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좌담회어서 참고자료 - 니이케전어소식(新池殿御消息)
학회 활동에 헛됨은 없다
모든 노고가 크나큰 복운으로 바뀐다!
<어서전집 1435쪽 3행 ~ 2행>
쌀삼석(三石) 받았소이다. 지금 일승묘호렌게쿄(一乘妙法蓮華經)의 보전(寶前)에 바쳐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단 한 번 불렀나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을 영산정토(靈山淨土)에 결정무유의(決定無有疑)로 보내주기 위(爲)함이니라.
대저 인과(因果)의 사리(事理)는 꽃과 열매와 같다.
천리(千里)의 들판의 마른 풀에 반딧불과 같은 불을 하나 붙인다면 수유(須臾)에 일초(一草)·이초(二草)·십(十)·백(百)·천만초(千萬草)에 번져서 불타면 십정(十町)·이십정(二十町)의 초목(草木)은 일시(一時)에 다 타버린다. 용(龍)은 한방울의 물을 손에 넣고서 천(天)에 올라가면 삼천세계(三千世界)에 비를 내리느니라.
소선(小善)이지만 법화경(法華經)에 공양(供養)하신다면 공덕(功德)은 이와 같으니라.
※ 니이케전어소식(新池殿御消息)
1279년(弘安2年)5월2일 日蓮대성인이 58세 때에 미노부에서 니이케사에몬노조(新池左衛門尉)에게 주신 어서(御書).
처음에 니이케(新池)씨가 쌀 3석(石)을 공양한데 대해 아육왕(阿育王)의 고사(故事)와 아나율(阿那律)의 인위(因位)를 들어 법화경 공양의 공덕을 설하시고 있다.
다음에 삼국전등(三國傳燈)의 순서를 밝히고 일본의 일국방법(一國謗法)의 현상(現狀)을 비추어 보아 숙연심후(宿緣深厚)한 신심을 관철하도록 격려하시고 있다.
☞ 어서사전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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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이케사에몬노죠(新池左衛門尉)
생사년불명. 日蓮대성인이 재세(在世)당시의 신도. 도토오바(違江)지방 이와다군니이케(시즈오카현후쿠로이시)의 사람.
가마쿠라막부의 직참(直參)으로 닛코상인이 절복에 의해 아내인 니이케니(新池尼)와 함께 대성인에게 귀의(歸依)했다고 한다. 니치렌 대성인으로부터 신심의 요체(要諦)를 밝히신 니이케어서 등을 하사받고 있다.
☞ 어서사전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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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딛어라, 용기의 첫 걸음을!
거기에서 새로운 세계가 넓혀진다!
거기에서 새로운 자신이 태어난다!
이 어서는 니치렌 대성인이 1279년 5월 2일 미노부에서 도토미 지방 이와다군 니이케에 사는 니이케사에몬노조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니이케 씨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분명하지 않으나 닛코 상인이 절복해 입신했고, 아쓰하라 법난 때 닛코 상인이 잠시 방문하신 것으로 추측합니다.
니이케 씨는 죽은 자식의 추선을 위해 대성인에게 쌀 석 섬을 공양했습니다.
대성인은 어서 첫머리에서 진심 어린 공양을 어본존 보전(寶前)에 바치고 사랑스런 자식이 반드시 성불하도록 제목을 불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반딧불 같이 작은 불도 넓은 지역의 초목을 모두 태우고, 용이 물 한 방울로 삼천 세계에 비를 내리게 하듯이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면 그것이 아무리 적어도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중국에 거쳐 동쪽에 있는 작은 섬, 일본에 전해진 불법(佛法)이 말법에 들어선 지금은 겉으로 보면 번영한 듯 보이나 실제는 여러 종파 간에 싸움을 하고 그뿐 아니라 주사친(主師親)으로서 의처(依處)가 되는 교주석존(敎主釋尊)을 무시하고, 주사친이 될 수 없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염불 가르침이 넓혀지고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법화경만이 석존의 참뜻을 설한 가르침이며 독이 변해 약이 되듯이 중생은 묘법의 힘으로 부처가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또 홀로 일어서서 진실한 성불의 가르침을 외친 대성인이 미움 받고 박해당하는 속에서, 니이케 씨가 깊은 마음을 두는 이유는 숙세(宿世)에서 쌓은 인연이 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끝으로 대성인을 위해 도토미 지방에서 미노부까지 험한 산하를 넘어 찾아온 깊은 뜻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십니다.
‘용기의 일파’가 ‘승리의 만파’
광선유포를 위한 행동은 그것이 비록 작은 한 걸음이라 할지라도 헤아릴 수 없는 큰 공덕이 되어 우리를 장식합니다.
이 한 걸음을 출발점으로 광선유포가 앞으로 나아가면 묘법의 공덕이 무한한 사람에게 확대되고, 그것들이 모두 우리 몸에 공덕이 되어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반딧불과 같은 작은 불도 마른 풀에 붙이면 초목을 광대하게 불태우고, 용이 한 방울의 물을 손에 넣으면 삼천세계를 축축하게 하는 비를 내리게 한다고 비유하십니다.
니이케 씨의 ‘법화경’에 대한 진심 어린 공양은 ‘소선(小善)’과 같이 생각되지만 니이케 씨 자신에게 무량무변한 대공덕이 되어 모인다고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법화경’은 ‘법화경 행자’인 니치렌 대성인을 가리킵니다.
대성인은 성불을 위한 근본법인 묘법의 힘으로 일체중생을 구하는 광선유포의 투쟁을 추진하기 때문에 대성인을 원조하는 공양에도 무한한 공덕이 있습니다.
성훈에는 “일은 만의 어머니” 라고 있습니다.
‘일’을 출발점으로 해서 ‘만인’에게 넓혀지고 ‘만년’에 걸쳐 전해지는 것이 변하지 않는 광선유포의 방정식입니다.
우선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일보’를 내딛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한 사람’을 격려해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전력으로 이겨 내야 합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일파’에서 ‘만파’로 확대됩니다. 정성들여 한 집 한집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한 사람 한사람과 대화합니다. 이렇게 수고한 일파가 바로 만파로 확대됩니다. 지금까지 창가학회가 발전한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이것을 철저히 실천하면 만파를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말법만년에 걸쳐 광선유포 발전의 길이 열립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용기 넘치는 ‘일파’가 ‘인재·확대의 해’에 위대한 승리의 ‘만파’가 되어 넓혀진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혹한의 미노부에서 투병하신 대성인
천마(天魔)가 병을 앓게 하고
위협해서 신심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목숨은 한이 있으니 결코 놀라면 안 됩니다.
<니이케전어소식>을 배독하면 첫머리부터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씀에 마주칩니다.
“받은 쌀 석 섬을 어본존의 보전(寶前)에 바치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단 한 번 불렀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을 ‘성불은 결정되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는 경문대로 영산정토에 보내 주기 위해서입니다.”(어서 1435쪽, 취의)
미노부를 방문한 니이케 씨에게 죽은 아들에 대한 회상을 직접 들으셨을 것입니다.
‘단 한번’으로 성불시키겠다는 기백에 넘친 제목을 부르셨습니다.
이 어서는 니이케 씨의 뜻을 칭찬하며 “할 말은 많으나 감기가 들어 몸이 불편하므로 이만 그치겠습니다.”(어서 1438쪽, 취의)라고 끝맺으셨습니다.
스승을 걱정하는 제자들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보내신 기간은 53세부터 돌아가신 61세까지 약 8년간입니다.
32세에 말법광포 투쟁을 선언하신 이래, 숨 쉴 사이도 없는 격렬한 싸움의 나날이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법난(法難)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강건한 대성인의 몸은 쇠퇴함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혹한의 사도에서 2년 반 동안 유죄생활을 하신 후, 추위도 심하고 식량도 궁핍한 미노부에 가시고 나서 점점 건강이 나빠집니다. 특히 1277년 연말부터 심한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278년 6월 26일 시조깅고에게 주신 편지에는 “설사는 작년 12월 30일에 시작하여 금년 6월 3, 4일경 나날이 심해져 이것이 정업(定業)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귀하가 준 양약을 복용한 후에 금세 좋아졌습니다.”(어서 1179쪽, 취의)하며 기뻐하십니다.
명의(名醫)인 시조깅고가 한 몸을 다 바치는 마음으로 스승을 치료했습니다.
이때 몸 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았는지, 최근 연구에 따르면 1277년 6월 3일에 아부쓰보에게 주신 편지에서 “니치렌도 이미 생(生)을 받아서 나이 60세 이르고 있습니다. 생로병사의 노(老)는 의심이 없으며 남은 것은 다만 병과 사뿐입니다.”(어서 1317쪽, 취의)하고 죽음을 각오하셨다고 합니다.
아부쓰보는 안절부절 못하고 다음 달에는 늙은 몸을 이끌고 사도에서 멀리 미노부를 방문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신 스승의 모습을 보고 감루에 목이 메었을 것입니다.
대성인은 몸이 쇠약하셔도 투쟁심은 쇠약하지 않았습니다.
1278년 4월, 투병 중에 이즈와 사도에 이어 세 번째 유죄를 획책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유죄가 된다면 채용되기보다 백천만억배 행복합니다. 세 번째가 된다면 설마 법화경도 니치렌을 게으른 행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다시 한 번 유죄를 당했으면 좋겠습니다.”(어서 1295쪽, 취의)하고 말씀하십니다.
“귀신놈들”이라고 질타
1281년 1월에 다시 몸이 악화합니다.
5월에 이케가미 형제에게 준 편지에서 “이 법문(法門)을 설한 지 이미 29년이 됩니다. 일일(日日)의 법론, 월월(月月)의 법난, 두 번의 유죄에 몸이 피로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7,8년 동안 매년 쇠병(늙고 쇠약하여 생긴 병)이 일어났으나 어떻게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금년은 정월부터 나빠져 이미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어서 1105쪽, 취의)하고 말씀하십니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병상은 다시 악화되고 식욕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난조도키미쓰에게 병마가 덮쳤을 때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천마(天魔)가 병을 앓게 하고 위협해서 신심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목숨은 한이 있으니 결코 놀라면 안 됩니다.”(어서 1587쪽, 취의)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를 괴롭히는 병마를 엄하게 질타하십니다.
“귀신놈들이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검을 거꾸로 삼키는 것인가, 대화(大火)를 껴안는 것인가, 삼세시방의 부처의 원적이 되려는 것인가. 각오하라. 이 니치렌의 말을 멸시하면 반드시 후회한다.”(어서 1587쪽, 취의)
병들수록 늙을수록 마성을 단호히 타파하는 기백. 대성인은 누구나 자신의 육신으로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와 싸워 이기는 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법화경을 실천하면 왜 공덕이 큰가?
내 경애가 부처와 하나로
오늘 좌담회에서 이달의 어서를 강의한 사람이 “법화경에 공양하면 공덕이 크다.”라고 말했는데 도대체 공덕은 무엇이고 어떤 물건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랫만에 회합에 와서 갑자기 질문공세군요.(웃음) 세간에서는 공덕을 ‘굴러 온 호박’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고 물질적인 면만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공덕은 여러 가지 면이 있으나, 요컨대 자기 생명이 강해진다, 풍요롭게 된다, 깨끗해진다, 경애가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항상 어려움을 피하던 내가 어느덧 어려움에 도전하려는 나로 바뀌어 있는 모습이 공덕입니다.
공덕은 자기 생명이 바뀌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생명력이 약해지거나 왜소해지면 인생에서 많은 거센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없으며 오히려 파도에 휩쓸립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재능과 지식이 뛰어나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력을 강하게 하고 풍부하게 하여 어떤 시련에도 당당하게 대항해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으로 바뀌는 것이 공덕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법화경에 공양한다는데 법화경이 그렇게 대단한 가르침입니까.
질문 잘하셨습니다. 법화경에는 만인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부처의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아니고 모든 사람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처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민중을 구하는 활동을 시종일관 실천해 왔다고 설합니다.
“만인을 구하고 싶다.”는 부처의 소원과 “만인을 구한다.”는 부처의 실천이 즉 법화경입니다.
법화경은 대단히 숭고한 것을 설하는군요. 그러나 법화경에 공양하는 것은 고마운 부처의 가르침에 오로지 매달린다는 뜻이 아닌지요.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성인 문하가 법화경에 공양하는 것은 법화경을 실천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즉 ‘만인을 구하고 싶다.’는 부처의 마음과 ‘만인을 구한다.’는 부처의 실천에 나 자신도 참가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행동한 결과로 자신의 경애가 부처의 경애와 하나가 됩니다.
비록 하찮은 행동이라도 공덕이 큰 까닭은 법화경이 부처의 결론이고 부처가 하고자 하는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케다 SGI회장은 “비록 하찮은 행동일지라도 묘법을 위한 행동은 앞으로 반드시 현실적으로 승리의 꽃을 피우고 복덕의 열매를 맺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을 실천하면 결국 자신의 행복으로 통합니다.
☞ 월간법련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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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의 ‘마음’이 중요
“소선(小善)이지만 법화경에 공양하신다면 공덕은 이와 같으니라”(어서 1435쪽)라고 말씀하셨다.
즉 비록 조금이라도 그것이 어본존에 대한 공양이라면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다.
마치 반딧불과 같이 조그만 불이라도 천리들에 있는 마른풀을 일시에 다 태우며, 또한 용(龍)이 한 방울의 물에서 삼천세계에 비를 오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반대로 비록 선의(善意)라고 하더라도 악(惡)을 지탱한다면, 이쪽도 악의 행위가 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어본존이라는 공양의 올바른 대상(對象)이다. 그리고 신심의 ‘마음’인 것이다.
☞ (1989.3) 제13회 전국청년부간부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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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 있는 힘껏 / 반딧불이 춤을
노래 ‘반딧불이의 빛’으로 유명한 중국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는 고사에는 고학하는 청년 차윤이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모아 등불로 삼아 공부했다고 전한다.
비록 작더라도 생명을 환하게 연소시키는 곳에는 반드시 큰일을 이루는 힘이 나온다.
니치렌대성인은 “천리의 들판의 마른 풀에 반딧불이와 같은 불을 하나 붙인다면 수유(須臾)에 일초(一草), 이초, 십, 백, 천만초에 번져서 불타면 십정(十町), 이십정의 초목은 일시에 다 타버린다”(어서 1435쪽) 하고 말씀하셨다.
필사적인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정열은 요원의 불길처럼 널리 퍼진다.
특히 성훈에는 “용녀(龍女)의 성불은 이는 일인(一人)이 아니라, 모든 여인의 성불을 나타내었다”(어서 223쪽) 하고 씌어 있다.
가정과 지역 그리고 사회에서도 여성의 힘만큼 위대한 것은 절대로 없다.
바야흐로 우리 간사이소카학원의 여자 동창생 모임 ‘반딧불이회’의 벗도 이곳저곳에서 힘껏 빛을 발하며 춤춘다.
☞ 수필· 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길 (49) 에서
수필 승리의 대도 (49) 청춘의 꽃, 행복의 태양.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