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업전환 시리즈 ② 열반경의 전중경수
자유게시판 3704의 “창가학회의 숙업전환 과연 불교의 가르침인가”라는 종문의 주장을 파절합니다. SGI 헌장에는 “SGI는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본의에 입각하여 세계로 광선유포 해 가는 단체”라고 있습니다. 학회의 교학은 일체가 대성인 불법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 불법 때문에 받는 괴로움은 영겁으로 받아야 할 지옥의 고(苦)를 바로 소멸
대성인께서는 “열반경에 전중경수라 하는 법문이 있는데, 선업(先業)이 무거워서 금생에 다하지 않아 미래에 지옥의 고(苦)를 받게 될 것을 금생에 이 같은 중고(重苦)를 만나면 지옥의 괴로움은 금방 사라지고, 죽으면 인천, 삼승, 일승의 이익을 얻게 되옵니다”(어서 100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중경수는 ‘무거운 것을 바꾸어 가볍게 받는다’라고 읽습니다. 여기서 무거운 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쌓아 온 무거운 죄업을 말합니다.
그것을 ‘바꾸어 가볍게 받는다’란 원래 금세뿐 아니라, 미래세까지도 받지 않으면 안 될 무거운 죄업의 과보를 현세에 가볍게 받고,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금생에 이 같은 중고(重苦)를 만나면 지옥의 괴로움은 금방 사라지고”라고 표현하시고 “인천, 삼승, 일승의 이익을 얻게 되옵니다”라고 성불의 이익을 들고 있는데 모두 중요한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불법 때문에 받는 괴로움은, 영겁으로 받아야 할 지옥의 괴로움을 바로 소멸시키기 위한 작은 괴로움이며 성불로 통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대성인께서 설하신 숙명전환의 원리입니다.
● 과연 운명은 바꿀 수 있는가 없는가?
숙업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업은 선업이나 악업 모두 쌓아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업이 없어진다는 것은 인과의 도리로 본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도 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별빛은 감쪽같이 없어집니다. 불계의 태양이 떠오르면 숙업은 어떻게 될까요? 차례차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업이라는 말 자체는 고대 인도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산스크리트의 ‘카르마’라는 말입니다. 원래 ‘카르마’는 행동, 행위 등을 뜻합니다. 그러나 중국으로 불법이 전해지자 업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업(業)은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운명(運命)이라는 말로 바꾸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운명은 바꿀 수 있는가? 국가의 운명, 인간의 운명, 인류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은 종교나 사상뿐 아니라, 예술이나 문학에서도 중대한 주제입니다.
운명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이 생각납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라는 운명와 싸워 이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신(神)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현대인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운명을 지배하는 신(神)이 절대적 존재라면, 인간의 운명은 절대자에게 조종당할 뿐 그 존재는 더욱더 왜소해 지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업사상(業思想)을 통해
절대적인 것에 의한 지배에서 해방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형성하는 것도, 또 그 운명에서 해방되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인에게 불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설한 법화경이야말로 숙업에서 근원적인 해방을 실현한 경전입니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이전경에서 설한 인과만 알아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법화경에서 설하는 숙명전환을 알게 되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서 말하는 숙명전환의 공력이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다음은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제20에 나오는 ‘불경보살의 기죄필이’입니다.
참고문헌: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사도어서강의/ 어서의 세계/ 법화경의 지혜/ 어서사전/ 입니다.
석존은 법화경에서 정직사방편이라고 설했습니다.
이전경의 방편은 법화경을 설한 후에는 버려야 합니다.
종문에서는 범부와 극을 둘로 나누고 이전경의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소롭고도 어리석으며 문저 교학의 기초도 없는 사이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