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요 4: 28-29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제목 : 물동이를 버려두고,
이 시간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처음에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꾸준히 다닌 것도 아니고 일정한 교회를 정해 서 다닌 것도 아닙니다. 왜 다녀야 되는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교회를 나갔는 데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면 만날 수가 있고, 또 열심히 기도 하여 만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입니 다. 매우 궁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는데 나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잠 8: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여러분, 우리 주님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꿈에라도 주님을 만나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게 정상이고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것 이 비정상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꿈에라도 만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 되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을 한탄 하시고, 만나서 알기를 기뻐하십니다.
사 1: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하십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으로 더 잘 알려진 사마리아 여인의 삶은 자세하게 설명 되어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혼에 상처가 많은 고독한 여성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개방된 세대에서도 한번만 이혼해도 팔자가 세서 이혼했다고 한숨 쉬는데 2천 년 전 아득한 옛날에 남편이 없다고 답하는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17∼18절)고 하십니다. 제 육시는 우리시간으로 오후 3시인데 중동 지방에서는 한낮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 모든 일을 쉬고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모든 사람이 쉬는 시간에 그것도 홀로 물을 길러 나왔으니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나왔음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여인은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극적으로 변화가 됩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부터 변화되는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1, 찾아오시는 예수님,
팔자세고 상처 많은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지역에 유대인이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데 이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스라엘인이긴 하지만 이민족의 침략으로 혼혈족이 되어 유대인들 에게는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 방해했던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유대 인들과는 서로 상종할 수 없는 건널 수 없는 강이었습니다.
9절에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우물가로 가신 것은 다분히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의도적 의도 적이었다 고 볼 수 있습니다. 뜨거운 한 낮에 사마리아로 들어가실 이유가 없었습니 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따로 덜어져 동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 두 사람 예수님과 같이 있을 만도 한데 예수님 혼자 남겨두고 다 갔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은혜 밖에 있는 사람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전통을 따라서 인생의 짐을 지고, 가족을 위해 물을 길러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지 못하고 그저 고단한 삶을 살아가 는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한 영혼을 구하시려고 찾아오시는 주님 을 인격적으로, 메시야로 만나는 이 시간되시길 소망 합니다. 처음에 사마리아 여인은 물 좀 달라는 말씀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인간 예수로 알고 만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 게 있어서 이 만남은 별로 달갑지 않은 유대인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가장 싫은 어색한 만남 이었습니다. 이 어색한 환경에서 주님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시자 여자가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선생으로 부르며 만나게 됩니다. 마침내 여인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의 남편에 관하여, 예배에 관하여 이야기 하자 여인은
25-30절에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기쁨과 감격의 외침이 있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솟아나는 샘물을 만나야,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실 때에 그 생기가, 성령 하나님 자신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영혼의 샘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의 샘물을 가지고 살 동안에는 목마름이 없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도, 행복도, 평화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롬 1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제가 하나 더 붙이면 자유 함입니다. 예수님 공생에 시작하시며 처음 하신 말씀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 입니다. 천국이 하늘나라이고 예수님 자신이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올 때에 이 샘물이 말라버렸습니다.
렘 2: 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샘의 근원이 되었는데 그 하나님과 영이 분리되니 마음속에 있는 샘의 근원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샘물을 못 마신 사람의 갈급함이 어떻겠습니까? 견딜 수가 없지요.
시 14: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 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의 생수를 버려 버리고 샘물이 말라버리니깐 인간 스스로가 죽을힘을 다해서 우물을 팝니다. 스스로 우물을 팠으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는 터진 우물이라. 물을 저장치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 1장 28절에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샘물 대신에 인간 스스로가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문화를 통해서 우물물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을 찾아보려고 물동이에 채우는데 그것은 곧 없어지고 갈급해하는 한계가 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실 때에 비로서 마음속에 하나님이 처음 주신 생명수가 넘쳐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 14: 2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요계 21장 6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의 남편이 5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돈 많은 부유한 남편인지도 모릅니다. 빵만 가지고 살수 없다는 것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 권력이 있는, 그 다음은 지식이 있는, 환호와 박수갈채가 있는 명성 있는 사람을 바꾸고 바꾸면서 자기 마음대로 생활해 보았지만 그의 갈급함은 채우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빵 문제가 해결이 되면 행복하겠지, 직업이 튼튼하면 행복하겠지 하여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갈증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노벨 수상자인 헤밍웨이, 유명 여배우 마리린 몬로 등 돈, 명성, 권력, 사랑 모든 것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졌지만, 우리나라도 재벌들이, 최고 권자였던 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의 그 열매를 갖고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갖고는 그 마음속에 행복을 갖다 주지 못하고 공허를 채울 수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이는 돈과 권력과 지식과 명성으로는 행복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7:37-38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너희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가 우리 하나님 앞에 나가면 길을 막아 버리고 맙니다.
사 59장 1절에서 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인간의 힘으로 청산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 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함으로 죄가 있는 사람은 큰 죄나 작은 죄나 할 것 없이 다 하나님 앞에 장애물 이 되어 하나님과의 연합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요 3: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인류의 모든 죄악을 다 청산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아버지 앞에 나와서 생수를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엡 1: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시고 2: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십자가에서 다 청산하신 것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생수가 우리 속에 넘쳐 나게 되는 것입니다.
슥 13: 1절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했습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입니다.
요 4: 13절에서 1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그의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생명의 샘물인 예수님만이 강 같은 평화, 샘솟는 기쁨, 넘치는 자유함, 강 같든 행복을 우리에게 갖다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마음속에 하나님 모시지 아니하면 그 속에 영적으로 굶주리게 되고 영적인 굶주린 사람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 소망 사랑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또 어떤 사람들은 등산객이 생수 한잔 마시고 가듯이 간헐적으로 성령의 생수를 마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성령의 생수를 마실 때는 은혜가 충만한 생활을 하지만 곧 생수가 고갈되면 옛사람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생수를 항상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생수는 내 안에서 영생토록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 4: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의 마음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은혜의 샘물이 고갈 되지 않도록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의 단비를 맞아야 합니다. 비가 계속 내리지 않으면 논밭에 있는 곡식들이 타 들어가고 소출이 줄어듭니다. 촉촉한 단비가 때에 맞게 내려 주어야 식물들도 살고 사람도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은혜의 생명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의 가지에 붙어 있는 것이고 나의 행위로, 의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자동적으로 맺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은혜 받기를 사모하고 늘 하늘의 신령한 샘물로 우리의 영혼을 적셔야 합니다. 이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예배인 것입니다. 성경은 예배를 혼인집 잔치 또는 돌아온 아들을 위한 기쁨의 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3. 물동이를 버려두고,
본문 28 절에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 합니다. 물을 가지고 가야 식구들이 먹고 생활하는데 그녀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러던 그가 우물가에서 예수님 만나고 거듭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혼 깊은 데서 기쁨의 평강의 자유함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그녀에게 물동이는 그의 지나간 과거였고, 어두운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진실로 예수를 만난 사람은 동네도, 사람도 겁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의 위대한 삶의 전환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변화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매어달리고, 사람에게 매어 달리며 살던 사람이 그것들을 떨쳐 버리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하나님 섬기며 살게 된 것이 참 변화입니다. 삶의 방향과 질이 달라진 것이 참 변화인 것입니다. 드디어 그녀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된 것입니다. 물동이는 마실 물을 옮기는 도구일 뿐 아니라 내면의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채우는 물동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고 아무리 많이 담아도 늘 부족한, 그래서 채우고 또 채워야만 되는 물동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시지프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사서 "바위가 늘 산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명령을 받아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밑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을 받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밀어올린 바위가 산곡대기에 멈추어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굴러 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정상에 올라가보니 너무 허무해서 공항장애가 오고 심지어 죽음으로 생을 끝내 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번은 TV를 보는데 바이올린을 잘타는 여자 청년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바이올린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데 그것은 세계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한 사람에게만 독일정부에서 2년 단위로 대여를 해주는 2억인가 3억을 호가하는 명품중에 명품 바이올린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도 아닌 한국국적의 이 자매한테 영구적으로 대여를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가 독일 정부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는데 환호와 박수갈채의 소리가 귀에서 끝나기도 전에 심각한 공항장애가 와서 1년을 죽을 생각만하고 집밖에 나가질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습니다. 채우면 없어지고 올라가면 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채우면 비워지고 채우면 비워지는 물동이를 이고 평생 살아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물동이는 필요가 없습니다. 여인은 이미 예수님이 주시는 샘솟는 생수로 자신의 영혼에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처지와 버려진 물동이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한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멀쩡하지만 사실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닌지요. 몸도 지쳤고 마음도 지쳤으며 신앙도 지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상처와 괴로움이 우리의 물동이가 되어 하나씩 붙잡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타인의 것과 비교하면서 때론 억울하게 빼앗기기도 하며 이리저리 채울 것을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새 삶을 주신 예수님을 기다린 만큼 여인이 만났던 그 예수님을 이제 우리가 만나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던 그 물동이를 과감히 버리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워 나가십시오. 그래야 우리는 붙잡고 있던 물동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4. 와서 보라.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던 그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발걸음 가벼웠을 것입니다. 어깨는 덩실거렸을 것이고, 입에선 노래가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감격의 이슬이 맺혔을 것입니다. 전부 이런 체험이 있으시지요? 없다면 수가성 여인이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자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여인은, 성도 또는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주님이 제자도 주님께서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라고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은 그리고 자기 앞에 계신 분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믿어지는 순간, 너무나 벅찬 감동이 찾아 왔습니다. 마음속에 생명의 샘물이 흘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자유 함이 물밀듯 찾아 든 것입니다. 이제 그 여인은 마음속에서부터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 생수의 근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동이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토록 집착 하고 추구하던 세상 것이 시시해 졌습니다. 그야말로 주님과 주파수가 맞아 주님이 음성을 제대로 듣고 깨닫고 보니 영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보니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불상해 졌고 전달하고 싶어졌습니다.
-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말했습니다.
29절을 보면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은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그날 그 여인의 간증과 증거 때문에 39절을 보 면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42절입니다. 예수를 믿게 된 사마리아인들이 그 여자에게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 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했습니다. 그야말로 죄 많고 상처투성이 팔자 센 수가성 여인은 그날 우물가에서 예수님만나 인생에 대박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여인 뿐 아니라 사마리아 동네에도 일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땅만 알았던 사람이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 알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영적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며, 인생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수가성 여인이 바로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역사가 오늘 저와 여러분 에게 동일하게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