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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시인의 회고담

작성자김완규|작성시간20.04.26|조회수47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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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시인의 회고담

 


1956년 3월 하순의 어느날 초저녁.

명동 뒷골목 목로주점 <경상도집>에

시인 박인환(1926~1956), 작곡가 이진섭,

가수 겸 영화배우 나애심 등이 둘러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거리 곳곳은 물론 목로주점 안에도

6․25전쟁의 매캐한 상흔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진섭"이 "나애심" 에게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지분거렸지만

나애심은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거나 말거나,

박인환은 주모에게서 받은 누런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흐릿한 시선으로 박인환의 손길을 그윽히 건너다보던

이진섭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종이를 낚아챘다.
"박인환" 의 대표시 「세월이 가면」이었다.


시를 빨아들일 듯 몇 번을 곱씹어 읽은 "이진섭" 은

즉석에서 곡을 붙여 "나애심"에게 한 번 불러보기를 청했다.
삶의 고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애심"은
악보를 보며

성의 없이 노래를 한 번 불러보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불멸의 대표곡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것이다.


잠시 뒤 성악가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왁자지껄 주점으로 들어섰다.
"박인환"과 이진섭"은 분주하게

두 후래자後來者와 인사를 나누고

찌그러진 양은술잔에 거푸 막걸리 석 잔씩을 권한 뒤

"이진섭"이 "임만섭"에게 악보를 건네주었다.


두세 차례 악보를 찬찬히 읽은 "임만섭"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렁찬 테너로 「세월이 가면」을 열창했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명동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우르르 <경상도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청중들의 열렬한 앵콜 요청에 "임만섭"은

다시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켜더니

「세월이 가면」을 재창했다.
노래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은 드물게 성악곡으로 보급되었는데,

세인들에게는 -명동엘레지-로 널리 알려졌다.
훗날 애잔한 음색의 대중가수 "박인희" 가 원제인

「세월이 가면」으로 리바이벌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경상도집>에서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 은

10년 전에 타계한 첫사랑 여인의 기일을 맞아

망우리공동묘지를 다녀왔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세월이 가면」은 피를 토하듯 그 첫사랑에 얽힌

애절한 추억을 한 올 한 올 반추한 정한(情恨)이었다.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랑잎이 나뒹구는 옛 연인의 헐벗은 묘지를 바라보던

젊은 시인의 적막한 심경이 시공을 건너와 가슴을 에인다.


그러나 사람은 가더라도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

사라질 리야 있겠는가.
그 처연한 심사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을.


이 시를 마지막으로 "박인환" 은 며칠 뒤인

1956년 3월 29일, 자택에서 잠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사인은 과음에 의한 심장마비.
이땅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세계를 펼친

열정적 시인이 만 30세의 너무나 아쉬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춥고 배고픈 시절임에도

언제나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명동을 누볐던 ‘명동신사’ "박인환"은

동료 문인들의 청을 받아들인

미망인(박인환의 부인)의 양해 아래

망우리공동묘지 옛 연인의 묘 옆에 묻혔다.


사랑도 시도 삶도 조용히 정리 하면서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 처럼 영원히 남아있는

첫 사랑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면서

젊은 날의 추억은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참으로 너는 정들다 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조병화(1921~2003) 시인이 동료시인" 박인환" 의 발인 때

낭독한 조시(弔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조병화" 역시 명동의 여러 목로주점을 단골로 드나들던 '

명동시민'의 한 사람이었다.
‘정들다 만 애인’ - 이보다 더 진한 아쉬움이 어디 있으랴.


"박인환"은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평양의전을 다녔으나
해방과 함께 대학을 중퇴하고 상경하여

낙원동에 서점을 열어 생계를 꾸렸다.


1946년에는 국제신보에-거리-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48년 결혼과 함께 "김경린"․"김수영" 등과

詩동인지 *新詩論*을 발간하는 등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쳐나갔다.


전쟁 중에는 경향신문의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너무나 서둘러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가 남긴 육필집은-박인환 選詩集-이 유일하다


*** "박인환" 의-문학 예술사 -에서 발췌.***


 

 

**** 세월이 가면 ****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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