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고리키 자전적 3부작은 러시아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자전적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고리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들어 있지 않아 엄밀히 말해 완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이 3부작은 고리키 문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그의 성장과정과 삶, 인간과 인생 그리고 세계관을 잘 그려내고 있다.
『나의 유년』『세상 속으로』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어린 시절은 생계를 위해 갖가지 궂은일을 마다할 수 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고리키의 정신세계는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외할머니의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경건한 신앙심 속에서 넓혀져 갔고, 일찍부터 눈뜬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성장해 갔다.
저 : 막심 고리키(Максим Горький,본명 : 알렉세이 페쉬코프)
1868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나, 1877년에 니즈니노브고르도 쿠나빈스코예 학교에 입학했다. 11살 때부터 생계가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세상 속으로』들어갔으며,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어린 나이에 제화점 점원, 화공도제, 기선주방일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1884년, 16살이 된 고리키는 대학진학의 희망을 품고 카잔으로 떠났고, 1892년까지 러시아 남부 전역과 남 베사라비아, 크림과 카프카즈를 포함하는 러시아 순례를 하면서 시골 품팔이, 어부, 기선의 접시닦이, 철도원 등으로 일했다.
1892년『카프카즈』신문에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소설「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했다. 1895년부터 1896년까지『사마라 신문』의 주필로 일했고 바로 그 신문에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약 200편의 칼럼, 르포, 평론, 그리고「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1896년에는 당시『사마라 신문』의 교정원이었던 에카테리나 파블로브나 볼쥐나와 결혼했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 고리키는 『니줴고로트스키 리스토크』신문사에서 일했으나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1897년 아내와 함께 남부지방으로 이주하였다. 1898년 초, 고리키는 다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 돌아와『르포와 단편소설』 1,2권을 집필하여 출간하였고,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비평가들은『르포와 단편소설』의 출현을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사건, 작가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순간으로 평가하였다.
러시아 사회문화의 주요 인사가 된 그는 체호프, 레핀, 샬라핀, 메레쥐코프스키, 안넨스키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으며, 이외에도 안드레예프, 부닌, 쿠프린, 베레사예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 군과 가까이 지냈다. 1898년 가을부터 잡지『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된 고리키는 1900년 9월부터는 출판공동체 ‘즈나니에’를 운영하였고, 1904년부터 1913년 폐간 때까지 새로운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문학 선집을 40권을 출판했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서 활동하였으며, 희곡「밑바닥에서」의 초연은 체호프의「갈매기」와 함께 러시아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하였다. 1905년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거쳐 1913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첫 망명 기간 동안 사회평론을 포함하여『어머니』『고백』『필요없는 인간의 삶』『여름』『마트베이 코줴먀킨의 삶』『나의 유년』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다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1924년까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류하였고, 1925년부터는 역사 서사시「클림 삼긴의 삶」의 집필을 시작했다. 1928년 5월 소련으로 돌아온 고리키는 잡지『우리들의 업적』과『문학수업』을 창간하였으며, 193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출판사 리뷰
인간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격한 몸부림
좌절과 방황 대혼란에 빠진 러시아 민중을 향한 무한한 애정
인생 밑바닥에서 탄생한 위대한 문학!
막심 고리키의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이다. 고리키는 한때 밑바닥 생활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 시대 전 세계 문학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한 경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아홉 살 때부터 넝마주이가 되었고, 곧 집을 떠나 구둣방 보조, 디자이너 수습생, 성상화가 보조, 증기선 보조요리사, 제과점 점원, 짐꾼, 변호사 사무실 서기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이어갔다. 그 비참하고 쓰라린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해, ‘쓰라림’이라는 뜻의 ‘고리키’를 필명으로 삼았다.
어렸을 적부터 인생 밑바닥에서의 처절한 경험은 자전적 작품 가운데 첫 번째인『나의 유년』에 거의 그대로 담겨 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고리키라는 작가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문학 가장 뛰어난 자전적 최고 작품!
1913년부터 1923년까지 10년 동안, 고리키의 가장 위대한 걸작인 자전적 3부작『나의 유년』(1913~14),『세상 속으로』(1915~16),『나의 대학』(1923)이 발표되었다. 고리키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다룬 방대한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러시아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자서전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고리키는 늘 카잔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 했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권의 제목은 퍽 냉소적이다. 고되고 비참한 삶 속에서 모든 것을 배운 그가 다닌 대학은 ‘인생 대학’이므로.
고리키 자전적 3부작은 러시아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자전적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고리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들어 있지 않아 엄밀히 말해 완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이 3부작은 고리키 문학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그의 성장과정과 삶, 인간과 인생 그리고 세계관을 잘 그려내고 있다.
『나의 유년』『세상 속으로』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어린 시절은 생계를 위해 갖가지 궂은일을 마다할 수 없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고리키의 정신세계는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외할머니의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경건한 신앙심 속에서 넓혀져 갔고, 일찍부터 눈뜬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성장해 갔다.
삶의 신비와 잔인함, 그리고 미묘함에 경탄!
러시아 농민은 농노해방으로 봉건적 신분질서의 속박에서는 벗어났으나, 어느 면에서는 농노 때보다도 더 가혹한 경제적 소외를 겪어야 했다. 더욱 낯설고 혹독한 자본주의경제질서가 차츰 퍼져 가는 새로운 체제 속에서 폐농과 이농이 이어져 가고, 농촌에서 도시로 내몰리는 가운데 단지 임금을 받는 노동자 신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돈’이라는 괴물에 얽매여야 하는 가난한 하층민 노동자들은 갈수록 황폐해지는 인간성과 무의미한 일상생활을 겪으면서 무기력과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좌절과 방황에 빠져 있던 고리키는 마침내 카잔에서 진보적인 인사들과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새로이 지적으로 눈을 뜨게 됐고, 그때까지 느꼈던 수많은 갈등과 회의를 떨쳐 버릴 수 있었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나의 대학』에 바로 이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무거운 철학적 경향을 탈피하고 다소 외향적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고리키 강인한 내면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가족과 수많은 고용주들, 그리고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의 삶을 날카로운 관찰력과 판단력으로 낱낱이 묘사하고 있다. 또한 삶의 신비로움과 잔인함, 그리고 미묘함에 대한 경탄으로 가득하다. 고리키는 옛날처럼 삶을 해명하거나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공공연한 설교라기보다는 넌지시 암시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고리키는 이유 없는 잔인함을 분쇄하려 하고 강인함과 자립의 중대함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근면성의 가치를 수사학적 문장으로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인간긍정주의 문학관 그 예술적 형상화!
고리키 자전적 3부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이다. 다시 말해 계급을 이루거나 계급의식으로 묶여 있지는 않지만 임금노동자로 정착되기 직전의 실업자나 떠돌이들이다. 그들 의식 속에는 원시적인 인간의 자유, 온갖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려 하는 갈망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당장 올바른 출구를 찾을 수 없다보니 잔인함과 탐욕, 무절제한 음주 등 비뚤어진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곧 어린 페쉬코프의 순진한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무렵 러시아 사회의 좌절과 침체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좌절과 침체를 바라보는 페쉬코프의 시각이다. 그들은 암담하고 침체된 상황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건강한 꿈과 생활을 간절히 바란다. 이들은 곧 의식이 깨치고 발전하면서 잇달아 닥칠 러시아 사회변혁 주체세력으로 우뚝 설 사람들로서 더 이상 허무와 무정부적 방종에 머무르지 않고 차츰 임금노동자로 확고하게 신분이 바뀌면서 사회모순을 스스로 해결하는 힘이 된다.
이런 것 말고도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작가의 철저한 인간긍정주의, 곧 긍정적 인간관이다. 고리키는 인간을 우주의 주체로 생각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인간 속에 있고,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고리키 창작정신의 중심을 이룬다. 인간관과 문학관이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이처럼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반영과 애정으로 나타나 있는 작품, 이것이 바로 고리키 자전적 3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