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8(수)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고정관념을 버려라.
일본 TV의 오락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출연자 중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도 한 명 끼여 있었습니다.
한 여성 탤런트가 그에게 "고향에서 사자를 많이 봤죠?
무섭진 않았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프리카인 유학생이 빙긋 웃더니 대답했습니다.
"전 도쿄 우에노공원 동물원에서 사자를 처음 봤답니다."
출연자들 모두가 "정말이에요?" 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유학생이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엔 사자를 본 사람이 없어요. 보자마자 전부
잡아먹혔거든요."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습니다.
일본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 유학생은 아프리카에 대한
일본인의 편견과 무지에 통렬한 일격을 가한 셈이었습니다.
이것이 일본, 일본사람들만의 편견이고 무지일까요?
미국 인디언 전설중에 독수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인디언이 길을 가다가 독수리 알 하나를 발견하고
’어찌해야 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닭 둥지에 그 알을 넣어
주었습니다.
얼마 후 독수리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왔습니다.
독수리가 본 세상은 마당에 몰려 돌아다니면서 땅을 헤치고
먹이를 찾거나 겨우 몇 미터 정도만 날 수 있는 닭의
세계였습니다.
독수리는 다른 닭들과 다를 바 없이 자랐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진 독수리는 어느 날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힘찬 날개짓을 하며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옆에 있던 닭에게 “저게 무슨 새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건 독수리야. 너는 꿈도 꾸지 마.
우린 아무리 저렇게 날고 싶어도 날 수 없으니까."
이 독수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닭인 줄 알고 살았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다가 너무 목이 말라
폭포의 물을 맛있게 마신 후 돌아서는 순간,
포이즌(POISON)이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독을 마셨다는 생각에 갑자기 창자가 녹아내리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의사는 “선생님, 포이즌은
영어로는 독이지만 프랑스어로는 낚시금지라는 말입니다”
라며 껄껄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아프던 배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아는 상식이나 믿음은 몸까지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러시아의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자신은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비관하며, 한동안 그림도 제대로 그리지 않은 채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화실에 들른 칸딘스키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명작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화실에 이런 그림을 걸어놓고
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그림에 한 발 다가서던
그는 다시 한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을 거꾸로 걸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전문 작가가 아니면 위아래를 구분하기 어려운
추상화여서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망쳤다는 생각에 미완성으로 내버려 두었던 그림이
우연히 거꾸로 걸림으로써 명작으로 둔갑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순간, 칸딘스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자신에게 숨어 있는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옥죄이고 있던 고정관념의 굴레를 벗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합니다.
왜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할까요?
만약, 당신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면
당신은 어떻게 회사에 가야 할까를 고민하나요?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갔던 길로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저 여자, 여우처럼 생겼어.> 또는
<그 녀석, 참 똑똑하게 생겼다>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아이를 보며 <똑똑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생긴 아이들이 통계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똑똑했다는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우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렇게 생긴 여자들이 우리가 여우 같다고 말하는
그런 행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출근 할 때는 <어떻게 가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제 갔던 길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면 상황이 바뀝니다.
또, 내가 다른 회사로 회사를 옮겼다고 하면 어제까지
갔던 길로 옮긴 회사에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변화가 많은 시대입니다.
어제와는 매우 다른 오늘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있고, 게임의 룰을 바꾸고
있습니다.
<게임의 룰이 변할 때, 큰 기회가 온다>는 조지 소로스의
말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해서, 말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출생일시 : 1866. 12. 16(구력 12. 4), 모스크바
사망일시 : 1944. 12. 13, 프랑스 뇌이쉬르센
국 적 : 러시아
현대 회화에서 처음으로 순수추상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뮌헨의 주요 미술그룹인 청기사파를 창립했다. 그의 그림은 유연하고 유기적인 것에서 기하학적인 것으로, 마지막에는 상형문자와 비슷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모스크바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교수직 제안을 받았지만 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1900년 뮌헨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현대의 사조들과 접촉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10년 일반적으로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라 불리는 〈무제〉를 제작해 추상 미술의 선두로 간주되었다. 뮌헨의 신미술가협회 내에 갈등이 생기자 1911년 이에 맞서 청기사파를 창설했다. 1919년 모스크바 미술관 관장이 되었고, 1920년 모스크바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22년 바이마르에 있는 건축·공예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교수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교회가 있는 풍경〉·〈두드러진 곡선〉·〈잔잔한 열정〉 등이 있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조지 소로스(영어: George Soros, 1930년 8월 12일 ~ )는 헝가리계 미국인으로서 금융인이자 투자가이다. 본명은 슈바르츠 죄르지(헝가리어: Schwartz György)이다. 소로스는 진보자유주의운동을 지지한다. 부모가 모두 에스페란티스토인 관계로 부모에게서 모국어로 헝가리어와 함께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따라서 그는 에스페란토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에스페란토 원어민이다.
40여년 동안 퀀텀 펀드를 운용해 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통한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944년 나치가 헝가리를 침략해 1947년 가족들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했다. 런던경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후, 1956년 뉴욕시티로 이주해 유럽 증권 분석가로 일했다. 1969년 퀀텀 펀드를 설립, 투자에 대한 과감한 결정으로 빠르게 성장시켰다. 1979년 박애주의를 표방하는 네트워크를 조직하는데 자신이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를 내놓기로 결정했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러시아·유고슬라비아에 재단을 설립했다. 21세기 초까지 40여개가 넘는 나라에서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열린사회재단이 운영되었다. 21세기에는 자선 활동과 정치적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990년 소로스는 ERM에 내재한 불합리를 꿰뚫어보고 외환보유고가 400억 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영국을 공격했다. 소로스의 공격에 영국 파운드화는 속수무책으로 폭락했고, 그는 10억 달러를 벌었다.
소로스는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낙선시키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정치사회단체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기부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무일푼에서 세계적인 거부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성공 스토리를 자랑하는 조지 소로스.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알려진 그에 대한 평가는 '자본주의의 악마'에서부터 '박애주의의 실천가'까지 극을 달린다. 돈을 위해서라면 한 나라의 위기도 상관하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막대한 부를 엄청난 규모의 자선 사업에 기부하기도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섭씨 30도 이상의 폭염이었습니다. 점심식사는 임원들과 멀리 연남동 구가원 중화요리식당으로 갔습니다. 더위를 먹었기에 입맛이 없다는 다수의 요청에 따라 이끌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구가원'에서는 오향장육과 유미짜장이 전국 최고의 진미입니다.
구가원 사장님은 예약 손님외에는 가능하면 손님을 받지 않았습티다. 식탁이 불과 홀에는 8개 테이블 뿐이지만, 식사시간 이외 시간에 오시는 고객들에게는 정중히 거절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늘 미리 전화를 한 후, 연남동으로 향했지요. 근간 매주 1~2회 이상을 멀리 용산에서 그곳까지 가는 단골손님이라서 항상 서비스로 만두를 두당 1개씩 꼭 주시곤 하지요.
점심 식사후에는 용산구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4월말 해외여행을 갔을 때, 그때서야 여권이 거의 만기가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지요. 해외여행은 여권 만기일이 최소 6개월 이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여권 만기가 5개월이었기에 까딱했으면 출국을 못할 뻔했습니다. 통상 해외 여행시 체류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하여 당시엔 사유서를 쓰고야 떠날 수 있었으니깐요. 귀국한지 얼마 지난 오늘 잠시 짬을 이용해 용산구청 여권발급과에 찾아가 새로운 여권 갱신을 하였던 것입니다. 1주일 후에는 새로운 전자여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옛고교시절 은사님이 철원실고에 재직시 제자인 미모의 장여사가 뜻밖에 전화를 걸어왓습니다. "오라버니! 용산에 계시니깐, 부탁하나 드린다면서...' 사연인 즉 자신의 딸이 해외유학을 떠나는데, 노트북 믿을 만한 것 하나 구입하는데 도와달라는 겁니다. 지난번 딸아이 혼사 때에 크게 축의해준 은혜를 생각해서도 절대 거절 할 수 없었습니다 흑~흑~흑~
그런데 노트북 거래처를 잘 알지도 못하고 행여 잘못 구입해 주었다가는 욕만 때따 먹을 것 같아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여 아들녀석에게 긴급 SOS를 쳤습니다. '아들아! 친구나 선후배중에 삼성전자에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가족 구매로하여 노트북을 좀 싸게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것 살 수 있겠느냐?' 라고... 착한 아들녀석은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기에도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아빠를 위해 대학후배에게 부탁하여 조치하겠다고 답변해 주어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녀석 왈(曰) "아버님! 앞으로는 이런 것 절대 부탁하지 말아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많이 무더운 날이고 또 몸도 피곤하여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공덕동을 지나 신촌의 이대 앞, 신촌역과 금화터널를 경유하는 지름길을 택했기에 모처럼 저녁 7시에 집에 귀가하였지요. 울 마나님은 일찍 퇴근 기념으로 특별 요리인 골뱅이 무침의 국수와 버터에 구운 감칠맛나는 고구마 튀김을 내어 놓았습니다. 아~! 정말 별미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