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구 선배를 영웅으로
2025년 10월13일 학술세미나 참관기
2025년 10월13일 강재구소령 60주기 학술세미나에 다녀왔다. 세미나에서 이뤄진 발제와 토론의 핵심은, 잊혀져가는 60년 전 강재구 소령의 대의적 희생정신의 발로를, 혼탁해가는 오늘날 후배군인들의 고고한 군인정신 덕목으로, 나아가 국민일반의 시대정신과 수양덕목으로 삼자는데 목표를 두고 그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목표실현을 위한 현실적 방책들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날 세미나 참석은 9일전인 10월4일 추모식에도 꼭 참석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못해 그 보속(補贖)인 셈이다. 추모식 날에는 지난해 11월 타계한 동기생의 미망인이 해외에서 입국해 꼭 점심을 같이 하고 싶다고 해 어쩔 수 없었다. 투병 중이던 지난해 생도시절 응원가 ‘Railroad Song'(I've Been Working on the Railroad)을 듣고 싶으니 찾아달라는 다른 동기생을 통한 요청을 받고, 쉽지 않게 찾아 들려주기도 했고 결국 운명하고 말았을 때는 그 친구와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조시(弔詩)를 지어 유가족들에게 보냈는데 크게 위로가 되어 고마웠다는 것이다.
송파의 집에서 세미나장인 인천시청 대회의실까지는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가을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려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전철에서 읽을거리로 멜가방에 6월 전쟁기념관호국애국시수필화전에서 받은 새마을문예29호와 매호 송달받는 한국통일진흥원 정기간행물 353호를 담아 나선다. 새마을문예에선 화랑문인회 회원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통일진흥원잡지에서는 이석복 회장의 칼럼 ‘유엔사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한국·유엔사친선협회의 창설의미’를 반갑게 대하고, 동기생 권안도의 ‘조건에 의한 전작권 전환은 계속되어야 한다’도 읽으면서, 최근 hot한 한·미간 이슈에 대해 소중한 배움을 얻는다.
집에서는 좀체 힘든 독서가 지루할 전철 안에선 집중이 기막히다. 읽기에 빠져 자칫 환승역인 부평역을 지나칠 뻔 했을 정도다.
인천1호선 시청역에서 지척인 인천시청 대회의실 2층 세미나장에 들어서니 시작 14시의 5분전이다.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방명록에 기재하니 명찰을 써주는데 옆에 이미 준비해 둔 내 명찰이 있어 바꿔 단다. 세미나를 주관하는 강재구소령선양사업회 장순휘 회장은 지난 6월 호국애국시화전 때처럼 총감독이고 총연출의 전장 지휘관이다. 몹시 분주하다. PPT운영 데스크의 화랑대문인회 정정회 사무국장에게만 눈짓 사인을 주고 착석한다.
장 회장이 3분 전을 알리며 좌중을 정리하고 사회자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소정의 의례와 장 회장의 내빈소개로 이어진다.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이 축사를 통해 인천은 인천상륙작전으로 나라를 구한 호국의 도시이므로 인천출신 강재구 정신을 고양하는데도 진력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고마운 격려였다.
선양사업회 이사장 이정린 선배님의 환영사는 인상 깊다. 강재구 선배님과는 운명적 인연이었고, 그 인연으로 선양사업회 이사장을 고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초·중·고·육사를 통틀어 1년씩의 후배이고, 심지어 월남에선 강재구 선배님이 훈련시켰던 중대를 지휘했으니 말이다. 재구중대에서 재구대대로까지 명명된 맹호의 재구부대는 수많은 전과를 올렸을 뿐 아니라 병사 개개인도 전투과정에서 투철한 군인정신을 발하여 파월국군 전체의 명예도 드높였다는 사실을 전해주신다. 이 같은 재구부대의 활약은 강재구 선배님의 희생적 산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증명해주게 돼 감동적이었다.
최근 형편없어진 군의 사기도 강재구 소령 선양사업이 국민적 운동으로 발화될 때 회복 될 것이란 취지의 역설(力說)은 정녕 힘 있는 논지였다.
월남파병 32만 명 중 전사자가 5천이고, 전사자의 25%가 장교였다는 새삼스러운 사실도 알려주신다. 육사출신들의 자긍심을 한층 높여주는 사실이며 왜 후배들이 강재구 선배의 참 군인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당위성을 명확히 해주는 대목이었다.
축사가 3편 예정됐는데 2편은 불발이고 육사교장의 축사를 생도여단장이 와 대독했다. 육사는 생도들이 강재구 소령님의 애국충정과 불멸의 육사혼을 이어받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예장교로 성장하도록 더욱 매진해 나가겠다고 한다. 정녕 그랬으면 좋겠다.
추모시 낭송을 강재구 선배의 수류탄폭발 사고당시를 꽁트 극으로까지 구성해서 들려주는 임성산·윤봉순 부부의 열정에는 깊이 고개 숙인다. 긴 여러 편의 시를 완전 암송한다는 게, 연극배우도 아닌데 무대에서 청중을 장악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극의 진행에 약간의 서툼과 어색함이 있었어도 해내려는 열정과 노력이 느껴져. 전하려는 메시지가 더 비장하게 다가왔다.
장순휘 후배의 기조연설은 화랑대문인회 톡방에 올려진 PPT를 미리 보고 간 터여서 짧은 시간에 어떻게 요약할 것인가만 보려 했는데, 내용보다도 강력하게 전달하려는 의지를 담은 기개 넘치는 사자후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결국 국가적 위기를 강재구 정신을 부활시켜서 위국헌신ㆍ군인본분과 살신성인의 투혼으로 이겨가야 한다는 지론이 그대로 담겨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전까지의 강재구 정신 연구가 빈약한 현실에서 장순휘 후배가 고군분투 연구에 들어 내놓은 기조연설이 이 날의 발제자와 토론자들로 하여금 이번에서도 이후로도 더욱 더 연구해나가도록 추동시키는 Agenda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학술세미나에 들어가 발제되고 토론된 내용은 A4 지면 65페이지에 걸쳐 빽빽한 활자로 가득 채워진 분량이어서 다 정독도 못한 상태에서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 없고 그래서 제대로 전할 수도 없어 유감이다.
그러나 극히 개인적 주관적 입장에서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보면
session1에서의 발제 <‘강재구 정신과 현대 군인의 윤리: 희생·책임·리더십의 재조명>과 토론들은, 강재구 정신 연구의 결과 오늘날 군과 사회에서도 선양되어 시대정신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session2에서의 발제 <강재구 소령이 남긴 사회적 문화유산>과 토론들은,
session1에서의 목표들을 어떻게 달성해 갈 것인가 하는 접근법들을 냉혹한 현실여건에서도 찾으려 고심하였고 상당히 공감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조연설과 session1의 당위성들은 충분히 공감하게 되는 것들이지만,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도들을 제시한 session2의 발제 토론들이 자못 흥미로웠다. 정치학박사이면서도 미디어를 전공해서인지, 제시된 이론들 증 집단기억이나 집단의례 같은 것들은, 크게 보아 communication학 부문이고 좁혀 보면 Propaganda나 Public Relation의 이론에서도 나오는 방법론들과 유사해 익숙한 느낌이었고 더 공감하게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연구들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순휘 후배가 던진 Agenda에서 비롯된 것이고, 기조연설에서 나온 바가 연구의 방향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새삼 우리 화랑대문인회 장총장이 자랑스럽다. 감히 친해지고 싶어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세미나를 보면서 툭툭 튀어나왔던 상념(想念)들이다.
다른 안보주제 세미나에서 청중들이 허연 백발들로만 채워지고 안보에 깨어있는 국민들만의 우국 무대일 뿐이어서 늘 실망해왔다. 단상의 발제자들은 우리시대에선 다 한 가닥 하는 현학(玄學)들인데도 말이다. 절체절명의 자유민주를 지켜온 안보라는 전선이 이 시대 새 세대들 앞에서는 한량없이 무색해진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날도 청중이 거의 없다.
그러나 단상에 감탄한다. 좌장과 발제자, 토론자들이 육사후배님들이다. 박사고 교수고 연구소소장들이시다. 아니 언제 이리 수신(修身)을 이루시었나. 전역후로도 활발히 전개해온 학문의 전사들이 아닌가.
이날 세미나가 육사인들 만의 것이라도 좋다. 어차피 선배의 숭고한 모범을 후배들이 군과 사회에 빛나게 발현시키려하는 디딤돌이니 어쩌랴.
좌장 주은식 후배가 이 발제와 토론을 맡길 때 고심했다고 했다. 논문으로서 참고문헌이 전무한 상황인데 누가 맡으려 하겠는가? 그래도 해내리라고 믿고 맡긴 화랑동문 석학들이란다. 과연 그렇다. 현장에서 서로 그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기조연설은 물론 다른 발제토론자들의 내용을 참고하고 인용하며 조언을 얻어 완성해냈단다.
바로 이런 연대와 유대가 이어진다면 육사인만으로 출발한 강재구 소령의 연구가 머지않아 사회로의 투영으로도 이뤄져 빛을 볼 것이다.
강재구 선배를 추모하면 나로선 당연히 같은 길을 간 27기 동기생 정경화가 떠오른다. 전방 중대장으로 지뢰작업 중 폭발한 지뢰를 자신의 몸으로 덮어 중대원들을 구하며 숭고한 희생을 맞이한 건 똑같기 때문이다.
강재구 선배는 영화로도 제작돼 국민전체에 감동을 주었지만, 정경화는 현장 사단지역 내 공원이 조성돼 매년 추모식을 가지는 정도다.
굳이 비교할 일은 아니다. 강재구 선배는 파월 첫해 선배님의 희생을 통해 파월장병 전체가 참 군인정신을 지니고 전장에 임하게 하였다. 강재구 영화를 보고 이듬해 육사에 입교한 우리 동기생들에게 강재구 선배님은 귀감인 것이니, 그 길을 따른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이날 발제에도 정경화의 희생과 군인정신이 알려지고 있어 위로가 되었다.
한편으로 이날 부각된 강재구 선배의 군인정신은 평소 사생관이 생도일지와 장교일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기에 후일에도 논증이 될 수 있었다란 생각이다. 정경화도 그런 기록들이 남아있었다면 우리 동기생도 더 그를 상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모와 기록을 생활화하는 나로선 참으로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이번 세미나가 추모식처럼 창영초등학교에서 열리지 못한 건 학부모들이 반대해서란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지금의 MZ 세대보다 더 후대일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군에 간다면 과연 우리가 선양하려는 강재구 소령의 군인정신이 본받을 정신덕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길은 하나다. 우리 육사출신부터 강재구 선배의 정신대로 군복무와 사회생활을 하며 믿음직한 군 장교로서 모범시민으로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왔어야 했다. 앞으로 그래야 한다. 그렇다면 이날 학술세미나의 목적과 목표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이날 강재구 선배의 선양 학술세미나는 이후 내게도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세미나에선 혼신의 노력으로 작성한 논문들이 발표된다. 청중들은 그 노력의 결실인 수편의 논문에 담긴 지식을 불과 2~3시간 안에 모두 취득하게 된다. 논문집 다를 읽어보지 않아도 된다, 세미나 현장에서 발표자들이 추려서 내놓는 것들이 핵심 알맹이들이니 말이다. 그런 자리에 시간 내어 왔다면 끝까지 앉아 들어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얼굴 도장만 찍으러 온 참으로 얄팍한 군상들에 지나지 않는다. 나중에 잘 읽어보겠다고? 행여나 이다.
학술세미나가 모두 끝나 조용히 일어나 귀가 길에 올랐다. 아직 중추(中秋)이고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비 때문에 하늘이 어둡다, 귀로의 전철 안은 좌석은커녕 발 디디고 들어설 틈도 없다 책 읽기도 당연히 포기다.
10월4일 추모식에 꼭 갔어야 했다는 건, 안보전선 공직에서 상사로 모시며 정말 존경했던 김영택 육사선배가 지난 9월19일 타계하셨는데, 그 분이 곧 강재구 선배님의 영결식에서 명 조시를 낭송한 동기생이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강재구 선배님 추모식에서 얼마 전 선배님을 추모해 지은 시와 함께 김영택 선배님께 바친 조시도 함께 음송하리란 생각이었다.
블로그에 담아둔 8월25일의 시(詩) ‘강재구 소령 우리 선배님’과 김영택 선배님 타계에 대한 9월22일 시(詩) ‘아직은 떠나실 때가 아니셨는데요’ 두 편을 폰에서 다시 한 번 읽으며 음송해본다.
두 선배님을 추모하기엔 이날의 가을비가 더 어울린다 생각되니 왜일까? 또 한분 존경하는 소대장시절 대대장님 13기 조훈균 선배님께 안부전화를 늦지 않게 올려야 할 듯싶다. §§
2025년 10월14일
一鼓 김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