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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것도 검은 것 옆에 있으면 검게 된다...속이 시켜만 사람이 판치는 세상은 어둡다

작성자우화등선|작성시간21.05.13|조회수1,608 목록 댓글 0

흰 것도 검은 것 옆에 있으면 검게 된다...속이 시켜만 사람이 판치는 세상은 어둡다

 

 

 

 

백로와 까마귀가 동시에 등장하는 시조 중에 포은 정몽주의‘가마귀 싸호난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와 형재 이직의‘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시조가 있다.

 

 

 

 

 

가마귀 싸호난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셩낸 가마귀 흰빗찰 새올셰라

청강(淸江)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어머니가 아들 포은에게 알려준 시조이다.

 

 

포은은 불행하게도 모친으로부터 이런 시조를 전할 만큼 경고를 듣고도 이성계의 문병을 갔던 길에 이방원과 만나서 하여가(何如歌), 단심가(丹心歌)를 나누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선죽교에서 조영규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지기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시셈할세라

청강에 이제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두렵구나

 

까마귀의 걸음을 더러움으로 받아들이고 백로의 외양의 흼을 깨끗함으로 받아들인 시조이다. 그리고 깨끗함과 정의(正義)와 선(善)의 상징인 백로는 당연히 더러움, 불의, 악을 상징하는 까마귀와는 상존하지 말아야한다는 전제가 깔려져있는 시조라고 볼 수 있다.

 

 

까마귀의 상징은 빛깔, 내면, 습성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가마귀 싸호난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의 이 작품을 살펴보면 까마귀의 검은색을‘부정적(否定的)’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관습적으로 검은색은‘악(惡)’한 것이며 이에 반해 흰색은‘선(善)’한 것이라는 이분법에서 가마귀의 싸오난 골의‘골’은‘싸움터’이며 청강의 잇것 시슨은‘순수한 공간’임을 드러낸 시 구절이다.

 

까마귀의 상징적 의미를‘부정적 대상’으로 본 것이다.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이 작품을 보면 검은 까마귀를 비유하는 하얀 백로에 초점을 둔 시조이다. 겉과 속, 외양과 심성, 가문과 개인 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백로의 비웃음을 통해 드러낸 시 구절이다. 이처럼 화자의 냉소와 관찰을 통해 겉만 보고 남을 성급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성찰하라는 화자의 의도가 검은 까마귀와 하얀 백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가마귀의 상징적 의미를‘긍정적 대상, 겉과 속이 같음’을 말해주고 있다.

 

 

흑백의 정해진 틀 안에서 검은 까마귀는 판단이 불필요한‘부정적 상징’으로 단정한 시조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까마귀의 상징적 의미로 부정적 대상을 말한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는 백로가 검은 까마귀와 어울리지 않도록‘경계(警戒)’하라는 의미로 썼다. 포은 정몽주 어머니가 아들에게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들에게 백로와 까마귀를 빗대어 아들을 걱정하며 나쁜 세력들이 너를 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에서 아들 포은 정몽주에게 당부한 글이다.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것치 거문들 속조차 거믈소야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슨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형재(亨齎) 이직(李稷)이 지은 것이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개국에 명분상으로는 반대하지만 실제로는 출사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선비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겉은 희지만 속은 검은 생각으로 차 있는 백로에 빗댄 조롱조의 시조이다.

 

 

 

 

흑과 백

Black & White

 

흑(黑)과 백(白)은 무채색의 서로 대비되는 양극을 이루는 색이다.

 

두 색이 서로 색깔의 양극이니 당연히 두 색이 주는 이미지나 느낌도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백과 흑이 주는 대조적인 이미지는 남(南)과 북(北) 이렇게 이념과 사상적으로 구분하듯이‘선(善)과 악(惡), 정(正)과 사(邪), 옳음과 그름, 깨끗함과 더러움, 정의(正義)와 불의(不義)’등으로 나타난다.

 

색이 만들어진 색채논리를 보면 재미있는 것은‘흑과 백, 검음과 흼’둘 다 색과 빛의‘삼원색(三原色)’이라는 사실이다. 각각 혼합한 색이라는 것이다.

 

색의 삼원색인‘빨강, 노랑, 파랑’을 섞으면‘까망(흑색)’이 되고 빛의 삼원색인‘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하양(흰색)’으로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흑백의 대조와 그 대조가 가지는 선악(善惡), 정사(政事)의 이미지를 순백의 새인‘백로(白鷺)’그리고 순흑의 새인‘까마귀(烏.玄烏)’에 대비를 시켜왔다.

 

 

백색과 흑색의 의미를 살펴보면 흰색은‘거룩, 순결, 순수, 순진무구, 우아함, 숭고함, 청결, 정화, 정직, 고독, 공허, 차가움, 외로움, 무의미, 무념, 희생, 평화, 통합, 기도, 용서, 죄책감, 완벽한 완전, 엄숙함, 구원, 천사, 신성, 영광, 권위, 위엄, 건강’을 상징한다. 흑색은‘어두움(암흑), 죽음, 공포, 위정자, 사단, 악(악마), 부정, 무의식 상태, 저항심, 장엄함, 슬픔, 우울, 마술, 사나움, 병, 불운, 신비, 숨겨진 일, 비밀스러운 것, 어둠에 거하는 것, 어둠의 세력, 권의의식’을 나타낸다.

 

흑색은‘깜깜, 까맣다. 캄캄, 컴컴, 암암하다, 깜깜하다, 까맣다. 거멓다, 검다, 감감무소식’따위로 표현한다.

 

됨됨이가 없고 진실성이 없는 사람을 두고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속이 검은 사람’이라고 한다. 까마귀는 백로와는 달리 좋지 않은 이미지의 새로 여기고 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 더러운 사람, 우멍한 사람, 엉큼한 사람, 엉뚱한 사람, 음침한 사람, 사심을 품은 사람, 사기꾼, 거짓말쟁이, 속이는 사람, 진실성 없는 사람, 줏대 없는 사람, 약삭빠른 사람, 사악한 마음을 먹은 사람, 남을 헤치는 사람, 남의 등쳐먹는 사람, 이중인격자,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입만 뻥긋한 사람, 양심불량인 사람, 양심가책 느끼지 못한 사람, 뻔뻔한 사람,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질 않은 사람,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의리 배반하는 사람,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 철면피, 모사꾼, 해방꾼, 양아치를 시쳇말로‘속이 검은 사람(a wicked person, evil-minded black-hearted) 또는 속이 시켜한 놈’이라고 한다.

 

또한 따끔이 속에 빤질이, 뻔질이 속에 털털이, 털털이 속에 얌얌이 이것은 밤(栗)을 두고 한 말이다. 밤을 먹기 위해서는 따끔따끔한 가시를 벗겨야하고 두껍고 빤들빤들한 껍질을 벗겨야하며 그 뒤에는 작은 털이 달린 껍질을 다시 벗겨야하고 맨 마지막으로는 떫은맛을 지닌 속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마침내 고소하고 오돌오돌한 밤을 얌얌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겉 다르고 속 다를 때가 있다. 아니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참 드문 일이 되었다. 어디서고 가면극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에는 겉보기와는 달리 음흉하고 험악한 속내를 감추고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음험(陰險)한 생각을 숨기고 있는 사람, 겉으로는 천덕스러우나 속으로는 엉큼하고 무지 미련하고 포악 험상궂은 우악하는 음비(淫非)한 사람을 말할 때 쓰인다. 낚시 바늘을 보면 바늘 뒤편에 살짝 되 고불어진 부분이 있다. 이른바‘미늘’인데 바로 그 미늘 때문에 고기는 걸려든다. 마늘 때문에 물고기는 바늘로부터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된다. 겉으론 웃지만 뒤편에 미늘을 숨긴 채 다가오는 사람이야말로‘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할 수 있다.

 

 

우리 속담 중에‘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는 속담이 있다. 허름한 옷 입었다고 당연한 듯 무시해서도 안 될 일이다. 비단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무조건 검은 속을 의심할 건 아니지만 비단 옷 입고 비단 같은 말을 한다하여서 무조건 믿을 일 또한 아니다.

 

 

꿈에 까마귀가 나타나면 대체적으로 악몽(惡夢)으로 해석한다.

 

까마귀가 근처에서 우는 꿈은‘자신이 하는 일들이 꼬이게 되고 불운이 찾아오게 된다’고 한다.

 

까마귀들이 싸우는 꿈은‘자신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집으로 까마귀가 날아드는 꿈은‘좋지 않은 슬픈 소식 등을 전해듣게 되거나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집에 오게 된다’고 한다.

 

까마귀 떼가 날은 까마귀 꿈은‘좋지 않은 일이 생김으로 매사에 조심하고 행동에 주의해야한다’는 암시이다.

 

 

까마귀가 떼를 지어 찾아와 우는 것은‘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우환이 생길 징조’라고 한다.

 

까마귀가 계속 우는 것은‘누군가가 자신을 헐뜯게 되어 관계에 있어서 잡음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까마귀 떼가 날아가는 것은‘여러 면에서 일이 풀리지 않고 적을 만나게 됨을 뜻한다’고 한다.

 

 

속이 검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고 활개를 치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들며 앉는다면 우려를 아니 할 수가 없다. 속이 시켜만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더러 찾아볼 수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세상은 밝지가 않다.

 

백로처럼 흰 까마귀를 보는 행운도 생기는 그런 세상이 된다면 참참 좋으련만 흰 까마귀는 흔하지 않은 새여서 행운을 빌며 소망을 해볼 뿐이다.

 

 

 

 

 

흰 까마귀를 보면‘놀라울만한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거나 하는 일에 있어 사업이 번창하거나 귀인을 만나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까마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거나 집에 슬픈 비보가 날아드는 것을 예견한다고 하니, 까마귀가 물건을 물고 사라지는 것은 재산이나 재물에 손해를 보거나 또는 자신도 모르게 재물에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하니, 행어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함이다.

 

 

까마귀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어서 까마귀를 잡아 집에 가두는 것은 불길했던 일이 해소되어 큰 행운이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 꼭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 좋은 면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위안을 삼고 싶고, 까마귀를 잡아 집에 가둬두는 것은 복잡했던 골칫거리가 해결되고 가정에 평화가 오는 것을 의미하는 꿈으로써 길몽이라니 그런 꿈을 꾸길 바랄 뿐이다.

 

 

 

 

 

 

 

 

 

 

 

 

 

 

 

 

 

 

 

 

 

 

 

 

 

 

 

 

 

 

 

 

 

 

 

 

 

 

 

 

 

 

 

 

 

 

 

 

 

 

 

 

 

 

 

 

 

 

 

 

 

 

 

 

 

흰색을 지니고 있어 산선의 새로 여기는 백로는 까마귀에 비해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천연기념 같은 존재다. 백로가 들녘에나 나무 위 또는 강가에 물고기를 잡아 먹기 위해 노닐거나 강과 들판 위를 날아가는 광경은 멋진 풍경으로 자연의 멋을 풍기는 한가로움을 자아내주고 있다. 

 

백로는 선의 새로 까마귀는 악의 새로 비유한 포은 정몽주 어머니의 '가마귀 싸호난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는 시조는 전형적인 풍경을 그려내면서 두 새를 거론하며 아들에게 생길 일에 걱정을 해준 인상적이고 멋스러운 표현의 글이다.       

 

 

백로의 우화한 날개 짓, 백로의 멋지고 아룸다운 자태는 우리의 모습이길 바래 본다.

 

 

 

 

 

 

 

 

 

백로는 온몸이 희고 연못이나 논이나 강가에서 물고기나 개구리를 잡아먹고 살지만 까마귀는 온몸이 까만데다 울음소리도 흉측하고 먹이는 잡식성으로 박쥐마냥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하는, 채소 먹었다 고기 먹었다하는, 길가에 죽은 짐승 시체를 먹는 까마귀이다.

 

 

 

 

백로와 까마귀를 통해서 깨닫는 것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부패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길을 가더라도 같이 묻어가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며 백로처럼 흰 마음이 잘못하여 까마귀처럼 검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밝지 못하고 어두워지며 정도에서 벗어나 세상이 부패가 들끓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악의 세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까마귀가 울음소리를 내며 날은 모습에 불길하게 생각하듯이 속이 검은 사람이 활개를 친다면 이 또한 불길한 징조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김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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