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호회/반창회

2025년 12월 6반 반창회 경희궁및 서울역사박물관 답사 <결과>

작성자차성근|작성시간25.12.11|조회수91 목록 댓글 0

★일시;2025.12.10(수)10;30-14;30

★여행지;경희궁및서울역사박물관

★참가(7명);김경흠, 문성기, 박창호, 송관순, 전인구, 조진우, 차성근

 

                                                                           -숭정문을 배경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가고있다. 세월의 흐름이 백구과극(白駒過隙)이란 말이 실감난다  3주만 지나면 2026년 새해를 맞이한다. 나이는 점점 먹고 노화는 빨라지고 살 날은 점점 좁혀오고 있다. 건강이 어느때 보다도 절실하다. 6반 반창회는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걷고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데 목적이 있다. 이번 여행은 조선 5개 궁 중에 경희궁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신난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여행은 나 혼자만이 가는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가기 때문이다. 만남의 장소는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 오전 10시 30분이다.

 

7명의 교우들이 동참하였다. 조진우 교우는 강원도 속초에서 불원천리 달려왔다. 정말 고마운 교우다. 서로 만남의 기쁨을 누리고 경희궁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도보로 7분 거리(463m)다. 흥화문(興化問)이 먼저 반긴다. 흥화문은 경복궁 중건때는 보존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뜯겨가 이토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후에는 박문사 자리에 영빈관과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정문으로 사용하다가 1988년 경희궁으로 옮겨졌다. 흥화문은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라 220m 서쪽으로 이전하였다. 원래 흥화문 자리는 이미 민간 소유지로 됐기 때문이었다.

 

궁궐 정문을 지나게 되면 금천교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금천교가 서울역사박물관 진입로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궁궐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경희궁(慶熙宮)은 조선 15대 왕 광해군때 지은 건물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불탄 창덕궁과 창경궁을 복원한데 이어 새로운 궁궐 2개를 지었는데 그중 하나가 경희궁이다.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는데 영조 임금때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7만여 평에 120여 채의 전각이 들어선 규모가 큰 궁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섯 채에 불과할 정도로 초라하다. 흥화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서울중고등학교 터라고 새겨져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경성중학교가 설립 됐다가 해방후에는 서울중고등학교로 이어져 1980년까지 경희궁은 학교 그 자체였다. 나무숲길 사이 도로를 따라가면 인왕산이 선명하게 보이고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지면서 계단 위에 숭정문( 崇政門)이 모습을 드러낸다.  넓은 잔디마당은 전각들이 빼곡하게 들어섰을텐데 다 헐리고 경희궁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22대 왕 정조가 이 숭정문 앞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는 즉위 일성을 남겼다. 숭정문에서는 정조 이외도 20대 경종, 25대 헌종이 즉위했다.

 

숭정문을 지나면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崇政殿)을 만나게 된다. 1926년 일제강점기에  몇 안되는 전각들을 매각했는데 숭정전이 팔려간 곳은 남산에 있던 일본 사찰 조계사였다. 지금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와는 다른 사찰이다. 숭정전은 조계사 법당으로 쓰이다가 훗날  그 자리에 동국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대학내 법당인 정각원으로 둔갑했다. 1980년대 후반 경희궁 복원때 원래 위치로 옮기려 했으나 건물이 노후화 돼 그냥 남겨두었다. 지금 숭정전은  원본을 본따 1990년에 다시 지은 전각이다. 숭정전에서는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조회, 중국 사신 접견, 세자 책봉식, 과거시험 같은 국가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경희궁에 경성중학교가 세워졌을 때는 교실로도 사용했다. 경희궁은 건립 이후 임금 10여 명이 머물렀는데 인조가 9년, 숙종이 13년, 영조가 19년, 마지막으로 철종이 약 6개월로 가장 짦다. 숭정전 뒤편으로 문을 통과하면 국왕의 집무실 격인 편전이 나온다. 자정전(資政殿)이다. 숙종, 영조 때 편전으로 사용되다가 이후에는 왕이나 왕비가 승하했을 때 관을 모셔두는 일종의 빈소인 빈전으로 주로 활용했다. 자정전은 고종 초 경복궁 복원을 위해 뜯겨 나갔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2001년에 다시 세워졌다. 자정전을 지나면 서암(瑞巖)이 나온다. 광해군 때는 왕의 바위라 해서  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 모양 자체가 워낙 크고 기이해서 숙종은 상서로운 바위라고 하여 서암(瑞巖)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직접 바위에 새겨 기록을 남겼다. 경희궁의 마지막 전각 태령전(泰寧殿)이다. 넉넉하고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 전각에는 영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 영조는 10년마다 자신의 어진을 그려서 총 13벌아었으며 그중에 51세에 그린 7벌이 태령전에 모셔젔다고 한다. 숭정전 동편에는 생뚱맞은 방공호가 있다. 이 방공호 자리는 왕과 왕비의 침전이 있었던 곳이었다. 융복전(隆福殿)과 회상전(會祥殿)이다. 숙종 임금이 회상전에서 태어났고 대전인 융복전에서 세상을 하직했다.

 

방공호는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도에 건축한 시설로 길이 110여m, 폭 9m, 높이 6m, 두께 3m 정도의 규모로 내부는 20여개 남짓한 크고 작은 방들로 구성됐다고 한다. 이 방공호는 일제 식민지 잔재로 아픈 역사를 잊지못할 교훈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경희궁은 경복궁 복원 사업으로 90%가 헐리고 10% 마져도 일제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그나마 일부 복원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송관순 교우는 64년 전 서울중학교 재학시 기억의 편린들을 소환하면서 감회가 무척 깊었다. 경희궁은 서울광장의 10배 규모(13만6천제곱미터)의 역사문화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할 계획으로 경희궁 터에 자리한 건물들은 이전 검토되고 있다.

 

그렇게되면 쾌적한 공간으로 서울 시민들의 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경희궁 어도 일부를 점령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980년에 개관한 세계 유일의 도시역사박물관으로 조선시대 한양 도읍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도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 공간이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로비전시실, 뮤지엄숍, 서울역사자료실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3층은 상설전시실로 조선시대의 서울(1392-1863), 개항과 대한제국기의 서울(1863-1910), 일제강점기의 서울(1919-1945), 대한민국 수도서울(1945-2010년대), 도시모형영상관(서울, 오늘, 그리고 내일) 등으로 시대별로 수도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육조(六曹)거리였다. 한양은 조선왕조의 수도이자 정치와 행정이 집중된 곳이었다. 도성의 중심부에 경복궁을 설치하고 경복궁 전면에 의정부와 이,호,예,병,형,공 등 행정의 핵심이 되는 여섯 관서 육조를 배열했다. 육조관서가 마주한 육조거리 또는 육조대로로 불리며 조선시대 행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잡았다. 조선왕조와 한양도성의 설계자 정도전(1342-1398)은 경복궁 앞에 포진한 육조관서의 모습을 열서성공(列署星拱)으로 묘사했다. 그 광경이 마치 별들(신하)이 북두칠성(왕)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이 들어서면서 수도서울을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2.0에 의하여 스마트 기술이 설계하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개발이 완료(2030년)된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한강변을 멋진 스카이라인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람을 마치고 오찬장소인 고봉삼계탕(광화문점)으로 향한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바로 앉아서 식사할 수 있었다. 오찬메뉴는 건강식품인 한방삼계탕(22,000원)이다. 소주를 곁들여서 살가운 정을 느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권커니 잣거니하면서 수다도 떨고 웃음꽃을 피우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다.

 

교우들은 맛있다고 하면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광화문역에서 2026년 2월25일(화)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산진비하였다. 2025년을 뒤돌아보면 교우들과의 만남의 시간은 평안한 마음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건강의 뿌리는 평안한 마음과 즐거움에서 비롯된다.  몸은 늙어도 교우들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더욱 젊어지는 기분이다. 노년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우선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다. 교우들을 자주 보고 수다도 떨면서 사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반장은 교우들이 가급적 많이 참석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힘이 솟아난다.

 

2026년에도 즐거운 한해가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동참합시다. 2026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을 누리시기 바람니다. sd16 6반 브라보!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경희궁 전경

 

경희궁의 원래 모습

경희궁 흥화문

서울중고등학교 터 표지석

1980년 이전 서울중고등학교 전경

숭정문 앞 넓은 잔디마당

숭정전

자정전

거대한 서암에서 기를 받는 교우들

바위 밑에 물이 흐르고 있음

태릉전

영조 초화상

일제시대 방공호

방공호 내부

기이한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는 교우들

경희궁 역사공원 조성 조감도

경희궁 역사공원 조성 후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뒷편

어정뜰

어정의 모습

따끈한 커피와 음료수 섭취

서울역사박물관 3층 상설전시관

광화문 육조거리 모형도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좌우에 행정부 배치

케데헌의 인기로 갓도 덩달아 외국이들에게 인기 급상승

조선의 황포돗대

서울역사박물관을 배경으로

야외 전시장에도 볼거리가 많음 '노면전차'(1899.5.20-1968.11.30)

금천교

광화문 방향으로

고봉삼계탕 광화문점

반장의 인삿말

한방삼계탕(22,000원)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