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8.24) 이케다 SGI회장 입회 61주년 기념
문학수상(文學隨想) - 소설 ‘부용(芙蓉)의 사람’을 말한다
마음이 아름다운 ‘부용의 사람’에게
우아한
부용화(芙蓉花)의
웃음 띤 얼굴이로다
기품 있는 ‘부용화’가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3776미터)은 ‘부용봉’이라고도 부른다. ‘부용화’와 닮은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 때문일까.
후지산 정상은 열풍(烈風)과의 전쟁터다. 그러나 열풍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정상에는 부용화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보관(寶冠)처럼 광채를 발한다.
여성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 <부용의 사람>
때때로 그 후지산을 사진에 담다 보면 떠오르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소설 <부용의 사람>이다.
메이지 시대, 한겨울에 후지산 정상에서 기상관측에 도전한 기상학자 노나카 이타루, 노나카 지요코 부부의 이야기다. 특히 지요코 부인을 ‘부용화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조명했다.
예전에 “결혼한 여성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은 하고 여성잡지(주부의 벗)의 질문을 받았을 때 <부용의 사람>을 추천한 일이 그립다.
작가는 닛타 지로 씨. 산을 무대로 한 명작으로 유명하다. 이전에 세이쿄(聖敎)신문의 대담에서도 정감 넘치는 인간관을 말해 주었다. 부인인 작가 후지와라 데이 씨도 세이쿄문화강연회에서 여러 번 강연했다. 아들인 저명한 수학자 후지와라 마사히코 씨도, 딸인 작가 후지와라 사키코 씨도 세이쿄신문 인터뷰 등에 나온 적이 있다.
신진기예의 기상학자 노나카 이타루는 1867년에 태어났다. 마키구치 선생님과 같은 세대다. 부인 지요코와 함께 후쿠오카 출신이다. ‘불의 나라’ 규슈의 대정열이 넘치는 사람이다.
노나카 이타루는 ‘후지산 정상에서 1년 동안 기상관측이 성공하면 정확한 일기예보를 할 수 있고, 이는 국민에게 이익이 되고 세계에 일본의 이름을 떨치게 된다.’는 큰 꿈을 품었다.
특히 후지산 정상인 고도 3776미터에서 가장 추울 때 기상관측을 할 수 있다면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만큼 그 의의는 매우 크다.
이 전인미답의 도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곤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1895년 2월, 노나카 청년은 한겨울에 후지산 첫 등정에 성공했다. 그 자체가 불가능했던 당시에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 등산사상 대기록이었다.
그해 여름, 그는 사재를 털어 후지산 정상에 작은 관측소(19.8㎡)를 짓고, 위험을 각오하고 겨울 기상관측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죽음을 담보로 한 작업’. 이것이 노나카 청년의 결의였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고층기상관측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학술의 진보를 위해,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 작은 관측소를 지어 거센 바람과 단단한 얼음 속에서 관측에 도전해 뜻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분기하는 마음을 주고 싶다.”
청년은 선구자다. 도전자다. 개척자다.
이미 만들어진 토대 위에 자신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몸을 희생하더라도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뒤를 이을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초석이 된다.
이런 청년의 긍지 드높은 투혼으로 길 없는 길이 열린다.
창가학회(創價學會)의 역사가 바로 그랬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웃는 얼굴과 세심한 배려가 힘
부인 지요코도 남편의 이상(理想)을 자신의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취하겠다고 결의한다.
지요코는 남편 몰래 기상학을 배우고 몸을 단련하며 등산 준비를 거듭했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 후지산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1895년 10월부터 부부가 함께 역사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했다.
대자연의 맹위에 노출된 극한의 상황에서 기상관측을 계속하기 위해 여성으로서 지요코의 견해와 행동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본래 청년 노나카가 설계한 관측소와 관측계획에는 무리한 점이 있었다. 여성이자 어머니인 지요코의 눈으로 볼 때, 관측하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요코는 식사, 영양, 수면시간, 난방, 화장실 등 ‘인간’을 지키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
지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대처한다고 했지만,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가장 비과학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측을 하는 데 자신의 몸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는 산소도 적다. 고산병과 계속 싸워야 한다. 격심한 환경은 지요코의 몸 상태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지요코는 춥고 스산한 관측소에 최소한의 장식을 하는 등 조금이라도 마음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궁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소설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지요코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큰소리로 웃었다. 이타루는 그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후지산 정상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어 지요코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음은 힘이다. 웃음 띤 얼굴은 격려다. 특히 여성의 웃음 띤 총명한 얼굴, 생기 있는 목소리의 울림은 모두가 전진하는 데 활력을 넘치게 하는 원천이다.
어떤 일도 근본은 ‘인간’이다. ‘인간의 마음’이다. 그 ‘마음’에 밝은 희망을, 사는 기쁨을, 지지 않는 용기를 계속 보내는 일. -- 여기에 승리의 원동력이 있다. 이것을 잊으면 진정한 힘을 낼 수 없다.
목숨을 건 집념으로 사명에 살다
노나카 부부는 서로 격려하고 도우면서, 병과 싸우고 곤란과 싸우며 기상관측을 계속했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관측기가 후지산의 너무나 혹독한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망가졌다.
충격을 받은 남편은 마침내 고산병이 심해져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지요코는 그 남편을 대신해 관측소의 주역을 맡게 된다.
“(지요코는 후지산 정상에서 행하는) 겨울철 연속관측기록이라는 쇠사슬에 그녀의 손으로 고리를 하나씩 더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은 미지의 기록에 대한 도전이었다.”
실로 한 걸음 한걸음, 하루하루가 아직 누구도 성취한 일이 없는 고층기상관측 기록이다. 그것은 한 여성이 목숨을 건 집념으로 개척한 혼이 깃든 존엄한 기록이 되었다.
그 동안 집에 남은 사랑하는 딸을 병으로 잃는 비극도 겹쳤다. 지요코는 그 딸의 죽음을 나중에 들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내가 꿋꿋이 살아온 것도 자식이 내게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죽은 딸과 함께 사명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일어섰다.
더 이상의 관측은 생명에 위험하다고 판단한 정부의 명령, 학식자 그리고 협력자의 설득으로 노나카 부부는 해를 넘기는 관측을 어쩔 수 없이 중단했다.(12월 22일)
부부가 엄한(嚴寒)의 후지산 정상에서 도전한 이 일은 일본 아니 세계의 기상관측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위업이 되었다.
엄한의 후지산 정상에서 남편 노나카 이타루와 함께 기상관측에 도전한 지요코는 여성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선구자이기도 했다.
아직 남존여비(男尊女卑)의 풍조가 강하고 부당하게 남녀를 차별하던 메이지 시대였다. 지요코가 남편을 돕기 위해 후지산에 올라가는 일도, 기상관측을 돕는 일도 사람들은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기상학의 권위가 있는 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지요코는 여성을 멸시하는 남성들의 완고함과도 싸워야 했다.
소설에서 지요코는 이렇게 말한다.
“학문에는 남녀 구별이 없지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여성을 경멸하는 남성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남성이 존재하는 것은 일본의 장래에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그렇다.
여성의 활약을 최대한 칭찬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여성이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 새롭게 발전하는 길이 얼마든지 열린다.
‘부용화’는 ‘아름다운 사람’을 비유
지요코 부인은 후지산 정상에서 전개한 투쟁을 ‘부용일기’로 남겼다. 후지산을 ‘부용봉’이라 부르는 사실을 근거로 했을 것이다.
‘부용’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했다.
저자 닛타 지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 제목 ‘부용의 사람'은 지요코 부인의 부용일기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당시 지요코 부인의 사진을 봐도 ’부용의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고 마음씨도 아름다웠기에 이 제목을 붙였다.”
부용꽃에는 늠름한 품격과 향기가 있다고 칭찬해 왔다.
지난해(2007년) 가을, 간사이를 방문했을 때 동지에게 선물 받은 ‘부용’의 그림이 회관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진심에 깊은 감사를 담아 와카를 보냈다.
아름다운 / 부용화가 / 흐드러지게 피어 /
대간사이의 / 부인부를 칭찬하도다
대훈장보다도 / 위대한 / 부용이로다 /
모든 간사이의 / 동지를 바라보도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이 내 아내에게 “부용화는 바로 가네코다.” 하고 말씀하신 일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미래를 여는 여성의 힘을 증명
노나카 부부가 목숨을 걸고 후지산 정상에서 몰두한 겨울철 기상관측은 훗날 정부가 후지산 정상에 관측소를 건설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에서 남편을 도와 함께 분투한 지요코 부인의 공적에 빛을 비추는 일은 적었다.
아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아버지를 표창하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만약 주신다면 지요코와 함께 받고 싶습니다. 그 일은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지요코와 둘이서 한 것입니다’ 하고 말해 결국 그 영예를 받지 못하고 끝난 적이 있습니다.”
작가 닛타 씨는 이런 마음을 참착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지요코 부인의 활약을 표면에 끌어올렸다.
닛타 씨는 이렇게 썼다.
“노나카 지요코는 메이지를 대표한 여성이었다. 새로운 일본을 짊어진 다부진 여성이었다. 봉건사회의 틀을 깨고 ‘일본여성이 여기에 있노라’하고 그 존재를 세계에 나타낸 최초의 여성이 바로 노나카 지요코가 아닐까. 전 세계 어떤 여성도 이룩하지 못한 3776미터라는 높은 산에서 겨울철에 체재한 기록 수립은 지요코가 그 기록을 의식하고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업적은 더욱 빛난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갈채도 없는 사명의 무대에서 생명을 키우고 지역을 지키고, 사회를 지탱하고 역사를 만들고 미래를 여는 숭고한 여성이 남모르는 헌신을 얼마나 열심히 하셨을까. 그 큰 공적에 최고로 경의를 표해 상찬해야 한다. 그 한없는 지혜와 노력에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우러러봐야 할 산봉우리의 ‘부용봉’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누가 보지 않아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한 걸음 한걸음 내디뎌 여성들이 도달하는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경애’에 있다.
특히 창가 여성들이 펼치는 존귀한 행동을 각계에서 한없이 상찬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불법(佛法)에서 설하는 ‘명(冥)의 조람’은 절대적이다.
내 아내도 세계에서 삼가 받는 영예를 전 세계의 경애하는 창가 여성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늘 말한다.
(여성으로서 이케다 SGI회장을 도와 평화와 문화 발전에 공헌한 가네코 부인을 세계에서 상찬하고 있다.
왕빙건 중국 빙신문학관 관장은 가네코 여사에게 ‘애심대사<愛心大使>’ 칭호를 수여하고 말했다.
“인생에서 어떤 곤란에 직면해도 <이케다 선생님과 가네코 부인> 두 분은 서로 격려하며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싸우는 용기를 일으키며 꿋꿋이 살아오셨습니다.”
또 브라질 산투아마루대학교 소란제 모우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근대 여성은 많은 차별과 편견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케다 SGI회장과 함께 평화건설에 공헌하신 가네코 부인이 세계 여성을 대표해 많은 현창을 받은 것은 우리 여성에게 빛나는 미래의 전망이 열렸다는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아가 가수 아그네스 찬 씨는 말한다.
“가네코 부인은 대단히 고생하신 분이지요. 그래서 단지 명랑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까지 명랑하게 만듭니다. 그런 명랑함에 많은 사람이 격려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얼음이 햇살을 받아 녹듯이 가네코 부인의 명랑함에 상대도 경직된 마음을 열고 맙니다. 가네코 부인은 저의 이상형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지지 않는 것, 거기에서 길은 열린다
소설 <부용의 사람>에서는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후지산 정상이라는 극한상태에서의 싸움을 박진감 넘치는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 혹독한 환경에서 고산병이 심해 심신 모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노나카 이타루는
영양을 섭취하는데 불가결한 음식물조차도 그다지 입에 대지 않게 되었다.
생각한 끝에 이타루는 지요코에게 말했다.
“이미 나는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소. 만약 내가 숨을 거둔다면, 그 물통에 넣어 기계실에 굴려 넣어서 봄이 될 때까지 놔두시오.”
지요코는 의연하게 말했다.
“내 남편 노나카 이타루는 죽는다는 따위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남자가 아니었어요.”
“그렇게 말할 정도의 힘이 있으면 죽이라도 한 그릇 더 먹는 것이 어떨까요. 약이라도 먹는 셈치고 먹으면 힘이 생겨 병 따위는 없어지고 말 테니까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격려했다.
“견뎌야 해요. 힘을 내세요. 우리에게 지금이 가장 힘들 때에요. 나도 이젠 틀렸구나 생각했지만, 금방 좋아졌잖아요.”
지금도 후지산 정상에 메아리치는 듯한, 여성의 필사적인 외침이다.
인생에는 많은 시련이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이젠 틀렸어’ 하고 생각할 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체념하면 안 된다.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어떤 싸움도 자신이 먼저 지면 안 된다.
먼저 자신이 진지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모든 길이 열린다.
‘부용봉’ - 저 후지산 정상을 마음속으로 우러러 보면서 오늘도 자기답게 밝고 명랑하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끝으로 연조(蓮祖) 대성인이 오토님의 어머니(니치묘 성인)에게 보내신 성훈을 배독하고자 한다.
“당신이 오래 전부터 해 오신 신심(信心)의 깊은 뜻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강성한 신심을 하세요. 그때는 더욱 (제천선신인) 십나찰녀의 수호도 강해진다고 생각하세요. 그 예는 다른 데서 인용하지 마세요.
니치렌(日蓮)을 일본국 상일인(上一人)부터 하만민(下萬民)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해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무사히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니치렌은 한 사람이지만 법화경을 믿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어서 1220쪽, 통해)
수많은 대난을 감연히 이겨내신 대성인의 절대적 확신이다.
이 스승의 투쟁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스승처럼!’ ‘스승과 함께!’ 이 점을 철저히 해 강성한 신심을 일으켜 나아갈 때, 제천은 반드시 움직여 우리를 지킨다.
모든 동지의 건강과 장수를 아내와 함께 기원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한 사람, 승리한 사람이 되라고 진심으로 염원하며 문학수상을 마친다.