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논개」와는 달이 고요하고 잔잔한 시정(詩情)을 세련되고 섬세한 시어로써 유려하게 노래하고 있다.
각 연의 1·2행에서는 공통적으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를 반복하여 봄비의 부름과 그에 대한 시인의 정감을 한 문맥에 접목시키고 있으며, ‘노라!’ · ‘누나!’ 등의 영탄조의 어미 사용은 이 작품을 보다 더 낭만적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와 같은 반복구(反復句)는 시의 리듬을 교쿄하게 살리는 데 효과적인 표현법이 되고 있다.
각 연의 마지막 행은 봄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느낀 시적 자아의 마음을 ‘서운하고’ · ‘아프고’ ·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편향적 어조와 함께 시인의 감각적인 통찰로 빚어진 이 작품의 아름다운 정감과 선율은 그윽하고 부드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