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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니치렌(日蓮)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성자이충희|작성시간20.04.09|조회수36 목록 댓글 1
설사 무량억세(無量億歲)동안

권교(權敎)를 수행(修行)할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서 떨어진다면
다만 언제나 지옥(地獄)이니라.

이 일은
니치렌(日蓮)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이

정(定)해 놓으셨느니라.

우에노전미망인답서(上野殿未亡人答書)
어서 1504쪽


젊은날의 일기
1951년 4월 9일 (월) 비 –23세-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지바의 우라야쓰에 있는 N씨 댁 방문. 우라야스 거리를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단조롭고 빈곤한 항구. 여기에도 묘법의 등불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N씨도 건강해 졌다. 기쁘다. ―
 
밤에 K씨 댁에 갈 예정, 실현하지 못해 아쉽다.
9시 조금 지나서 잔다.
#
 
1956년 4월 9일 (월) 구름 뒤 맑음 –28세-
 
찬연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비바람은 꿈만 같다.
오전에 문화부장과 협의. 문화부장도 젊다. 나도 젊다. 둘 다 의견에 고집을 부렸다. 반성 ···. 본유(本有)의 거만을 서로 용서하자.
 
12시 30분, 우에다 역발 ‘하토’를 타고 외로이 홀로 돌아왔다.
열차 안에서 8시간, 독서할 수 없었다. 아깝다. 아까운 짓을 했다.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만 한다. 건전한 신체를 위한 첫걸음이다.
 
요코하마 역에 아내와 동생이 마중 나와 있었다.
마음이 풀어졌다. 즐겁고 행복한 우리 집으로.
 
선생님의 자비가 그립다. 측근의 무자비를 슬퍼한다.
#
 
1960년 4월 9일 (토) 쾌청 –32세-
 
몸이 좋지 않다. 38°C 가까이 오른 열.
 
오후 5시부터 데이코쿠호텔에서 다카히사 씨 결혼식. 약 150명의 하객이 모였다. 기쁘기 그지없었다. 도다 선생님 일가의 다복을 기원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히비야 공원의 꽃집에 들러 군자란을 하나 사서 택시를 탔다.
 
본주에서 늦게 까지 임시 이사회를 개최, 제3대 회장 추대를 결정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중히 거절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폭풍처럼 숙명이 몰아친다.
나의 전 생명으로 사명의 노도가 쇄도했다가는 물러간다.
숙습(宿習)의 굵은 그물이 너무나도 강하고 엄숙하게 나를 옥죄어 온다.
 
묘호렌게쿄 ― 도다 조세이 선생님 ― 7회기까지 여유 있는 인생과 투쟁을 ― 32세 ― 젊다.
 
7회기 ― 37세 ― 만으로 36세 ― 닛코 상인이 상전(相傳)을 받으셨던 나이.
누군가 ― 너무도 지쳐버린 나 대신, 지휘할 사람은 없는가. 아아 ―.
 
대답하는 사람 없고. 나의 번뇌를 조용하게 지켜보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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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교학공부합시다 | 작성시간 20.04.0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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