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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들

쎄쎄쎄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작성자김형기|작성시간14.11.21|조회수98 목록 댓글 0

쎄쎄쎄 아침 바람  바람에 울고 가는  기러기

 

한밤중에 잠을 깨서 시계를 보니 겨우 반이었다. 교통사고로 절단된 다리 밤새 찌릿거려서 겨우 시간 밖에 잠을 못 잤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참 견디기 어렵다. 절단된 부위의 신경이 사라진 다리 쪽으로 계속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생각지만, 의사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 그런 현상이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누군들 못 하나? 어느 가수도 세월이 약이겠지요.”라고 노래했는데.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시간 정도 인터넷 세상에서 놀다가 포도주 한 잔을 들이켰더니 심란한 마음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좀 있다가 커피를 끓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져서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설레었다.

 

영화 한 편 보고, 좀 요란스러운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여섯 시쯤에 아내가 일어났다. 늘 하던 대로, “안 죽고 살았네.”, “나도 안 죽었어.” 라고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바로 결혼 37주년 기념일이라는 특별한 날이. 젊었을 때는 이런 날에 아내에게 꽃을 깜짝 선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운전을 못 하니 혼자 몰래 꽃집에 다녀올 수도 없고, 돈도 아까워서 그냥 넘어간다. 가끔 축하 선물을 보내 주기도 하던 딸들도 이제는 저희 결혼 기념일 챙기기에 바쁘니 올해도 그렇고 그런 평범한 날이 되려나 보다.

 

아침 식사 오트밀과 두유 한 잔 그리고 과일 등이 평소와 다름없이 식탁에 올라온 걸 보니 아내도 이제는 결혼기념일이라고 특식을 준비할 생각이 없나 보다. 이런 날에는 내가 좋아하는 맵고 짠 음식을 준비하지 않고서. 좀 꼬인 심사에 곱지 않은 말을 던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당신, 봉 잡은 날이야.”

      봉 잡은 건 맞네. 남편 덕분에 미국 와서 렉서스씩이나 굴리며 호강하잖아.”

만만치 않게 응수하는 아내를 보며 세월이 많이 흘러 얌전했던 아가씨가 사나운 할매가 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사실 렉서스는 큰이 사주었지만, 내가 사준 걸로 착각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서 좀 부드럽게 한마디 던졌다.

      나도 마누라 잘 만나서 팔자 고쳤지. 전속 운전기사를 두고 편안하게 살잖아.” 늘 나를 편안히 모시려고 노심초사하는 마누라라는 이름의 운전기사에게 오는 말이 고와서 가는 말을 곱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 뭘 하면 좋을까, 어디 좋은 계획 없어?”

      좋은 계획은 무슨. 쎄쎄쎄나 할까?”

그래서 손바닥을 마주치며 쎄쎄쎄 아침 바람  바람에 울고 가는  기러기.” 딱 여기까지 하다 말았다. 아이고, 아무도 안 본다고 이 무슨 주책이람.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싱겁게 지내며 백년해로하려면 앞으로 63년을 더 보내야 하는구나. 결혼기념일을 재미없게 보내더라도 그렇게 살다가 세계 최장수 기록이나 깨어 볼까.

 

오랜 친구인 H 부부만에 원로 사제를 함께 방문하기로 한 날이라서 저녁에 만났더니 내가 좋아하는 장어와 생선회를 산더미처럼 준비해 왔다.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날인 줄도 모르고 준비해 온 음식으로 포식했지만, 무척 고마웠다. 이래서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말이 생겼겠지. 이 친구네 부부도 백년해로하면 우리 부부도 가끔 이렇게 맛있는 음식으로 포식할 수 있겠지. 친구여, 부디 오래 살게나.

 

집에 돌아오니 어젯밤에 만난 잠이 마구 쳐들어와서 침대로 직행하여서 아침에 하다가 쎄쎄쎄는 결국 마치지 했다.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두리 두리 두리 두리 말아서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까지 끝내야 기념행사를 제대로 치루는 건데.

 

(201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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