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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반창회

sd16 6반 반창회 2026년 6월 비우당및 자주동천 덕질 <후기>

작성자차성근|작성시간26.06.27|조회수88 목록 댓글 0

★일시;2026. 6.26(금) 10;30-14;50

★장소;비우당및 자주동천

★코스;동대문역 2번출구(마을버스3번 탑승)-비우당및 자주동샘-낙산성곽-이화장-마로니에공원-헤화역

★참가(9명);강완식, 김경흠, 김학천, 박창호, 송관순, 장갑문, 전인구, 차성근, 채광병

★오찬장소;100년 설렁탕 대학로점(744-2848)

 

                                                              -비우당과 자주동천을 배경으로-

 

6월이 어느새 끝물이다. 세월은 전광석화처럼 흐른다. 6월 반창회는 역사문화 탐방으로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한 비우당(庇雨堂)과 자주동천(紫㞫洞泉) 덕질이다. 모임 장소는 동대문역 2번 출구다. 이곳에서 마을버스 3번을 탑승하고 비우당으로 향한다. 종로구 창신, 숭인동 일원은 짧게는 백여 년, 길게는 수백년간 쌓인 아픔이 서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한국은행 서울시청, 조선총독부 등 당대 주요 건축물을 짓기 위해 돌을 캔 채석장 절개지다. 채석공이 떠난 낙산자락에는 피난민과 이주민이 몰려들었다. 절개지 주위에 판잣집이 하나 둘씩 들어서며 자연스레 창신 숭인동 구역이 형성됐다. 

 

세월이 흘러 판잣집은 벽돌집과 콘크리트 건물 또는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현재의 독특한 풍광으로 변하였다. 서울 명신초등학교를 지나 창신 쌍용2단지 아파트 정거장에 내리면 비우당과 자주동천이 코 앞이다.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초가지붕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비우당이다. 비우당은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로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1563-1628) 이 살던 곳이다. 이수광은 조선 초 청백리로 명성이 높았던 유관(1346-1433)의 외현손이다. 유관은 우의정으로 있을 때 동대문 밖 울타리도 문도 없는 초막에 집을 정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이후 유관의 외손자이자 지봉의 부친인 이희검이 이 집을 조금 넓히고 살았는데 어떤 손님이 너무 소박하다고 하자 우산에 비하면 너무 사치스럽다고 대답하여 듣는 이들이 감복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병화에 비우당이 소실되자 이수광이 옛 터에 소당을 짓고 비바람을 간신히 피한다는 의미로 비우라는 편액을 달았는데 이는 선조 유관의 뜻을 잊지않기 위한 것이었다. 이수광은 비우당에 살면서 이 일대의 여덟 곳을 비우당에 대한 선문과 가문에 이어 비우당 팔경이 수록되어 있다. 원래 비우당은 낙산의 동편에 있는 지봉의 남쪽에 있었으나 서울시에서 낙산성곽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 복원하였다. 

 

비우당 뒤편 암반에 자주동천(紫㞫洞泉) 네 글자가 새겨져 있고 바로 우측에 옛 우물터가 있다. 우물물에 옷감을 담그면 고운 자주빛으로 물들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이 우물에서 염색일을 하며 야인으로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기거한 곳은 청룡사 내 정웝원이다. 정업원(淨業院)은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약 350m 거리에 있다. 정업원은 왕실 여인이 출가해 살던 사찰 후원의 초가집이다. 이곳에서 정순왕후는 시녀 3명과 함께 살았다. 이때 정순왕후의 나이는 18세였으며 이때부터 날마다 바위산 동망봉에 올라 단종아 유배된 영월쪽을 바라보며 슬픔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며 애절한 삶을 살았다.

 

그녀가 죽는 그날까지(82세) 64년의 길고 긴 세월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산에 올라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영조는 1771년(영조 47년)에 '정업원구기(정업원 옛터)라고 친필로 써 정순왕후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정순왕후 넋을 기리고 선대왕 부부의 비극적인 사랑이 영원토록 기억 되도록 하기 위해 친히 동망봉(東望峰) 세 글자를 바위에 새기도록 했다. 현재 동망봉에는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는 정자 동망각과 기념관 숭인재가 지어져 있다. 비석은 현재 까지도 사찰 부지에 보존돼 있지만 동망봉이란 세글자는 일제의 채석작업으로 사라졌다. 

 

정순왕후의 숨결이 깃든 자주동샘과 이수광의 비우당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낙산성곽으로 향한다. 한양도성이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은 예로부터 풍경이 수려해 양반들이 활터와 별장을 지었다. 단단한 중생대 대보 화강암으로 구성돼 빛깔이 신비롭고 형태가 기묘했다고 한다. 낙산(124,4m) 정상에 오르면 서울 도심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과 도시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날씨가 투명 유리처럼 맑아 선명하게 보인다. 아름답다는 말 이외는 없다. 이곳에서 추억을 남기고 이화장으로 향한다. 낙산 카페거리를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이화장이 나온다.

 

이화장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이화장은 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1947년부터 살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권영일 등 33명이 돈을 모아 마련한 집이다. 이대통령 부부는 경무대 12년을 제외하곤  대부분 이화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 구조는 본관 , 조각당, 생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8년 8월15일 건국 44주년을 기념하여 이승만 동상이 건립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목표액 320억 중 국민 성금이 172억원으로 태부족이다. 앞으로 어떻게 추진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곳에서 마로니에 공원까지는 도보로 약 7분이 소요된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서면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띈다. 마로니에 상징적인 건물이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이 관악산으로 이전하면서 건물이 거의 사라지고 단지 그 당시 대학본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마로니에 나무 왼편에 서울대학교 유적 기념비가 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 건물 배치도가 축소판으로 전시되어 있다. 단지 서울대문리대 학교본부만 현존하고 있다. 학교본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1950년 6.25 동란시 서울 재수복 후에는 미제8군사령부로 사용하였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 후인 1953년 8월15일 용산으로 이전하고 9월15일 서울대문리대학 건물을 반환했다.

 

서울문리대학교가 없어진 자리에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마로니에공원에는 생각지도 않던 윤선도 생가터가 있다. 1587년(선조20년) 서울 낙산 서편 연화방(현 연건동  이화동)에서 태어난 고산 윤선도는 우리나라 근대 시조 문학의 거성이다. 이제는 가장 즐거운 식사시간이다. 대학로 100년 설렁탕집으로 향한다. 식당은 마치 잔치집 처럼 손님들로 가득하였다. 오찬메뉴는 설렁탕과 왕만두이다. 설렁탕은 깊고 진한 국물 맛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메뉴 중 하나다. 설렁탕은 사골과 쇠고기를 가마솥에 넣고 오랜 시간 고아낸 음식이다.

 

예로부터 몸이 허할 때나 병치레를 한 뒤 건강 회복을 위해 먹는 보양음식으로 꼽혀왔다. 여기에 깍두기와 김치, 부추를  곁들이면  환상 궁합이다. 회식자리에서 술이 빠지면 섭섭하다. 막걸리로 권커니 잣거니하면서 정겹게 만단정화(萬端情話)를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하였다. 식사후에는 커피숍으로 향한다. 커피는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료이다. 어딜가나 커피숍 천국이다. 채광병 교우가 한턱 쏘갰다고 하여 양보하였다. 마로니에 커피숍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후식을 한 후 8월 14일(금)에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혜화역에서 각산진비(各散盡飛)하였다.

 

오늘은 여름 날씨 답지않은 비교적 선선하고 미세먼지도 없는 투명한 날씨로 나들이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6반 반창회는 주로 역사문화 탐방에 촛점을 맞춘다. 역사를 배우는 시간은 늘 재미가 쏠쏠하다. 학생 시절에 배웠던 것 보다도 더 가슴깊이 와닿는다. 단종 비 정순왕후의 생애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어 큰 소득이었다. 그리고 비우당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품게 되어 알찬 반창회였다. 교우들과 함께 어울려서 수다도 떨고 깊은 우정을 더욱 돈독하 하면서 건강도 챙기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다. 80세 나이를 넘보는 교우들이 모두 건강해서 더욱 기뻤다.

 

반창회는 교우 2명이 남을 때까지 지속하자고 하였다. 교우들과의 보낸 시간은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이지만 무엇보다도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 생명 다하는 순간까지 교우들과 오래도록 우정을 맺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sd16 6반 브라보!

 

 

버스에서 내려서 비우당으로 향하는 중

비우당

비우당과 자주동천을 배경으로

비우당 뒤편 암반에 새긴 자주동천과 옛 우물터

자주동천을 보고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중

낙산길을 따라서 낙산성곽으로 향하는 중

낙산성곽 밖에서 북한산을 배경으로

낙산성곽 정상

낙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 도봉산과 서울 전경

낙산 정상에서 커피타임(전인구 교우가 준비)

낙산 카페 골목

좁은 계단을 따라서

이화장

이화장 담벽을 따라

마로니에공원 아르코예술극장

서울대문리대 조감도

마로니에 나무

아르코미술관

옛 서울대문리대학 학교본부

윤선도 생가의 터

휴식하면서 수다를 떠는 시간

대학로 100년 설렁탕집

반장 말 한마디 '교우 두명 남을 때까지 반창회 하자'고 하면서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축배 제의

설렁탕(12,000원)과 왕만두(10,000원)로 호식

마로니에카페에서 아이스크림으로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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