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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붓으로 담아내요...사진보다 더 느낌 좋은 산수화 그려낸 유성안 화백

작성자우화등선|작성시간22.06.13|조회수603 목록 댓글 0

풍경, 붓으로 담아내요...사진보다 더 느낌 좋은 산수화 그려낸 유성안 화백

 

무주 구천동 청송암, 영월 동강,  남원 구룡폭포                       

서울 도봉산 진경산수, 북한산 노적봉 스케치

 

"그의 손끝에 별볼일 없는 자연도 아름다워라"

 

우리가 본 자연, 유성안 화백의 예술에 꽂히다

 

 

산에 오를 때 남들은 스틱을 들지만 붓을 든 사람이 있다.

 

산악인은 스틱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하지만, 화가는 붓으로 산을 그려내며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찾아다니지만, 카메라가 아닌 붓을 들고 다닌다. 카메라는 기계에 의한 기술적 예술이지만, 붓은 손에 의한‘인간적’예술이다.

 

손끝에서 그려진 그림은 카메라와는 달리 감정과 감성이 그대로 전달된다. 내 체온과 정신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그대로 손끝은 작품으로 말해준다. 기술과 기기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미래를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지만 그것은 외면의 작업일 뿐 내면의 작업은 아니며, 기술이 미래를 바꾼다지만 붓으로 그린 작품 등은 세상을 더 멋지게 한다.

 

화가들의 작품을 일반주제와 정책주제로 구분한다면 일반주제는 아름다운 산과 숲, 나무, 바위, 강, 들 , 꽃 등을 통해 자연에서 찾은 새로운 일상을 표현한 손수 그린 작품을 말한다. 반면 정책주제는 산림휴양, 산림치유, 나무심기, 숲가꾸기, 산불예방 및 진화 등 주요 산림정책과 관련된 사진을 말한다.

 

모든 작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 작품으로 표현한다. 여기에는 유성안 화백도 그 중 한사람이다.

 

감성이 예민한 예술가에게 사랑은 자극이자 모험이다. 사랑만큼 감성과 직관을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는 드물다.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 담긴 에로스적 에너지에는 사랑을 향한 맹목적 투신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한다. 김현식의 노레 가사처럼 사랑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소소한 시간이다. 그런데 그 소소한 사건을 겪는 순간 특별해진다. 그렇다 화가들에게 사랑은 유별나다. 평범하고 별 볼일 없던 하루하루가 나만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엑스트라로 들러서준다. 그렇게 사랑은 나라는 존재를 값어치 있게 만들어준다. 한편 사랑은 숨어 있던 감성을 표면으로 이끌어 내준다. 덤덤하던 사람도 삼라만상의 움직임이라든지 세상의 변화에 조금씩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화가들의 자연 사랑은 작품에 빠지게 한다. 사랑의 감성은 예술이며, 그 예술은 온 세상을 사랑으로 물들게 하고 있다. 작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작품에 반하고 몰입되고 만다.

 

유 화백은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알아보고 작품 활동에 활발히 하고 있다. 그림 사랑에 빠진 유 화백이다.

 

유 화백은 자연을 담아내면서 공백을 드러내고 그것으로부터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마치 예술이 아름다움에 관한 고정관념을 해체한 뒤에 도달한 공허의 장소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미(美)를 청조해내려고 시도한다.

 

승화라는 것은 한 마디로 어떤 사물과 대상을 큰 사물 자리로 격상시키는 것이기에 큰 사물의 자리를 피하고 다른 사물에 욕망을 묶어 놓는다. 그것이 돈이나 이성, 집, 미래와 같은 것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유 화백은 공백을 두고자하며 큰 사물을 만날 수 있는 공백에 도달하면 결국 남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만 남게 된다.

 

자신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고 공간에 대해서도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보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유 화백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승화와 개념이다.

 

모든 자연이 작품으로 승화되는 유 화백의 손기술, 카메라에서 탄생한 작품은 기술적 변장술로 감성이 메말라 보이지만 유 화백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은 인간적 변장술로 풍성한 감성을 읽어볼 수 있다.

 

“풍경을 붓으로 담아내요”하며 사진보다 더 느낌을 갖게 만든 산수화를 그려낸 주인공은 바로 유성안 화백이다.

 

레슬링 국가대표선수였던 유 화백은 그라운드가 아닌 작가로서의 자연을 자신의 작업장으로 삼고,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산과 들과 강 등을 찾아 이젤을 펼쳐놓고 화선지에다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유 화백은 어느 날엔 전북 무주 구천동 청송암, 강원 영월 동강, 전북 남원 구룡폭포, 서울 도봉산 진경산수, 북한산 노적봉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화폭에 담아냈다.

 

 

 

 

그가 보여준 그림을 보면 덕유산이 있는 무주 구천동‘청송암 천년소나무’를 넝쿨로 만든 갈필 붓으로 기암괴석 꼭대기에 어엿한 자태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화폭에 담아냈다. 바위 꼭대기에 서 있는 소나무는 운치의 극치라고 할 정도로 보는 순간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유 화백은 이런 점에서 자연을 화폭으로 옮겨 독자들에게 감상하게 한다.

 

 

 

 

청송암은 무주 구천동 33경 중 11경의 하나인 파회에 위치하며, 구천동 3대 명소 중 하나이다. 고요하게 흐르는 계곡물이 큰 바위에 부딪치며 이리저리 뱀 모양을 그리며 흘러내려가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곳에 큰 바위가 있는데 바위위에 큰 소나무가 오랜 세월 동안 하나가 되어 모진비바람과 숲이 없는 바위에서 천년동안 살아왔다하여‘청송암(靑松巖)’이라고 부른다. 청송암은 인근 계곡과 옅은 안개 속에서 수묵화를 그린다.

 

우뚝 솟은 기암에 소나무 한 구루가 뿌리를 내린 청송암이 홀로 무주 구천동을 벗하고 있다.

 

 

또한 강원 영월‘동강(東江)’을 화폭에 담아냈다. 동강은 길이는 약 65Km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이 합류하여 흐르는 강이다.

 

 

 

완택산과 곰봉 사이의 산간지대를 감압곡류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월군 하송리에서 성강과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들게 한 동강은 유역은 4억 5000만 년 전에 융기되어 ㅎ여성된 석회암층 지역으로 약 2억 년 전에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고, 현재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침식작용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동강 유역에는 지표운동과 지하수.석회수의 용식작용 등으로 인해 많은 동굴이 형성되었다. 이런 지형을 하고 있어 동강은 수달.어름치.쉬리.버들치.원앙.황조롱이.솔부엉이.소쩍새.비오리.흰꼬리독수리와 동강할미꽃 등 자연생태계보고 지역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작가나 등산객.레저객 및 여행객들이 찾아들곤 한다.

 

이런 경치를 담아내고자 유 화백은 동강을 찾아 붓을 또 꺼내든 것이다.

 

 

유 회백은 동강을 찾아 풍경을 그려내느라 피곤함도 있을 텐데 그는 시간을 재촉해‘구룡폭포’도 현장에서 직접 화폭에 담아냈다.

 

 

 

구룡폭포는 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다. 이 폭포는 길이 약 30m이다. 원천천 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로‘원천천폭포’라고 부른다. 굴요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폭폭(九龍瀑布)라고 하는데 구룡폭포는 그중 제9곡으로 구룡구곡의 백미로 꼽는다.

 

가파른 절벽에서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가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의 목포이다.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沼)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 하는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蛟龍潭)이라고도 한다.

 

이런 폭포를 유 화백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아 카메라가 아닌 붓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또한 전 번에도 도봉산의 성불사를 그려내기 위해 찾았지만, 이번에는 도봉산의 진경산수를 화폭에 담아냈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도봉산의‘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려냈다.

 

 

유 화백은 북한산 중성문에서 바라보이는‘노적봉’을 담아내기도 했다. 노적봉은 북한산의 산성주능선과 만경대 서쪽 아래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는 716m이다.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하여 노적봉(露積峰)이라고 붙여졌다. 노적봉 아래에는 중흥사지가 있다.

 

유 화백이 찾은 곳의 강물과 계곡물은 유 화백을 위한 먹물이었을까?

 

명경지수 같은 물이지만 그 물을 벼루에 붙는 순간 유 화백의 붓끝에는 먹물이 되어 수묵담체화로 화선지에 번져든다. 그렇게 바람에 떨던 잎도 유 화백의 붓 끝에 그만 부동의 자세로 화선지에 동작 그만한다. 작품으로 승화되는 순간의 마법이 연출된다. 그렇게 굴러가던 돌도 세찬 물소리도 그만 제자리를 찾아 멈춘다. 다만 물 흐름의 모습만이 실감나게 보여준다.

 

유 화백은 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며 화폭에 담을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 챙겨온 이젤과 의자를 꺼내 자연을 잠시 감상하다가 구도를 잡아내며, 아무 그림도 없는 백지장에 어느새 그 자연 풍경이 화폭으로 들어서게 한다. 자연은 그저 거절도 하지 않고 자신을 유 화백을 믿고 맡긴다. 유 화백은 녹색 등 여러 색상을 하고 있는 자연을 흑과 백으로 나타낸다. 자연은 그래도 자신을 그려 좋다는 듯이 자신을 자랑한다. 화폭에 더 자신을 덧보이게 하고 있다. 자연의 명작이 유 화백의 손에 의해 또 다른 명작으로 태어난 순간이동이다.

 

순간이동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유 화백은 마술사 못지않은 변장술의 대가이다. 자연의 이동, 화폭으로 오는 순간 작품은 차곡차곡 그의 화실에 쌓여지고 있다. 유 화백은 이런 심혈을 기한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들을 곧 인사동 등의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겠다고 한다.

 

유 화백이 곳곳을 찾아 스케치한 작품들은 기대작이다. 그 풍경들이 어떤 작품으로 승화되어 나올까 작품마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주고 있다. 독자들은 유 화백의 수준작을 또 다시 갤러리에서 뵙기를 설렘하며 기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동강을 가봤다. 래프팅을 위해, 한반도 지도상을 보기 위해, 동강할미꽃이 그리워서들 그곳을 찾는다. 하지만 유 화백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찾았다.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덕유산 구천동의 비경인 청송암 천년소나무도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곤 한다. 빼어난 경치를 보기 위해서다. 그 중 유 화백도 한사람이다. 그는 다름 사람들처럼 구경을 하고자 찾는 것보다는 화쟁이 아니라할까봐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림 배경으로 이곳을 찾았다. 우뚝 선 기암위에 한 구루의 소나무가 천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청송암 바위에 있는 소나무가 유 화백의 눈에는 예사스럽지 않게 보여, 이 또한 붓 끝에 다시 태어나게 한다. 카메라는 순간의 찰칵하면 되고 기계에 의해 남겨지지만, 수묵화(水墨畵)는 손끝에서 심성과 함께 시간을 두고 그려진 그림이기에 작품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며 진정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 화백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유 화백의 자연 스케치, 그의 눈에는 어떠한 자연도 피할 수 없다. 손에 붙잡혀 끌려온 자연 풍광은 그가 펼친 화선지에 자리한다.

 

옛 선비들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시 한수를 읊었다. 그러면서 바위 등에다 시 구절이나 경치에 대한 느낀 소감을 축약해 새겨났다. 하지만 유 화백은 바위 등에 새기지 않고 화선지에 그 느낌을 표현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인왕산(인왕제색도)이나 금강산(금강내산전도, 삼부연폭포)을 보고 그랬듯이 말이다.

 

허준이 유랑하며 동의보감을 써낸 것처럼, 전국을 찾아다니며 지도를 그려낸 김정호처럼 그도 유랑자인양 풍광 좋다하는 곳마다 찾아 화폭에 남겨두고자 수묵화를 그려낸 한국화의 화쟁이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유 화백은 북한에 있는 구룡폭포도 화폭에 담아내고 싶다고 한다. 북한 구룡폭포는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에 있는 폭포로 높이 약 74m, 너비 약 4m로 일명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 한다. 중향은 무리 중 가장 소리와 모습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중향폭포는 온정리 소재지에서 약 30리쯤 되는 신계천의 위쪽 구룡연 구역에 있다.

 

북한 천연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된 이 폭포는 설악산‘대승폭포’, 개성 대흥산성의‘박연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금강산‘십이폭포’와 함께 금강산 4대 명폭의 하나로 웅장하고 경치가 뛰어나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이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는 구정봉에서 뻗어 내린 구정대의 깎아지른 듯 하는 바위 벼랑의 두 봉우리 사이에서 폭포 벽을 따라 물안개를 이루며 떨어진다. 폭포 벽과 그 바닥은 하나의 웅장한 화강암 덩어리로 되어 있는 보기 드문 폭포이다.

 

유성안 화백도 겸재 정선처럼 금강산을 찾아 금강산 전도와 폭포 등을 그려내고 싶다고 마음은 금강산으로 향한다.

 

유성안 화백이 그린 그림은 서서 감상하는 것보다 넌지시 누워서 보라 한다. 그래야 그림의 진 모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선비들이 자연을 찾아 바위에 걸터 앉거나 누운 채 자연을 감상하고 시 한 수를 읊으며 노래했듯이 유 화백의 그림도 누워서 보면 더 운치나고, 자연 속에 온 것 같고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한다.

 

유 화백은 다른 작가들처럼 작품에다 시적인 글을 남기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느낌을 각자 써가길 바란다.

 

김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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