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
눅2:25-32
유대인에게서 믿음이란 메시아 대망으로 요약합니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혹은 로마의 침략으로부터 2천년동안 나라 없이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아오던 그들이 선민으로 특권의식을 누려
올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아 대망의 신앙입니다.
사람만이 약속이 가능합니다.
약속된 미래가 있고 그 약속을 기다리는 현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미래와 현재의 긴장관계 속에 있고 미래를 현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 약속된 미래의 희망 때문에
오늘을 인내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롬8:18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개혁자 죤 칼빈은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말씀을 무려 스물다섯번이나 암송을 했다고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 30:18)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므온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의 기다림은 곧 믿음이요, 기다림은 사랑이요 기다림은 또한 소망입니다.
약속을 믿지 않고야 어찌 기다리며,
사랑하지 않고야 어찌 누가 기다리며,
소망하고 바라지 않는 자를 어찌 기다리겠습니까?
오늘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믿고 사랑하고 소망하는 자는 어떻게 살까요?
첫째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5절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메시야를 기다리는 기다림은 기다리는 이로 하여금 더욱 경건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만남의 감격을 더해줄 것입니다.
신심을 가진 신자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믿음을 가진 경건한 사람입니다.
시므온의 직업이나 나이 그의 주소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만 소개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소개될 때도 역시 의롭고 경건하다고 하였습니다.
대강절을 지키는 저와 여러분,
메시야를 기다리는 가운데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의 감동과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6-27절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기다리는 사람은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보리라’는 성령의지시를 받게 됩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성령이 함께하시고 성령이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마침내 기다리는 메시야를 만나게 되는
축복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감격 속에 찬송하고 메시야를 증거하는 자가 됩니다. 28-32절
기다리는 사람에게 감격이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감격 그를 가슴에 품는 감격이 있습니다.
주께 찬송과 경배를 드리며 그리고 열방에 메시야를 전할 것입니다.
현실은 어둡고 절망스럽지만 이방에 빛이요.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이신 예수를 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빛이요. 이스라엘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은 ‘이제 종을 놓아 주시는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행복의 절정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신 것 때문이 아니라
기다리던 그분을 만난 것만으로 그는 감격입니다.
더 이상 아무런 소원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다림이 있나요?
시므온처럼 메시야를 기다리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경건하게 살게 되기 바랍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받으며 살기 바랍니다.
기다림 가운데 메시야를 만나는 감격과 진정한 경배와 찬미를 통해
그리스도를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