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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적]마음의 보석/ 『가난한 사람들』 리뷰

작성자이장|작성시간13.01.02|조회수155 목록 댓글 0

 

 

 

  <수필>

 

  마음의 보석

 

  이승하 프란체스코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는 러시아의 소설에 특히 많이 나온다. 그 가운데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출세작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마카르와 바르바라의 순애보는 사춘기 시절의 나를 울먹이게 한 작품으로,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책 중의 하나이다.

 

  1986년 무렵을 생각하면 궁핍ㆍ곤궁ㆍ빈한 등의 낱말이 바로 연상된다. 보릿고개가 사라진 지 오래이니 끼니를 거를 정도의 가난은 아니었지만 장가 갈 돈이 수중에 단돈 10만 원이 없었으니 말이다. 대학원 시절이었다. 조교 생활을 하면서 받은 월급을 모아 등록금을 내고 하숙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도서 구입, 자료 복사, 논문 발간에 웬 돈이 그리 많이 드는지. 소도시 문방구점 자식이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무리였고, 사랑에 빠져 결혼식을 한 것은 더욱 무리였다. 드러내놓고 얘기할 만한 것이 아님을 알지만 이제부터 1986년도에 내가 치러낸 동 키호테식 통과의례를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한다.

 

  그 전 해의 가을에 누이동생이 반년 동안 입원을 해 있어 매월 50만 원씩의 입원비가 들어갔는데 퇴원한 뒤에도 통원 치료를 계속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만년 실업자요 어머니가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하고 있었다. 집안에 이런 우환이 생겨 가세가 기운 터에 학비를 운위할 수가 없었다. 보태 드릴 수 없는 처지가 오히려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휴학하지 않고 빨리 졸업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3차 학기에서 4차 학기로 넘어가는 여름방학 때 논문의 자료를 모으고 초고를 써나갔다.

 

  학교 옆 하숙집에서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는 나날이니 데이트 장소는 자연히 캠퍼스의 벤치거나 사람 많은 거리였다. 아내가 된 이가 나를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에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용인 자연 농원ㆍ과천 현대 미술관ㆍ강화도 전등사ㆍ춘천 공지천ㆍ교외선을 타고 가다 내린 이름 모를 곳에 한 번씩 갔었던 것이 서울을 벗어난 데이트의 전부였고, 그나마 전부 그녀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으니까.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크나큰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내게 연애는 실로 부담스러운 노역(?)이었다. 부담스러운 노역이라면 빨리 끝내는 것이 상책이리라. 우리는 해가 가기 전에 결혼하자고 약속했고, 날짜도 양가 부모님께 상의도 드리지 않고 우리끼리 정해 허락을 받아냈으니, 두 사람 다 천하의 막돼먹은 자식이었다. 날짜를 11월 29일로 정한 것은 내가 영세를 받은 흑석동 명수대성당과 그녀가 영세를 받은 명동성당의 혼배미사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명동성당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토요일 오후가 혼배미사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무작정이요, 막무가내요, 저돌적이요, 초스피드의 결혼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와중에 약혼식을 했으니 하느님이 웃었으리라. 양가 부모님께 “그간 이런 사람과 교제해왔으니 결혼을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기도 전인 9월의 어느 평일이었다. 우리는 학교 앞 보석상에서 두 돈의 금을 사 금반지 두 개를 만들었다. 조금 굵은 반지의 안쪽에는 ‘혜윤ㆍ승하 86.9.28’이라고 적혀 있었고, 조금 가는 반지의 안쪽에는 ‘승하ㆍ혜윤 86.9.28’이라고 적혀 있었다. 약혼식도 의식이니 증인이 있어야 하고 식장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스승의 시구 그대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하오에 명수대성당 2층의 예배실로 살그머니 올라갔다.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제일 앞쪽에서 미사포를 쓰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가슴이 마냥 두근거리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분은 십자가에 매달린 앙상한 몰골의 예수상과 사랑의 실천을 변함없이 들려주시는 마리아, 단 두 분이었다. 우리는 두 분 증인 앞에서 기도를 드렸고, 죽는 순간까지 부부의 길을 가자고 약속했고, 반지를 서로의 손에 끼워주었다. 이 두 분이야말로 우리들의 서약을 지켜본 최고의 증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넓고, 조용하고, 경건한 실내는 또한 최고의 식장이 아니었던가. 그때의 반지를 두 사람은 지금껏 끼고 있다. 나는 이 가느다란 금반지를 어느 한 순간도 손가락에서 뺀 적이 없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반지이지만 그 어떤 보석보다 더 값지다고 믿고 있기에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을 잠시 회상해보았다.

 

 

  <독후감>

 

 『가난한 사람들』 리뷰 

 

  loveisni

 

  오늘은 피에르 쇼데르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에 이어서 또 다른 서한체 소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에 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1844년부터 1845년 그의 나이 스물네 살에 완성한 이 소설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처녀작입니다. 그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문단에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러시아어라 번역된 책을 읽었는데도 깔끔한 문체와 확고한 주제의식으로 깊이감이 있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삶에 관한 그의 생각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대문호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이 든 가난한 하급 관리 제부쉬낀과 혼자 남겨진 가난하고 병약한 처녀 바르바라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소설입니다. 우선 표면적인 내용을 바라보면 가난한 중년의 하급관리인 제부쉬낀이 그보다 힘들게 생활하는 그의 먼 친척인 바르바라를 도와주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하고 그 당시의 문학작품들에 대한 자기의 생각들을 은연중에 작품 속에 넣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심리묘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몸에 붙은 진흙을 좀 털어 내고 싶었지만, 수위인 스네기료프는 옷솔이 망가진다며 안 주더군요. "나리, 이 옷솔은 관청 물건입니다요." 하면서요, 저들이 이제는 어떻게 나오는지 아시겠죠, 저는 높으신 분들에게 발이나 문지르는 걸레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바렌까,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근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p.153)

 

  사랑에 빠진 제부쉬낀은 바르바라를 돕기 위해 값이 저렴한 시끄럽고 허름한 하숙집으로 옮기고 집안의 물건까지 팔고 월급을 선불로 받기까지 이릅니다. 결국에는 당장 한 잔의 차를 마실 형편도 안 될 만큼 상황이 악화됩니다. 소설 중반이후부터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바르바라에게 사실대로 현재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내면적 고뇌를 편지에 적기 시작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매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앞의 글은 각하 앞에 서야 하는 관리라 단정한 옷차림을 필요로 하는 제부쉬낀이 옷솔조차 마련하지 못해서 수위에게 부탁하지만 거절당하는 장면을 적어놓은 글인데 마지막에 자신이 가난하여 힘든 것도 있지만 사실 그 불편함보다 주변의 시선이 더 힘들다는 속사정을 풀어놓은 구절입니다. 이것 말고도 그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당시에 소설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표현한 것에 비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들의 실제 삶 속으로 들어간 듯 적나라하게 그들의 내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문학이라면 셰익스피어가 있지, 그런 대가도 무시할 테야!’라고 윽박지르며 셰익스피어의 작품 따위로 당신의 말문을 막으려 들어도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요, 셰익스피어도 다 엉터리예요. 말짱 헛거라고요, 추잡스런 얘기나 늘어놓으려고 쓴 것들뿐이라고요!(p.133)

 

  또한 바르바라는 가난하지만 뿌쉬낀을 읽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성숙해있는데 비해서 제부쉬낀은 양질의 책을 접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하숙집에 있는 3류 연애소설가 라따자예프의 책을 읽게 되면서 조금은 편협한 문학적 편견을 갖게 됩니다. 그로 인해 셰익스피어보다는 라따자예프가 쓴 소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바르바라가 보내주는 좋은 책들을 라따자예프가 쓴 소설보다 못하다고 얘기합니다. 위의 문장은 그 중 한 구절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는 하급관리로써 그의 일이 정서(正書)를 하는 것이지만 돈이 없어 기본적인 교육도 못 받았다고 얘기하며 바르바라가 보내주는 책들을 형편없다고 비판합니다. 사실 라따자예프가 셰익스피어보다 나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써 있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일을 하면서도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표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걸 넘어서 심리묘사를 했듯이 이런 글을 쓰면서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달라는 신호탄을 던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두 가지의 위대한 점 외에도 문장의 흡입력과 깔끔한 전개가 돋보이는 좋은 작품입니다. 이밖에 그의 대표작 『죄와 벌』『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백치』『악령』 등 수많은 작품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습니다. 실제 그의 사생활은 혹독하고 비참한 수용소 생활, 아내의 죽음, 도박 등으로 얼룩졌지만 그런 시련을 오히려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서 21세기인 지금도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을 좋아하는 분들께 이 초기작을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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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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