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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不讀 生而不生

출판 소식: 『아모크,첫 키스, 재회』(스테판 츠바이크, 원당희 & 윤순식 역)

작성자정해수|작성시간26.02.13|조회수54 목록 댓글 0
『아모크, 첫 키스, 재회』(슈테판 츠바이크, 윤순식 · 원당희 역, 세창미디어, 2026)

얼마 전 작고한 동문 세창미디어 대표 이방원군이 생전 마지막으로 손수 퇴고(推敲)하고 편집까지 한 책이라 여겨지는『아모크, 첫 키스, 재회』(슈테판 츠바이크, 윤순식 · 원당희 역, 세창미디어, 2026)가 출간되었단다. 그러니까 그 동안 당희군이 세창미디어 출판사를 통해  많은 인문서를 출판해 왔지만, 방원군의 별세와 함께 이번 작품으로 본 출판사와는 결별이 될 수밖에 없을 터. 이래저래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 건 나이 들어가는 늙은이들의 속절없는 인지상정의 마음이랄까...

 

본서의 출판에 대해서는 며칠 전 역자인 당희군으로부터 들었지만 아직 책을 사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본서의 내용에 관하여선 출판사의 소갯글을 옮겨 보는 것으로 유추하고자 하느니...이하 본서의 출판에 즈음한 출판사 세창미디어의 소갯글을 적어 보려 하는데 워낙 츠바이크의 작품이 난해해서리 소갯글도 만만찮구만 그랴(나만 그런가?)

 

근디 알다가도 모를 일이 번역자인 동문 당희군이나 윤순식 교수는 꽤나 유명한 초빼이인 걸로 아는데, 언제 이렇게 상당히 난해한 소설들을 번역하여 출판까지 하게 되었냐는 것인데...게다가 당희군은 근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면서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무척 힘들어 하는 걸로 아는데 말이지. 헌데 지금까지 출판된『마법의 산』,『페터 카멘친트』,『황야의 늑대』등  당희군의 번역서들은 언제 읽어도 서정적이고 유려한 문체의 특징을 보여 주는 바, 이번 역서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라... 이하 세창미디어 출판사의 본서에 대한 소갯글을 옮겨 본다.

 

소설「아모크」는 내면이 기울어진 채 폭주하는 한 인물의 감정을 따라간다. 감정은 차츰 고조되는 음악처럼 조급한 속도와 과잉된 반응으로 서사 전체를 잠식하고, 독자 역시 자연히 그 리듬에 보조를 맞추게 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열대 식민지에서 의사로 일하던 그는 한 냉담한 귀족 여성의 부탁을 거절하고, 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 번의 어긋난 판단을 시작으로 잇따른 오판이 거듭되며 인물은 자신을 멈추지 못한 채 끝을 향해 밀려간다. 독자 역시 저항할 틈 없이 끌려가고 이야기는 점점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혼란한 착각에서 시작되어

끝내는 아릿한 감각으로 남는 첫사랑처럼

 

소설「첫 키스」에서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번의 강렬한 접촉이 소년의 감각을 한껏 부풀리고, 소년은 저 혼자 오해 속에서 사랑을 완성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착오와 자기기만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므로 거기에 순수한 설렘은 없었다.

황혼 무렵의 숲에서 소년은 정체 모를 누군가로부터 기습적인 포옹과 첫 키스를 당한다. 다음 날 그는 동일한 장소에서 어제와 같은 열기를 기다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시작된 감정은 이윽고 한 소녀를 향한 확신으로 굳어지지만 그것은 착오였다. 오해가 밝혀지는 순간 사랑은 끝이 나고, 달콤한 여운과 함께 쌉싸래한 뒷맛이 소년의 마음 깊은 곳에 감돈다.

 

“얼어붙고 눈이 내린 오래된 공원에서

두 그림자가 흘러간 과거의 흔적을 찾고 있네”(257면)

 

앞선 작품이 오해가 해소되며 금세 사그라지는 사랑을 그린다면, 「재회」는 시간과 현실에 짓눌렸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다룬다.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마주한 얼굴 앞에서 감정은 형태를 바꾸어 모습을 드러낸다. 반가움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망설임이며, 그사이에 축적된 시간은 관계를 조용히 그러나 소란스럽게 압박한다.

구 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이 기차에 오른다. 흔들리는 객차 안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간다. 가난한 청년이었던 그는, 한 기업에 채용되어 사장의 집에 기거하며 사장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곧 그의 출장으로 이별을 맞는다. 재회 후에도 서로의 감정이 이전과 다름없음을 알아채지만 두 사람은 끝내 넘지 못할 선 앞에 머무르고 만다. 재회는 욕망을 불러오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거창한 사건이나 외부적 드라마보다,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에 집중한다.”(268면)

 

세 편의 작품은 각기 다른 소재를 가지고 서사를 전개하지만, 인물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무너진다는 점에서는 꼭 닮아 있다. 충동은 합리적 판단을 앞서고, 사랑은 오해 속에서 비대해지며, 기억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금 욕망을 불러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이 감정을 선택했다고 믿는 듯싶지만, 실상은 감정에 의해 자신이 선택된 채 끝을 향해 한없이 밀려나는 것 같다.

감정을 거의 해부하다시피 하는 정묘한 심리 묘사와, 상황을 냉정한 시선으로 분석해 장면을 문장 속에 고정하는 츠바이크 특유의 절제된 글쓰기는, 사건 자체보다 그 직전에 스치는 불안, 망설임, 자기기만, 그리고 균열이 생겼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들을 파고든다. 파국은 두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미 기울어진 내면이 인물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움직였을 뿐이다. 인물들이 미처 통제하지 못한 감정은 이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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