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 스리랑카 역사 와 생활문화 - 스리랑카 주민의 70%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BC 6세기경에 인도 북부로부터 건너와 선주민(先住民-야차족)을 정복하고 왕국을 이룩하였다. 그들은 인도 남부 타밀족의 침략을 받아 차차 그 세력이 밀리게 되었고 , 타밀족은 섬의 북부에 따로 왕국을 수립하였다. 싱할라족의 왕조는 BC 3세기에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를 수용, 보호하였으며, 남방 상좌부(上座部)불교의 정통파로서 ‘실론 불교’의 전통을 다지기 시작하였다. 16세기부터는 유럽 열강의 침입이 시작되어 제일 먼저 우선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해안지역의 일부를 점령하였다. 이어 1602년에는 네덜란드인이 침입하여 포르투갈인을 몰아냈고, 1795년에는 영국이 네덜란드를 굴복시키고, 1815년에는 캔디에 근거를 둔 마지막 싱할라 왕조를 멸망시키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영국 자본은 인도로부터 타밀족 노동자를 이주시켜 플랜테이션을 경영하였으며, 그 결과로 싱할라와 타밀 민족간의 대립이 심각해졌다. 한편, 유적 발굴 등에 따른 불교 르네상스가 싱할라족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인도의 민족운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작용하여 독립운동이 활발해졌다. 그리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도 민족해방운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1948년 2월 독립을 인정하였다. 독립 후에도 영국의 지배력은 상당히 남아 있었으며, 총독의 임명권도 영국 국왕이 보유하고 있었다. 1956년의 총선거에서는 자본가 지주계층을 기반으로 통일국민당 대신 농민과 중산계층에 뿌리를 둔 자유당을 주체로 한 연합전선이 정권을 잡았다. 연합전선은 중립주의의 추진, 공화제 이행(移行) 준비, 외국자본의 국유화 등에 힘썼으나 영국 세력과 승려, 지주 세력의 반대에 부딪쳐, 1959년 9월에 총리 반다라나이케가 암살당하였다. 1960년의 총선거에서는 반다라나이케의 부인이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어, 인도계 타밀인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민족대립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경제정세의 악화로 1965년에 내각이 무너지고 친서구적(親西歐的) 성격의 통일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右派) 세력의 연립내각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정세는 호전되지 않았으며, 1966년 12월에는 식량위기로 인해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국민의 불만을 배경으로 1968년 3월에는 자유당?평등사회당? 공산당이 통일전선을 결성하였으며, 1970년 5월의 하원 총선거에서 2/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반다라나이케 부인을 다시 총리로 하는 통일전선 정부가 형성되었다. 이 정부는 1971년에 상원을 폐지하고 1972년 5월 제헌국회에서 새 헌법을 채택, 스리랑카 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좌익 연합정권은 비동맹외교노선을 추구하였으며, 1976년 8월에는 수도 콜롬보에서 비동맹국 수뇌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1971년에 극좌분자에 의한 무장반란이 일어나고, 물가? 실업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으며, 평등사회당과 공산당이 1975년 9월과 1977년 2월에 각각 연합정권에서 이탈, 자유당 좌파의 일부가 신당을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1977년 7월의 총선거에서는 통일국민당이 압승을 거두고 자야와르데네 정권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8월에 소수민족 문제를 둘러싸고 항쟁이 발생하여 1971년의 무장반란이후 처음으로 전국에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1977년 10월에는 대통령 중심제의 헌법개정을 실시하고, 1978년 2월에 행정권을 가진 초대 대통령에 자야와르데네가 취임하였으며, 그해 9월에 1972년의 헌법을 폐지하고 새 헌법을 공포, 국명을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스리랑카 내전은 싱할리족과 타밀족이라는 서로다른 두 민족사이의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 싱할리족과 타밀족은 무슨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당도해 기나긴 분쟁을 시작하였을까? 스리랑카 인구의 70%가 아리아계의 싱할리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를테면 다수민족인 것이다. 이들은 남서부와 고지에서 살아가며 독실한 불교민족이다. '싱할리'는 사자의 자손을 의미하며(그러므로 보이듯이 스리랑카의 국기에는 '사자'의 문양이 들어가 있다) 이들은 기원전 483년전에 실론섬에 건너와 왕국을 건설하면서 이곳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스리랑카 소수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밀족'이 있다. 이들은 또한 두 종류로 분류가 가능한데, 이전부터 스리랑카에 거주해왔던 스리랑카 타밀족과 19세기 이후에 이주한 인도 타밀족이다. 전자는 스리랑카 총인구의 12%정도, 후자는 5%정도를 차지한다. 인도 타밀족들은 19세기 이후 커피나 차의 플랜테이션을 위해 영국이 강제적으로 이주시킨, 인공적인 거주자들이다. 기원전 3세기에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번영한 이후, 스리랑카의 역사는 남인도에 거주하던 타밀족과 원주민인 싱할리족의 끊임없는 투쟁들 사이에서 흘러왔다. 유럽열강에 대한 식민지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이어지는 침략을 받으며 식민지화의 과정을 겪었고 마침내 1851년, 싱할리족이 건설한 '캔디왕조'는 영국의 침략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대영제국의 식민지 '실론섬'만이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근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내전. 시작되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스리랑카의 싱할리족들은 싱할리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선포하고 소수 힌두교도인 타밀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시작했다. 이에 타밀족은 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세세한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1958년 타밀족과 싱할리족의 최초 민족분규가 발생했다. 그리고 1년 뒤, 당시 스리랑카의 수상이었던 좌익연합정권 (그러나 이 좌익연합정권은 급진 불교도와 제휴하고 싱할리 민족주의를 내세운 ' 앞 뒤 맞지 않는' 허구의 좌익이었다)의 반다라이케 총리가 급진 불교도에게 암살당한다. 타밀족과 타협했다는 의심이 그 이유였다. 이후 2, 3차 좌익연합정권이 계속되면서 그 총리를 맡고 있던 (반다라이케 총리의 부인) 반다라이케 여사는 1961년, 싱할리어를 공용어로 법률화 해버리고 1972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싱할리어와 불교를 우대하게 되었으며 또한, 타밀족에게 불리한 교육제도를 만들고 스리랑카 동부지역 타밀족 거주지에 싱할리족을 이주, 정착시키는 정책을 만들었다. 특히 타밀족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계속하여 배출하고 고학력 고급인력들을 양성해내자 싱할리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인구비례 대학 입학제'는 대표적인 소수민족 억압 정책이었다. 그 이후 타밀족의 폭동은 계속되었고 크고 작은 테러와 학살은 끊임없었다. 특히 1983년에는 타밀족 급진파 조직이 정부군 13인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싱할리족에 의한 대대적인 타밀족 학살이 일어났다. 타밀족 정치범 52명이 교도소 내부에서 학살당하고 수도 콜롬보의 타밀인들이 싱할리족 폭도들에 의해 무차별 테러당하면서 1천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많은 타밀족들이 캐나다나 호주, 영국으로 빠져나갔다 (이들은 이후 타밀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자금원으로서 기능한다). 이 폭동 이후,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족 온건파 정당인 '타밀 통일 해방 전선(TULF)' <주>를 불법화시켰고 무력으로 타밀족의 독립운동에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이후 지리하게 계속될 분쟁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타밀의 독립조직중 가장 급진적이고 잔인한 테러리즘을 주창하는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었다. 잠자는 호랑이의 콧털을 건드린 셈이었다. - 편집, 해설 / 靑山 한 재서 -
동양의진주 스리랑카의 생활문화
- 농산물 판매 시장 풍경 -
3 輪 車 /시장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고있음
우리 나라에서는 3윤차를 어찌다 볼수있음
- 스리랑카 교통경찰 -
맨발의 과일 자전거 행상
- 3륜 오토바이 보관소 -
우리나라 유료 주차장 처럼 보관료 받고있음
선거 벽보 광고 /우리나라와 비슷함
신발 수선공 / 우리나라 같으면 다 버릴" 쎈달" 을 수선하고있음
복개한 도로 밑에서 하수 구멍으로 악취가 올라오고있음
농산물을 팔고있는 거리의 행상여인
빠나나, 옥수수, 귤,vkvkdi 등과 열대과일 팔고있음
시골 山野 농장
시골 산골 마을
산골마을 폭포 가 유난히 맑고 돋보였음
우리가 본것은 넓은 평야는 보지못하였고
주로 산골 평화로운 마을만 보았음
-그 유명한 씰론 tea 를 따는 스리랑카 아낙내 들 -
수정기로 달리는 정기 機關車
지금도 시골마을엔 증기 기관차로 교통해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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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er> 세계적으로 유명한 씰론 tea 밭농장에 차잎을 따는 이낙내들
우리나라 보성 차밭과 흡사해 보였음
茶 밭을 달리는 관광얄차
관광객은 밝은웃음로 달리는 기관차에서 관광하고있다
호수마을 관광지
아프리카 무궁화 /하와이 와이키키 에도 열대성 무궁화가 많이 피어있었음
부겐 벨리아 꽃나무, 나무가 꾀 크게자라고
야들어지게 만발하여 피우면 매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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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고슴도치
고슴도치를 판매하는데 가축처럼 기르기도 한단다
인도의 민족종교 힌두교 사원
넥타이로 치장한 스리랑카 여고생들
- 스리랑카 긴 꼬리 원숭이 -
긴 꼬리 원숭이는 부부간에 情이두터워 늘 붙어서 생활한단다.
어느 한쪽이 사고사를 당하면 改婚 을 하지않고 산단다.
- 스리랑카 미녀들 모습 -
농산물 과일 판매상
바다에 거물을 치는 어부들
바다에서 거물을 거두는 어부들
-가두리 바다 어장-
가두리 어장에서 잡은 물고기 들
잡은 물고기 종류 크기 별로 변별하는 장면
잡은 물고기 건조장
바닷가 물고기 건조장
포망 거물 던지기
낙시 어부들
이곳 낙시꾼들은 바다가운데 나무로
기둥을 세워서 낙시 자리를 만든다
밀물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낙시장에서
낙시를하며 6시간이상을 쓸물까지 기다린단다
인공 낙시터
낙시 꾼
-바다에서 낙시하는 낙시 어부들
낙시어부가 열대어 "니모" 라는 큰고기를 잡아서 어께에 메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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